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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이 17일 오후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주최로 열렸다.
▲ 국정교과서 반대 행동 나선 청소년들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이 17일 오후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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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 과목을 강의하는 시간강사다. 지난 12일, 박근혜 정부는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교재로 사용하는 역사 교과서가 좌익 역사학자와 교사들에 의해 편향적으로 서술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역사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학교에서 채택하는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와 교사뿐만 아니라 역사학계 구성원 대부분을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치부하는 정부의 인식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소개되는 내용이 너무 황당한 것들뿐이라 좀 더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교육부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지난 12일자로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라는 게시물이 있었다. 우리가 보통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고 부르는 조치에 대한 내용이었다.

게시된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들을 과목에 따라 국정, 검정, 인정 도서로 구분하면서 중학교 역사과목과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을 새롭게 국정도서로 변경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안에는 예고사항에 대한 의견(찬·반 여부와 그 사유)이 있으면 오는 11월 2일까지 교육부장관에게 "우편과 팩스로" 제출해 달라는 안내가 있었다.

당장 행정예고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문의는 해보자 싶어서 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2시부터 5시 사이에 10통 가까이 전화를 걸었음에도 전혀 연결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 건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설마 너무 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있어서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화가 계속 연결이 되지 않는 사이에 이렇게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하고, 우편이나 팩스로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행정절차법이라는 몰랐던 세계

우선 행정예고라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교육부 발표를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이 시행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예고기간이 있고 그 사이에 의견을 제출하라지 않는가. 교육부 게시글에도 "취지와 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행정절차법 제 46조에 따라 공고한다"고 분명히 나와 있었다.

포털에서 "행정절차법"을 검색하니,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제공하는 행정절차법의 전체 조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조문을 읽어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전화 연결도 계속 되지 않는 참에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행정절차법 조문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나라의 행정절차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행정절차법의 취지와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행정절차법은 국민의 행정 참여를 도모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1조).

2. 국가는 정책, 제도 및 계획을 수립·시행하거나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예고해야 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존중하여 처리해야 하며, 의견을 제출한 자에게 제출된 의견의 처리결과를 통지하도록 규정한다(46조).

3. 예고안이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쳐 널리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공청회를 실시하고, 여기서 제시된 사실 및 의견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반영해야 한다(38~39조).

4. 국가 행정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는 국가로 하여금 공권력을 행사 또는 거부하도록 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 국가는 처분 신청을 받으면, 청문·공청회 등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증거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17조).

5. 2014년에는 명시적으로 "국민참여의 확대"가 이 법의 취지라는 사실이 덧붙여졌다. 국가는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하여 다양한 참여방법과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52조). 또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 등에 대하여 국민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의견을 널리 수렴하기 위하여 온라인에서 정책토론을 실시할 수 있다(53조).

행정절차법은 국민이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해 법적으로 분명하게 참여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하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위의 내용을 적용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은 아직 시행된 것이 아니라, 예고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까지는 시행에 앞서 "예고"한 것에 불과하다.

2.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여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존중하여 처리해야 한다.

3. 중고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 문제이자, 이 정도로 사회적 논란이 있는 사안이라면 국가는 국민의 참여와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공청회 실시를 포함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야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4. 설사 국정화 방안이 시행되더라도, 이 방안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라면 국가가 이를 거부하도록 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교육부와 드디어 통화를 하다

지난 17일 자 교육부 홈페이지.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문구 아래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의 행정예고가 게시되어 있다.
 지난 17일 자 교육부 홈페이지.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문구 아래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의 행정예고가 게시되어 있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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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예고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당장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대해 행정예고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인터뷰 기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어쨌든 기왕 교육부에 문의를 하려고 했으니, 내가 파악한 내용이 맞는지, 의견을 제출하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공청회를 실시할 생각은 없는지 등을 일단 물어보기라도 하기로 했다.

오후 5시 반쯤이 되어서, 드디어 교육부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다. 통화 내용은 반쯤은 예상한 바와 같았지만, 반쯤은 예상을 넘어섰다. 통화 내용을 녹음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오고 간 이야기를 대화체로 재현해보면 아래와 같다. 단어 하나하나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짧은 통화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에 틀린 부분은 없을 것이다.

: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려고 하는데, 문의 드려도 되나요?"
직원 : "예, 말씀해 보십시오."
: "제가 의견을 우편이나 팩스로 제출하면, 의견이 접수되었는지, 이후에 처리 과정을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직원 :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다른 번호를 알려 드릴테니 그쪽으로 전화를 해서 문의하세요."
: "예? 모르신다고요? 그럼 공청회 실시라든가 의견 수렴이나 다른 걸 물어봐도 마찬가지로 모르시겠죠?"
직원 : "예, 그것도 아까 말씀드린 번호로 전화해서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온 담당자 번호로 연락한 건데, 혹시 담당자가 아니신가요? 아까부터 계속 전화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거든요."
직원 : "예, 담당자는 지금 출장을 가서 자리에 없습니다. 주위에 있는 직원들이 전화가 오면 돌아가면서 받고 있는데, 왜 계속 연결이 안 된 건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이 정도에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직원이 알려준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번에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세 번 정도 더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교과서 국정화 담당 직원과 같은 사무실 안에 있는 다른 번호였다. 굉장히 미심쩍었지만, 6시 퇴근 시간이 지났기에 더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가 된 혹시나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법을 제대로 지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행정예고 역시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국가라면 최소한의 대응은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정말 말 그대로의 요식행위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의견을 제출하겠다고 하면 귀찮아하면서도 최소한 절차는 안내해주리라고 믿었다. 전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에 진심으로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나만 운이 없게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이 응대하게 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차마 담당자가 정말로 출장을 간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설마 일부러 행정예고 기간에 하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담당하는 직원이 출장을 간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20일밖에 되지 않는 행정예고 기간에 이렇게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의 담당자가 과연 반드시 출장을 가야 했을까. 그리고 아무리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더라도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최소한의 진행 상황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우편과 팩스만으로 의견을 제출하라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른 예고안들은 어떤지 살펴보았다. 가장 최근인 10월 15일에 올라온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입법예고"의 경우는 전자우편, 우편 또는 팩스, 전자공청회라는 4가지 방법으로 의견을 제출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조치들을 대충 확인해보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처럼 우편과 팩스만으로 의견을 제출하도록 한 경우도 꽤 있었다. 그래도 대충 살펴본 결과 아예 의견 제출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이기는 했다.

전체 사례를 다 확인한 것도 아니기에 이번에도 의견 제출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우편과 팩스만으로 제출하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각각의 조치마다 의견 제출 방법을 구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별도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영재교육 진흥에 관한 시행령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가운데 어느 것이 국민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지를 교육부가 설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에 항의 의견을 전달하자

대한민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우리나라에서 법조문은 말 그대로 법조문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인해 행정절차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한 두 명이 아닐 것이고, 이분들 역시도 행정절차법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국가에 대항해왔을 것이다. 행정절차법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아니 법 자체가 제대로 준수되고 있었다면 우리가 그 동안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에서 목격한 국가의 행태는 애초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을 교육부에 제출하고, 공청회 실시와 의견 수렴을 요구할 생각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국가에 대하여 겨우 절차상의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매우 초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에서도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해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국가 스스로 국가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불복종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사실을 행정절차법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이름의 법률을 통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대해 법적인 절차에 따라 항의하는 것만이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미 많은 수의 역사학자들이 국정화가 시행되더라도 교과서 집필을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고, 역사 교과서를 사용할 교사와 학생들 역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였다.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라는 이름의 단체가 만들어져서 국정화 방안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국가로 하여금 스스로 정한 법률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준수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국민들이 국정화를 지금 당장 시행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를 중단하라는 요구 역시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의견을 제출한다고 해서 교육부가 꿈쩍이라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의견을 잘 받았다는 문자 정도는 보내주지 않을까. 설마 그것조차 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국정화된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교사와 학생들, 국정화된 역사 교과서로 인해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받게 될 역사학계의 구성원들을 포함해서 교과서 국정화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모든 시민들 한명 한명이 의견을 제출한다면 어떨까?

<오마이뉴스>와 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서 국정화반대 인증샷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관련 기사 :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인증샷 보내주세요). 국정화반대 인증샷을 올리는 참에 교육부에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제출한 의견서를 함께 올리면 어떨까?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여 국가를 민주화하자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서 교육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서 교육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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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월요일에 교육부에 의견서를 우편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의견서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와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공청회를 실시하고, 우편과 팩스 외에도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라는 주장을 담을 생각이다. 교육부가 내 의견을 어떻게 처리해서 어떻게 통지하는지 전체 과정을 가능하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그리고 설사 행정예고 기간이 지나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시행이 된다고 하더라도 행정절차법에 따라 교육부로 하여금 집행을 거부하도록 처분 신청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행정예고 기간에 몇 명이 반대 의견을 제출했는지, 교육부는 그 의견을 성실하게 수렴하여 정책 시행에 반영했는지, 국민의 다양한 참여와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했는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털끝만큼이라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행정절차법에 따라 행정소송 등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볼 생각이다.

이러한 행동은 아주 미약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교과서 국정화 조치가 내용과 절차 모든 방면에서 국가 스스로 자신의 토대인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맞서 국가를 민주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이 모이면 정말로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태그:#역사 교과서, #국정화, #교육부, #행정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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