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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물녘 그림자를 찍으려다가 참말 도랑에 빠질 뻔했습니다.
 저물녘 그림자를 찍으려다가 참말 도랑에 빠질 뻔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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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 도랑에 안 처박힌 사진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마실을 하던 어느 저물녘입니다. 옛날에는 작은 도랑이었을 테지만, 시멘트로 크게 발라서 시냇물처럼 된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데, 저물녘 햇살이 우리 자전거를 비추면서 둑길 건너편에 그림자를 빚습니다. 문득 이 그림자를 알아채고는 사진으로 찍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 안 넓은 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저물녘 그림자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다가 도랑(또는 시냇물)으로 굴러떨어질 뻔했습니다. 아차차. 사진 한 장 찍으려다가 아이들하고 도랑에 처박힐 뻔해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언제나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다니는 아이와 함께
 언제나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다니는 아이와 함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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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2. 네 손에는 늘 장난감 자동차

작은아이 손에는 늘 장난감 자동차가 들립니다. 아버지 손에는 늘 사진기하고 연필이 들립니다. 큰아이 손에는 으레 연필이 들립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짓고 싶은 삶에 따라 손에 연장을 쥡니다. 때로는 맨손으로 삶을 짓기도 할 테지요. 어느 날은 호미를 쥐느라 사진기를 내려놓고, 어느 날은 부엌칼이랑 도마를 쥐느라 연필을 내려놓습니다. 어느 날은 빨래비누를 쥐느라 사진기를 내려놓고, 어느 날은 공을 쥐고 아이들하고 노느라 연필을 내려놓습니다. 아무튼, 작은아이는 한손에 장난감 자동차를 쥐고 웃습니다. 노래하지요. 사랑스레.

마을 빨래터에서 한창 물이끼 걷어내는 사이, 곁님이 스텐냄비로 빵을 구워서 샛밥으로 가져다줍니다.
 마을 빨래터에서 한창 물이끼 걷어내는 사이, 곁님이 스텐냄비로 빵을 구워서 샛밥으로 가져다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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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3. 입에 들어가는 밥

곁님이 빚은 빵을 먹습니다. 한손으로 쥐어 입에 쏙 놓으면 냠냠짭짭 아 맛있네 하고 즐겁습니다. 빵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언제나 맛나게 먹습니다. 즐겁게 먹으면서 몸을 살찌웁니다. 날마다 새롭게 밥을 짓고, 언제나 새롭게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오늘은 뭘 먹었고 어제는 뭘 먹었는가 하는 대목을 굳이 적어 놓지 않습니다. 따로 적어 놓지 않아도 몸은 이를 다 알고, 마음은 이를 다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몸에는 즐거운 기운이 감돌고 마음에는 기쁜 숨결이 흐릅니다.

논에 비치는 그림을 봅니다.
 논에 비치는 그림을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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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 논그림자, 아니 논그림

이웃마을 논에 느티나무 그림자가 생깁니다. 아니, 그림자라기보다는 그림이 생깁니다. 찰랑찰랑 물이 가득 찬 논에 느티나무 그림이 드러납니다. 숲정이가 자취를 감추더라도 마을에 한 그루쯤 큰나무가 남으면, 이 나무는 이럭저럭 살아남아서 그늘을 베풀고 길잡이 구실을 합니다. 논에 드리우는 느티나무 그림은 저물녘 보드라운 햇살이 그립니다. 고요히 잠든 바람도 함께 그리고, 논물에서 함께 사는 조그마한 벌레가 다 같이 그립니다. 때에 따라 바뀌고 날마다 달라지는 그림에 푸른 냄새가 가득 흐릅니다.

작은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을 무렵, 한겨울에도 늘 기저귀 빨래를 해야 했기에, 빨래를 널고 까무룩 잠들다가, 눈이 오는 줄 모르고 기저귀가 얼어붙곤 했습니다.
 작은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을 무렵, 한겨울에도 늘 기저귀 빨래를 해야 했기에, 빨래를 널고 까무룩 잠들다가, 눈이 오는 줄 모르고 기저귀가 얼어붙곤 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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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 눈과 기저귀와 빨래

전남 고흥은 무척 포근한 고장입니다. 겨울에 눈을 구경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주 드물게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날이 있는데, 아기 기저귀를 빨아서 너는 겨울날, 눈 오는 소리를 미처 못 들은 탓에 기저귀가 눈을 맞으면서 얼어붙습니다. 아차 싶지요. 얼어붙은 빨래를 으짜노, 하고 생각하다가 '언 빨래는 언 빨래'라고 여기면서 사진 한 장 찍자고 마음을 바꿉니다. 언 빨래를 집안으로 들여서 녹이기 앞서, '눈 맞는 기저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삶을 노래해 보라는 하늘나라 뜻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 앞에서 사진 찍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사진 찍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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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 앞에서 사진 찍으려면

아이들하고 살면서 아이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퍽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우리 아이를 어버이로서 찍는데 왜 어렵다는 말이 나올까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사진에 찍히려고 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고 싶어서 놀아요.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어버이 앞을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아이들하고 나들이를 다니면 두 아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 앞에서 달립니다. 으레 꽁무니만 바라보다가 뒷모습만 찍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길턱에 올라서며 논다고 하니, 모처럼 아이들 앞에 서서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구운 빵을 먹어서 없애기 앞서 사진으로 남깁니다.
 집에서 구운 빵을 먹어서 없애기 앞서 사진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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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7. 난 이 빵 좋아

곁님이 집에서 반죽을 해서 빵을 구우면 모두 이 빵만 먹습니다. 밥보다 빵이 먼저입니다. 집빵이 가게빵보다 맛나서 이 빵을 좋아할 수 있고, 반죽부터 부풀리기를 거쳐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길이 따스하게 흐르는 집빵이니 더욱 맛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통밀가루로 구운 빵도 좋고, 흰밀가루로 구운 빵도 좋습니다. 유기농 밀이건 그냥 밀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밀을 쓰든, 이 밀가루를 다루어 빵으로 빚어서 굽는 곁님 손길이 사랑스레 흐르니, 아이들하고 신나게 빵조각을 집어서 입에 넣다가 '아차, 한 장쯤은 사진으로 남겨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신나게 앞질러 달리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아이들보다 더 빨리 앞장서서 달려야 합니다.
 언제나 신나게 앞질러 달리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아이들보다 더 빨리 앞장서서 달려야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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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8. 웃음보따리

하루 내내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다 보면, 이 아이들은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런 웃음보따리를 보면서, 나도 이 아이들만 한 예전에 언제나 웃음보따리를 신나게 터뜨렸네 하고 알아차립니다. 아스라하다 싶은 지난날에 내가 웃음보따리를 신나게 터뜨린 모습을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진으로 찍은 일은 드뭅니다. 그무렵에는 사진기가 안 흔하기도 했고, 사진을 여느 때에 섣불리 찍지도 못했어요. 그저 가슴에 '웃음보따리'를 담았어요. 오늘날에는 아주 쉽고 홀가분히 온갖 웃음보따리를 사진으로 담아요.

우리 집 마당에서 함께 사는 벌레 이웃.
 우리 집 마당에서 함께 사는 벌레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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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9. 너 참 멋진 이웃이로구나

고들빼기잎을 맛나게 갉아먹는 벌레 한 마리도 이웃입니다. 우리 집 풀밭에 깃들어 왁왁 곽곽 노래하는 개구리도 이웃입니다. 때때로 마당이나 뒤꼍을 슥슥 가로질러 기어가는 구렁이나 풀뱀도 이웃입니다. 거미 한 마리도 개미떼도 이웃입니다. 공벌레나 달팽이도 이웃입니다. 나무도 꽃도 이웃이고, 잠자리도 제비도 이웃입니다. 저마다 이곳에서 살아야 할 뜻하고 보람이 있어서 한집살이를 할 테지요. 수많은 이웃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로서 얼마나 기쁘며 곱게 이곳에서 삶짓기를 하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나는 얼마나 멋진 사람일까요.

훨훨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훨훨 날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훨훨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훨훨 날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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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 누구나 훨훨 난다

재미나게 노는 아이는 훨훨 납니다. 기쁘게 일하는 어른은 홀가분하게 노래합니다. 재미나니 발걸음이 가볍고, 기쁘니 걸음걸이가 사뿐사뿐 곱습니다. 신이 나서 콧노래가 흐르고 웃음꽃이 핍니다. 마음을 가만히 바꾸니, 온몸에 새로운 기운이 그득그득 흐릅니다. 재미난 마음으로 사진 한 장을 재미나게 찍고, 기쁜 넋으로 사진 한 장을 기쁘게 찍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웃고 노래하면서 뛰놀 수 있는 숨결이라면, 우리가 찍는 사진은 참말 언제나 훨훨 날듯이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훨훨 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사진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사진이란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느껴서, '사진노래' 이야기를 씁니다. 시골에서 네 식구가 올망졸망 어우러지는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아 봅니다.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사진노래, #삶노래, #사진읽기, #사진찍기, #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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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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