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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2주 쉬었다. 가정의 달 5월, 시작을 혹독하게 열었다. 큰아이의 단기방학. 1일부터 5일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매인 몸이었다. 연달아 집안에 결혼식까지 있어 2주가 그야말로 '홀랑' 가버렸다. 그제야 원고 마감이 생각났다.

큰아이 독서통장(아이들 책을 많이 읽히게 할 요량으로 학교에서 마련한 도서 적립통장.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100원, 다섯 줄 정도의 소감까지 쓰면 200원이 적립된다, 물론 이건 각 가정에서 지출하는 거다. ^^;)에서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라는 책을 본 건 그때였다.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에 이런 책도 있어?"
"그거 엄마가 준 거잖아."
"그래?(아이고 무안해라) 뭔데? 책 표지를 봐야 알겠어."

아이가 가져온 길다란 책에는 '저자 김용택'이라고 써 있었다. 그제야 후배가 "김용택 선생님이 그림책을 냈네요" 하고 말해 준 게 떠올랐다. 전북 임실 섬진강 변에서 나고 자라 작은 초등학교 선생으로 오래 지냈고, 섬진강 시로 유명해서 '섬진강 시인'이라 불리기도 하는 저자 김용택.

아이들의 일기를 시로 엮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엮은 듯했다. 책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으며 든 생각은 시인의 그림책이라 그런지, 이야기도 한 편의 시 같다는 거. 큰아이는 독서통장 독서소감에 이렇게 적었다.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에 나오는 보미와 재영이는 시골로 이사 왔다. 그래서 시골에서 사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시골에 있다 보면 시골 생활이 익숙해질 것 같다."

큰아이 말마따나 시골할아버지댁에 맡겨진 보미는 밤이 되자 캄캄해진 동네도, 학교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도(시골 학교엔 스쿨버스가 있다), 땅에서 풀들이 돋아나는 것도, 새들이 울며 날아가는 것도...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그리하여 때때로 서울이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났다.

한 편의 시 같은 그림책,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겉표지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겉표지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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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아침, 방문을 열었다.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당에 나가 내가 살 집을 보았다.
집이 작았다.
마당가에 소가 있었다.
동네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그렇다고 시골살이가 낯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신기한 것도 있었다. 집에 가는 길 길가에서 따라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소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 크게 울리는 핑경(풍경의 전라도 사투리) 소리도, 할머니가 풀 같은 것을 거꾸로 들고 나무 막대기로 탈탈 털면 하얗게 떨어지는 깨 그리고 '네 아빠도 가르쳤다'고 말해주는 선생님도 신기했다.

새로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오동 꽃이 보라색이라는 것,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까만 산이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 동생이 여치를 메뚜기와 헷갈려 한다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의 끝에 '엄마'가 있다는 것도.

그림책치고는 분량이 길게 느껴졌지만, 한 편의 시를 읽은 듯 깔끔한 내용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그림도 시원시원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펼쳐지는 듯했다.

"딸은 이 책에서 어떤 문장이 제일 좋았어?"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모? 더 생각해봐. 엄마는 이 대목이 참 좋더라. 들어 봐.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산이 까맣게 무서웠다. 둥근 달이 떠 있기도 했다. 달을 보고 가만히 달이라고 말해 보았다. 달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대목... 어때?"

"시 같아."
"그치?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근데 시면 시지, 시 같은 건 뭐야?"
"몰라. 그냥 시."

0.1초도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답에 퉁명스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냥 시가 뭐야... 그럼 시는 뭐니?"
"시? 음... 행과 연으로 되어 있는 거 아냐?"
"뭐?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닌지라) 하하, 누가 그래?"
"수업 시간에 배웠어."
"그래, 네 말도 맞다."

아 놔. 시를 교과서에만 배운 모양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김용택 글, 정순희 그림, 사계절(2015)


태그:#<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김용택,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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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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