메뉴 건너뛰기

close

격렬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꿈의 학교 학생
 격렬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꿈의 학교 학생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우리 마을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광주 청소년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아래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 문을 나설 때, 이 생각이 구두 뒤축에 따라붙었다.

예쁜 건물 한 채가 오롯이 연극과 뮤지컬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건물 위에 '청석에듀씨어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청석 에듀 씨어터'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무대와 배우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고 커피 향 가득한 카페도 있었다. 건물 앞쪽은 탁 트여 있어 시원했고 뒤편에는 산이 있어 포근했다.

이곳에서 70여 명의 광주시 관내 중·고생들이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기는 물론 극작, 조명, 의상, 음향까지 실제 체험을 하면서 배운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는 이런 체험식 교육을 하기 위한 교육 자재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현재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현역 배우 20여 명을 강사진으로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손에 쥐여 주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철저하게 '스스로 학습법' 지도를 하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조명과 음악까지 담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을 재봉질해서 직접 만들기도 한다. 강사는 그저 충실한 조언자일 뿐이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중·고생이면 누구나 이 학교에 들어 올 수 있다. 오디션을 보지 않고 지원만 하면 누구나 받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은 물론 공연도 프로처럼 한다. 학교 이름에 '전문가'란 단어가 들어 있는 이유다.

그야말로 '빡빡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입학하자마자 산악 구보와 다리 찢기를 한다. 배우가 돼 무대에 서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못 견디고 나가는 아이도 있고 왜 운동만 시키느냐고 항의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제자들, 성인이 돼서 활동할 공간 필요해서"

이기복 교장과 부인 우은희씨. '우린 부부이며 동시에 동지다'라는 것을 표현해 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이기복 교장과 부인 우은희씨. '우린 부부이며 동시에 동지다'라는 것을 표현해 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꿈의 학교 아이들 수업이 이루어지는 연극 전문 공간, 공연장과 의상실, 소품실, 휴식공간, 카페까지 갖추고 있다.
 꿈의 학교 아이들 수업이 이루어지는 연극 전문 공간, 공연장과 의상실, 소품실, 휴식공간, 카페까지 갖추고 있다.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이 과정을 무사히 소화한 아이들한테서는 변화가 느껴져요. 우선 '싫어요, 못해요, 안 해요'란 말이 사라져요. 청소나 정리정돈도 알아서 척척 하고요. 물론 눈빛도 초롱초롱해져요. 어떤 부모는 여기 와서 자기 아이 보고는 '우리 아이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줄 몰랐어요'라고 하기도 하고, 공연하는 것 보고는 눈이 빨개지기도 해요. 이럴 때 참 뿌듯하죠."

이기복-우은희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 교장 부부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말이다.

둘 다 전직 교사로, 이기복 교장은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부인 우은희씨는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이 부부는 몇 년 전 정년도 되기 전에 과감하게 학교 밖으로 나왔다. 지난 2012년 살던 집과 퇴직금 등 전 재산을 털고 은행대출까지 얻어서 이 공간을 마련했다. 지난 14일 오후 이 학교를 방문, 전 재산을 털어 '청석에듀씨어터'를 설립한 이유를 들었다.

"연극으로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커서 어른이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예술 공간이 필요했는데, 허접스러운 공간은 싫었어요. 제대로 된 공간에서 최고의 강사진을 꾸려 수준 높은 교육을 해서 아이들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어요."

곧바로 학교 안에서 할 수는 없었냐고 물었다.

"학교 안에서 오랜 기간 했어요. 생활지도 차원에서 툭하면 가출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했는데, 연극 제목이 <방황하는 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연극반도 만들었고, 저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극 연출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나름 많은 성과가 있었는데, 학교가 언젠가부터 입시 위주로 바뀌었고, 그러다 보니 연극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게 됐지요. 그런 풍토에서 마음껏 연극 교육을 할 수 없어 학교 밖으로 과감하게 나온 거죠. 연극은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시작했어요. 대학에서는 극회 활동했고요."

이 말에 이어 우은희씨가 전 재산을 털어서 '청석에듀씨어터'라는 공간을 마련한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 남편이 인도한 제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애들이 연극을 해서 대학도 가고 어른도 되는데, 추후 지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기가 인도했으니 그 애들이 다시 마을에 와서 활동할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거죠."

"상처받은 아이·무기력한 아이한테 연극은 큰 도움"

격렬한 춤이 끝나면서 선보인 멋진 포즈
 격렬한 춤이 끝나면서 선보인 멋진 포즈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조영진 학생(고2)와 박재희 강사
 조영진 학생(고2)와 박재희 강사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왕수민 학생(고3)
 왕수민 학생(고3)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이기복 교장은 연극이 아이들에게, 특히 학교 폭력을 당하는 등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과 의욕이 없어 무기력한 아이들한테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를 '무대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쓸모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이런 아이들한테는 무엇인가 역할을 주어야 해요. 자기가 무엇인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들이 그걸 인정했다고 느끼는 순간, 삶이 바뀝니다. 연극은 반드시 무대에 올라야 하는 예술이에요. 무대에 오르면 누군가 박수를 치고 칭찬도 해 줍니다. 그때 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했다고 느끼면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고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이기복 교장은 강조했다. 그는 "연극을 했다고 가출하던 아이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그러나 그게 씨앗이 되어서 변화가 일어난다"며 "교육은 오랜 시간을 두고 효과를 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나중에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마음 잡고 잘 살고 있다고' 지금도 이런 전화 많이 받고요. 이것이 제가 연극 교육을 계속 하는 이유입니다. 또 교사라면 당연히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그 능력 없으면 교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공모한 꿈의 학교에 선정되면서 이기복 교장 사업에 활력이 붙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강사로 활동하는 단원들에게 강사비를 지급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 맛있는 밥도 맘껏 먹일 수 있게 됐다.

이보다 더 큰 장점은 공신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기복 교장은 "교육청 사업이라 그런지 학부모를 설득하기도, 학교 도움을 받기도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꿈의 학교 아이들은 배우, 금연 캠프 온 아이들은 관객

강사들, 배우다운 표정을 지어 달라고 하자. 뒷줄 왼쪽 부터 진승범, 유희재, 왕은수, 이현배, 이기복 교장. 앞줄 왼쪽부터 하도욱, 이현종, 허현강, 최두영, 서경진, 박마리아, 박재희
 강사들, 배우다운 표정을 지어 달라고 하자. 뒷줄 왼쪽 부터 진승범, 유희재, 왕은수, 이현배, 이기복 교장. 앞줄 왼쪽부터 하도욱, 이현종, 허현강, 최두영, 서경진, 박마리아, 박재희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뱅뱅뱅' 춤을 추고 있는 장면.
 '뱅뱅뱅' 춤을 추고 있는 장면.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이날 아이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실전과 다름없는 진지한 연습이었다. 연습은 실제 공연을 하는 지하 공연장에서 열렸다. 공연장 객석에 반항기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연교육을 받으러 온 청소년들이었다. 이기복 교장은 아이들한테 금연 교육도 하고 있다. 그런데 연극 공연장에서 도대체 무슨 교육을 한다는 것일까?

잠시 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춤꾼들의 춤사위가 무대 위에 펼쳐졌다. 스타를 꿈꾸는 예술학교 학생들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페임>이다. 아직 어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인데, 춤 실력이나 진지한 표정은 성인 배우 못지않았다.

"자 이제, '뱅뱅뱅'인데 춤추고 싶은 사람 다 무대로 나가 봐, 너희도."

이기복 교장이 이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금연교육을 받으러 온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도 선뜻 일어나지 않았다. 꿈의 학교 아이들만 우르르 나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뱅뱅뱅'은 아이돌 그룹 빅뱅이 춤을 추며 부른 노래 제목이다. 이기복 교장은 '뱅뱅뱅'을 '금연 춤'이라 소개했다.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신나게 춤을 추고 땀을 내다보면 니코틴이 몸 밖으로 나온다는 의미로 '금연 춤'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공연 연습 관람도 이기복 교장의 금연 프로그램 중 일부다. 이 교장은 "애들이 금연캠프 와서 담배 끊으라는 말만 들을 줄 알았다가 공연을 보고는 재미있어 한다"며 "(그래서) 금연교육 하면서 춤을 추라고 한다. 실제 추는 아이도 있다"라고 말했다. "땀을 흘리는 것만큼 금연에 좋은 것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연극에 관한 분야별 전문적인 교육을 해서 그런지 아이들 꿈도 구체적이고 확실했다.

왕수민 학생(고3)은 "낯을 많이 가렸는데 무대에 서면서 당당한 성격으로 변했다"며 "연극이 꿈이고, 연극 영화과에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선미 학생(고1)은 "꿈이 연극 연출이라 조명 다루는 법과 의상 디자인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용진 학생(고2)은 "직접 대본도 만들고 연극도 하는 등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특히 연습할 때도 관객이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학교에서도 연극반 활동을 하고 있다. 연극배우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관련 기사]

교사는 '현직판사' 교장은 '방황하던 별'
"껌 뱉어! 화장 지워!" 담임 선생님의 눈물
엄마가 교장, 아빠가 선생... 이 학교의 성공비결
아이들 '꿈 깨는 게' 목표,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광주 청소년 공연 전문가 꿈의 학교, #경기도 교육청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