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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행사를 알리는 경기장 앞 현수막
 이날의 행사를 알리는 경기장 앞 현수막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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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오후 5시, 칠레 산티아고 국립 경기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족, 친구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경기장 여기저기 설치된 안내문과 공간들을 방문했다. 그 풍경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안에 공유하는 기억들은 결코 고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날은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1973년 9월 11일)가 일어난 지 42년이 되는 날이었다. 대통령궁이 폭격된 이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끝까지 궁을 지키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자신의 3년 임기를 마감했다.

1970년,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새로운 칠레'에 대한 꿈으로 한껏 부풀었던 칠레인들의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피노체트 독재는 이날로부터 17년 동안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체포와 고문으로 죽어갔다. 그들의 가족이기도 했고, 이웃이기도 했고, 심지어 본인이기도 했던, 그렇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의 기억을 칠레 사람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경기장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

이날 기념행사를 국립 경기장에서 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곳이 당시 전국에 나뉘어져 있던 1130개 넘는 감옥 중 가장 큰 감옥이자 고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는 당시 감옥과 고문실로 이용되던 곳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가이드들이 나서 사람들이 각 장소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돕고 있었다. '수감실 8번'이라 불리던 곳은 밖으로 연결된 관중석의 일부분까지 보존하고 있었다. 이곳엔 '역사가 없는 곳에 미래도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당시에도 가족들이 오면 그나마 관중석 담장 사이로 수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장 관중석 가운데 남겨놓은 역사의 현장
 경기장 관중석 가운데 남겨놓은 역사의 현장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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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곳에서 경기를 하면 가끔 이 공간이 화면에 잡히곤 한다. 오랫동안 그때 그 자리를 보존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이 경기장은 1973년 9월 11일부터 11월 9일까지 감옥으로 사용됐다.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이곳에 수감된 최소 인원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여성감호소가 별도로 떨어져 있었는데 여성수감자도 5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모습으로 그대로 보존된 감옥의 모습
 당시 모습으로 그대로 보존된 감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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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호소였던 곳으로 가니 로비에 당시 수감됐던 테레사(78, 여)씨가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973년부터 9월부터 8년간 수감생활을 했다는 그녀는 당시 주요 좌파단체의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수감 기간 동안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지는 않았다고 했다.

"8년 동안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일일이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상상 이상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다른 동료들을 잡아들이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여성수감자에 대한 고문은 남성에 대한 그것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육체적인 고문 뿐 아니라 성폭력 등 인권 유린이 비일비재했다. 매일 밤 고문 후 감옥으로 돌아온 여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고통에 같이 울고 위로하는 날들을 보냈다.

"언젠가 감옥 벽에 손을 가져갔는데 벽이 마치 스펀지처럼 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이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할 수 있느냐고. 자신 같으면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을 것 같다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하루하루가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날들이었고 지금 역시 그렇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잊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하면 기억은 그저 내 고통에서 끝날 것이다."

여전히 고요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의 기억으로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니 경기장 밖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당시 실종자들과 사망자들의 사진이 붙고, 촛불을 하나 둘 밝혔다. 모인 사람들 한켠에서 유난히 나이 든 여성분들의 모임을 만날 수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주 오래된 친구들인 듯 보였다.

그날을 기억하며 초를 밝히는 사람
 그날을 기억하며 초를 밝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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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야. 당시 경기장이 감옥으로 사용되었을 때 많은 수감자 가족들이 매일 경기장 문 앞에서 혹시라도 가족을 볼 수 있을까 하며 기다렸지. 대부분 체포되고 고문당한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거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이 지역에 있는 여성들이 그 가족들을 도와주고, 가족들 대신 수감자들에게 음식을 몰래 넣어주기도 했지."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지금까지도 그날을 기억하는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당시 매일매일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고 또 출소하기도 했는데,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을 책으로 내기도 했단다.

42년간 항상 이날이 되면, 그 당시가 언제나 '오늘'의 일처럼 생생해진다는 한 할머니는 옆에 모인 다른 동료들을 보며 "그래도 이렇게 같이 오래 같이 해 온 사람들이 있어 좋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잘못에 대해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고 하지만, 나는 용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망자와 실종자들의 사진과 그림 아래 추모의 초를 밝혔다.
 사망자와 실종자들의 사진과 그림 아래 추모의 초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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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을 마지막까지 지킨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당시 국민에게 보내는 마지막 연설에서 "무력이 사회변혁을 막을 수는 없다"며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어둠의 역사를 지나 새로운 날을 열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는다던 그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은 희망은 2015년 지금 이곳에 여전히 칠레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옌데 임기 당시 사진과 그의 마지막 연설 문구 "역사는 우리의 것며 이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다."
 아옌데 임기 당시 사진과 그의 마지막 연설 문구 "역사는 우리의 것며 이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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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칠레,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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