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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마누엘라의 당선 여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언론이 마누엘라의 당선 여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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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방 선거일이었던 지난 24일(현지시각). 투표마감 시간인 오후 8시 즈음, 아토차 메인 기차역 옆 한 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언덕 끝에 마련된 임시 무대 옆에서는 취재를 위해 온 다수의 기자들도 볼 수 있었다.

조금은 들뜬 모습으로, 마치 축제장에 오는 듯 모여드는 사람들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새로 만들어진 '지금 마드리드(Ahora Madrid)' 정당의 후보 마누엘라 카르메나(71, 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정당엔 포데모스 정당과 일부 좌파 정당 지지자들, 시민 연합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이 투표가 끝날 즈음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함께 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마드리드의 역사적인 변화의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언덕에 모인 사람들 중엔 젊은이들이 많았다. 젊은이들이 71세의 전 판사 출신이라는 이력을 가진 마누엘라 카르메나를 지지하는 것이 의아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이력에서 젊은이들을 움직일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방에 마누엘라 사진을 붙인 마르타(36, 여)씨는 "만약 마누엘라가 선거에서 이기면 정말 울어버릴 것 같다, 지금 너무 떨린다"며 내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후보로 나오기 전부터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함께 온 미겔(35, 남) 역시 "과거의 마누엘라는 친숙한 인물은 아니다"며 "내 어머니는 확실하게 그녀를 기억하지만 우리는 단지 역사적 사건들이나 데이터로만 역사 안의 그녀를 접했을 뿐이다"라 고 말했다.

퇴거문제, 청년실업문제에 귀 기울인 그녀

개표 초반, 앞선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좋아하는 시민들
 개표 초반, 앞선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좋아하는 시민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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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카툰을 그리고 있는 시민 "우린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즉석에서 카툰을 그리고 있는 시민 "우린 할 수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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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프랑코 독재 시절에 체포된 사람들의 변호사였으며, 과거 노동자 변호 연합 변호사들 사무실 습격 사건, 일명 '77년 아토차 살해사건(당시 변호사 5명 살해)'이 발생했을 때, 살아남은, 해당 모임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적 법조인 모임'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그녀는 법조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 정의와 인권을 위해 일해 온 존경받는 법조인이었다.

하지만 과거 그녀의 행적만으로 시민들이 움직인 건 아니다. 시민들이 움직인 것은 선거 운동기간 내내 그녀가 보여준 시민과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그녀는 포데모스 정당이 아닌 '지금 마드리드'라는 새로운 당의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한 정당의 후보보다는 시민의 후보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세장에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특히 최근 몇 년 가장 문제가 되어온 퇴거문제, 청년 실업문제 등을 현장을 통해 듣고, 시민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만들 것을 약속하며 '틀에 끼워 맞춘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새로이 찾는 과정' 안에 있을 것을 강조했다.

이런 그녀의 행보는 서서히 시민들을 움직였다. 시민들은 '마누엘라와 함께하는 마드리드(Manuela con Madrid)'라는 지지단체를 만들고, 여러 가지 자발적 선거운동을 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마누엘라 선거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지난주에는 예술가들이 주축이 돼 '마누엘라 일러스트'를 그려 올리는 운동을 하기도 해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주간을 마누엘라와 함께 달려온 시민들은 24일 밤, 그녀와 바꾸어갈 마드리드를 꿈꾸며 함께 모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예술가들이 올린 마누엘라 일러스트들
 예술가들이 올린 마누엘라 일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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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초반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몇몇 시민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반(33, 남)씨는 "이길 거다"라며 확신하다가 다시 "이겨야 한다, 이제는 좀 이기면 좋겠다"며 긴장감 섞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터넷으로 끊임없이 결과를 지켜보는 사람, 카툰을 그리며 그날의 분위기를 스케치 하는 사람, 스피커로 나오는 선거운동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새로운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봤을 때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듯했다.

투표결과, 국민당 후보 에스페란사 아귀레가 근소한 차이로 마누엘라보다 표를 더 얻었지만, 스페인에는 득표수와 함께 후보가 소속된 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야 당선할 수 있다는 선거법이 있다. 마누엘라보다 표를 더 얻은 에스페란사 아귀레가 속한 국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면서, 불과 1석 차이로 뒤따르는 마누엘라가 사회당과의 연합을 통해 시장이 되는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늦게까지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었던 긴장의 순간이 지나고 한동안 조금 잠잠하던 SNS에는 마누엘라를 지지한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는 메시지를 올리고, 변화가 시작된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났던 미겔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이겼다!" 짧지만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떨지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이 시작, 마누엘라와 함께할 마드리드

신나게 기념샷을 남기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신나게 기념샷을 남기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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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마드리드에선 한결같이 국민당이 승리해왔다. 만약 이번 선거과 그동안의 결과와 다르게 나온다면, 그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 될 것이다. 몇 시간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마드리드의 한 언덕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얼핏 서울 광장에서 언제쯤인가 보았던 장면이 교차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어쩌면 '우리가 해냈다'는 끝이 아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진행된 송 후보자 토론회 때 마누엘라가 한 말이 기억난다.

"젊은이들은 앞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것은 명백하다. 나이든 세대는 사실 미래가 없다. 나는 내 모습에서 그것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가 있다. 오랜 시절 동안의 경험과 역사를 담은 배낭을 메고 서 있는 그런 현재 말이다. 독재에 맞서 왔고, 민주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그 시간이 우리 세대의 현재에는 있다. 이제는 이 배낭을 풀어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고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갈 지혜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마드리드 시장 마누엘라가 자신의 배낭을 풀어 시민과 함께 소통할 '지금 마드리드'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스페인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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