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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마실이야기는 차로 시작한다. 차를 마시면서 문화예술인들과 마실 소상공인들이 만나 담소를 나누는 차차차모임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세심헌(洗心軒 : 우리집 큰방 차방 이름)에 모인다. 김용택 대표와 부인인 최상희씨도 그런 모임에 작년부터 나오는 재미있고 성실한 부부다.

세월호를 잊지말고 인양하자는데 마음을 모으고 다양한 활동을 얘기하다 오헨로를 걸으며 리본을 나눠줄 생각을 해 냈다. 여비는 보태주지 못하겠지만, 리본 구입비를 45만 원을 쾌척한 남편 김용택씨의 마음이 매우 반가워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글을 쓰게 된다.  - 기자 말

요즘 명상을 비롯해서 '나를 찾는 여행'이 붐이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사회를 따라잡느라 스스로를 돌볼 길이 없는 이들에게 '자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참선이나 명상이 아니라 실례로 순례라는 여행을 통해 '참나'를 찾는 이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증가세에 있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총 800㎞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이미 떴다. 이와 같은 길이 일본에도 한 군데 있다. 섬나라 일본의 4개 섬 중 가장 작은 섬 시코쿠(四國)에 있는 88개 사찰을 찾는 오헨로(お遍路)가 그것이다.

오헨로, 2013년 11월 제주 올레 '우정의 길'

공인된 외국인 최초의 선달(센다쯔) 연수회에서 찍은 기념사진.
▲ 상희 최선달! 공인된 외국인 최초의 선달(센다쯔) 연수회에서 찍은 기념사진.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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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무렵 일본 불교(밀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고보다이시(홍법대사: 弘法大師)는 시코쿠 해안가와 산길을 따라 포교의 길을 걸으며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그 포교 중에 연을 맺을 곳에 훗날 88개의 사찰이 들어섰다. 이후 제자들과 신도들이 그 사찰들을 차례로 순례하는 전통이 생겼고 지금은 해마다 3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 '두 명이 동행한다'는 뜻을 가진 '동행이인(同行二人)'으로 대표되는 이 길을 함께 걷는 '두 명'은 순례자 자신과 고보 대사를 뜻한다. 결국, 밀교에서 부처님처럼 숭배 받는 스님인 홍법대사와 함께 걷는 경건한 순례의 길이 된다.

홍법대사 구카이(공해:空海, 774~835)의 스승은 혜과(惠果)이며, 그 스승이 바로 신라밀교승인 현초이므로 고보다이시는 신라승 현초의 손자벌에 해당하는 손상좌인 제자인 셈이다. 현초 스님이 안 계셨으면 고보다이시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연유로 오헨로는 2013년 11월 제주 올레 '우정의 길'이 되었다.

따라서 이 길을 걷는 것은 일제의 길을 아무생각 없이 걷는 게 아니라 우리의 소성거사 원효와 같은 일본 홍법대사와 함께 그에게 불교를 가르쳐 준 현초 대사, 나아가 부처님과 여러 조사들의 길을 걷는 의미도 되며 제주 올레 우정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부처님 법을 따르는 데 우리 신라 현초 스님의 제자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굳이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그 길을 걷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순수하다면.

오헨로의 순례길은 전체 길이만 1200~1400km에 이른다. 모든 코스를 일주할 경우 하루 10시간 이상 걸어도 45일은 족히 걸린다. 이 길에는 스게가사라 불리는 삿갓과 하쿠이라는 수의를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염주와 지레이라 불리는 종, 와게사(목에 걸어 가슴에 드리우는 약식 가사) 경본 등 적지 않은 물품이 함께 한다.

비용을 절약하고자 20kg이 넘는 직접 배낭을 메고 텐트와 침낭만으로 노숙까지 해 가면서 걸어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례를 끝내고 받은 인증서를 가지고 기념촬영.
 순례를 끝내고 받은 인증서를 가지고 기념촬영.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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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에 헨로 안내자인 센다쓰(先達) 인증에 필요한 4번째의 순례를 마친 한 최초의 한국 여성이 있다. 서울에 사는 최상희씨(40)를 우리는 잘 모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일본 방송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의 전국 판에도 몇 번이나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버린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2010년 오헨로를 처음으로 찾았다. 아무 힘들고 서툴러 순례를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길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오셋타이'(お接待)를 통해 기운을 얻었다.

그 후로 연례행사처럼 오헨로를 찾은 그녀는 우리 한국인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 한글로 표기한 스티커를 전봇대 등에 붙이기도 했다.

옹졸한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조례 위반'이라며 인터넷 상에서 비판도 받은 적도 있다. 또 '헨로 길을 조선인의 손으로부터 지키자'는 내용 등이 적힌 벽보가 길에서 수차례 발견됐다. "내가 괜한 일을 한 건가"하고 고민하는 최씨에게 많은 일본인들은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며 격려했다.

이에 NHK 방송을 비롯한 대다수의 일본 언론은 '시코쿠 88개소 영장회(靈場會)'의 성명을 빌어 "차별은 용납할 수 없다. 다른 곳에서도 붙이려 하고 있다면 그만 두었으면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공인센다츠·도보순례회 회장으로 3년 전부터 오츠키 소학교에서 헨로 수업을 진행해 온 야마시타 나오키씨가 "세계유산을 목표로 하면서 부끄럽다. 시코쿠를 걸으며 일본의 문화를 이해해온 최씨를 나는 응원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사실은 작년 4월 10일경 우리나라에서도 미담이 된 숨겨진 뒷이야기는 묻히고 대대적으로 혐한 관계 기사로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 홍역을 겪은 후에도 최씨는 "응원해 준 친구들을 봐서라도 도망갈 수는 없다"며 속 큰 남편 김용택(주식회사 링크이 대표)씨의 허락을 받아 거의 '3개월'이나 걸리는 순례를 네 차례 계속했다.

최상희씨가 나눠준 노란리본을 하고 순례하는 일본인.
 최상희씨가 나눠준 노란리본을 하고 순례하는 일본인.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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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안 갈 것 같았던 순례는 바로 다시 시작되었다. 작년 11월 말에 끝난 다섯 번째 헨로 순례는 우리 국민이라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4월 16일 세월호 침몰이 계기가 되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자 길을 떠나는 최상희씨에게 노란 리본 배지를 주문해서 여비까지 얹어준 남편은 그녀를 이해해주는 훌륭한 도반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kg가 넘는 배낭에 노란 리본 배지를 더한 그녀는 순례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일본인과 외국인과 함께 희생자들의 명복과 가족들의 편안을 기원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두 배에 가까운 77일간의 여행이었다. 최상희씨는 "곤란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가 도와줬다. 시코쿠에는 따뜻한 마음이 통하고 있다. 국적과 상관 없이 마음은 이어져 있다. 모든 순례자에게 활짝 열린 곳이 되길 바란다. 세계에 그러한 마음을 퍼뜨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이 씨앗이 되어 헨로길 각지에 휴게소를 만드는 '헨로 고야(小屋∙작은 집)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건축가 우타 이치요(歌一洋)씨(68)가 설계한 '챠토코로 미토요 타카세(茶処みとよ高瀬)'(애칭, 한일우정의 헨로 휴게소)가 미토요시 타카세쵸 11호 국도변에 지난 12월 23일에 만들어졌다.
헨로 고야(小屋?작은 집)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건축가 우타 이치요(歌一洋) 씨(68)가 설계한 「챠토코로 미토요 타카세(茶?みとよ高?)」(애칭, 한일우정의 헨로 휴게소)
▲ 최상희씨가 일본에 남긴 것 가운데 하나 헨로 고야(小屋?작은 집)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건축가 우타 이치요(歌一洋) 씨(68)가 설계한 「챠토코로 미토요 타카세(茶?みとよ高?)」(애칭, 한일우정의 헨로 휴게소)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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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그녀는 이미 유창한 일본어를 사용한다. 아울러 다음에서 동행이인이라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는 주부다. 카페 등에서 오헨로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활동도 하고 있으며, 일본 친구들을 위한 민박(게스트하우스)도 가끔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체험담을 책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얼른 보고 싶으니 당분간 여기에 열중해 주면 좋겠다.

우리 마실 자주 찾는 부부의 이야기를 한번 옮겨봤다.

덧붙이는 글 | 김용택 최상희 부부의 작고도 큰 이야기



태그:#일본, #최상희, #오헨로, #홍법대사,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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