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선왕조실록> 중 정조 22년 10월 19일(1798년)자 정조실록 기록을 보면, '비변사가 아뢴 장용위 외영 5읍 군병의 절목'이란 장용외영 5위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장락 전위(長樂前衛). 정병(正兵)은, 본부의 남쪽 경내에 있는 장락대(長樂隊) 635명을 여기에 소속시키는데, 관하(管下)의 5부장(部將)이 각각 127명씩 거느리게 합니다. 성정(城丁)은, 남성(南城)의 팔달위(八達衛)가 여기에 예속되는데, 본부의 남쪽 경내에 있는 팔달대(八達隊) 1104명에 대해서는 전(前)·좌(左)·중(中) 3부(部)가 각각 368명씩 거느리고, 진위(振威)의 팔달대 720명에 대해서는 우(右)·후(後) 2부가 각각 360명씩 거느리게 합니다.

본부의 팔달대 245명과 진위의 팔달대 265명을 정문(正門) 및 남쪽 암문(暗門)·서남쪽 암문·각루(角樓)·수문(水門)·치성(雉城)·적대(敵臺)·봉돈(烽墩)·포루(砲樓)·포루(舖樓) 등 13개 지역에 증원 파견합니다. 본부의 팔달대 39명으로 통장(統長) 12명과 타장(垜長) 27명을 마련하고, 진위의 팔달대 26명으로 통장 8명과 타장 18명을 마련하고, 진위의 팔달대 1 84명으로 위장(衛將)·부장(部將)·통장(統長)의 각색(各色) 표하(標下) 및 화부(火夫)를 마련합니다. 총 병력은 2583명입니다."

화서위는 흰색 깃발, 장안위는 검정색 깃발을 사용했다.
▲ 흰색 깃발과 검정색 깃발 화서위는 흰색 깃발, 장안위는 검정색 깃발을 사용했다.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이어서 장락 좌위(長樂左衛)는 동성(東城)의 창룡위(蒼龍衛) 2271명, 장락 중위(長樂中衛)는 신풍위(新豊衛) 960명, 장락 우위(長樂右衛)는 서성(西城)의 화서위(華西衛) 2378명, 장락 후위(長樂後衛)는 북성(北城)의 장안위(長安衛) 2463명 등 5위의 전체 병력 규모는 1만 655명 이었고, 5위의 경계 구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수원화성 성벽길을 걷다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령(令)', '순시(巡視)'라 쓰여있는 깃발을 볼 수 있다. 무심히 걷다보면 깃발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깃발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용외영 5위의 군사들이 수원화성을 지킬 때 깃발의 색깔로 5위의 경계 구역을 구분했으며, 오방색으로 방향을 표시한 것으로, 남쪽의 팔달위는 붉은색 깃발, 북쪽의 장안위는 검정색 깃발, 동쪽의 창룡위는 청색 깃발, 서쪽의 화서위는 흰색 깃발을 사용했다.

수원화성 북쪽 지역을 수비한 장안위의 검정색 깃발
▲ 화서위와 장안위의 경계표지석 수원화성 북쪽 지역을 수비한 장안위의 검정색 깃발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북쪽의 장안위와 동쪽의 창룡위의 경계지점인 북암문(北暗門)과 동북포루(東北鋪樓) 사이에는 '장안위'라는 경계표석이 있고, 표지석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청색 깃발, 서쪽으로는 검정색 깃발이 나부낀다. 봉돈(烽墩) 근처에 창룡위와 팔달위의 경계표석이 있고, 서남암문(西南暗門)에 팔달위와 화서위의 경계표석이 있고, 장안문과 화서문 사이 북포루(北鋪樓) 근처에 장안위와 화서위의 경계표석이 있다.

수원화성을 답사하면서 장용외영 5위의 4색 깃발이 바뀌는 지점과 그곳에 있는 경계 표지석을 찾다보면 숨은 보물을 찾는 듯한 또다른 답사의 묘미와, 깃발 하나도 고증을 통해 꽂아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동쪽문인 창룡문 홍예 안에 그려진 청룡 그림
▲ 창룡문 안의 청룡 수원화성 동쪽문인 창룡문 홍예 안에 그려진 청룡 그림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는 5위를 상징하는 방향과 색깔임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4대문인 팔달문, 장안문, 화서문, 창룡문 안 천장의 그림과 장안문 옹성의 홍예 안쪽 천장 그림, 서남암문 천장에 용 그림이 있다. 수원화성을 축성할 때 남쪽의 팔달문 안 천장 그림은 주작, 북쪽의 장안문은 현무, 동쪽의 창룡문은 청룡, 서쪽의 화서문은 백호를 그려놓았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면 지나친 것일까? 모두 용을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4대문의 천장 그림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수원화성에 바람이 불면 펄럭이는 깃발에서 장용외영 5위 군사들의 서릿발 같은 기상이 느껴지며, 정조대왕의 왕권 강화정책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을 찾아 수원화성 답사에 나서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정규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와 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화성, #장용외영, #5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