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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야간 열차를 타고 북유럽을 다녀오는 길이었고 다음 열차를 갈아타기에는 약 2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는 아침 8시경 이었다. 유럽에서는 그나마 저렴한 커피와 빵을 함께 파는 곳들에서 쉽게 식사를 해결 할 수 있었고 그날 아침 내가 찾은 곳도 역 안에 들어와 있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유독  꽤나 넓고 의자도 많은 곳이었고 더구나 아침 일찍이라 빵을 사가는 사람은 많아도 의자에 착석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공간이 남아도는 상황이었다. 밤 기차에 피곤에 지치고 지쳤던 나는 역시나 진한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을 사서는 빈 자리로 이동하려고 카운터에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카운터 바로 앞 방향으로 어떤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있는 테이블에서 내게 손짓을 했다. 남자 둘이 내게 자기들 쪽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얼핏보아도 독일인은 아니었고 마흔은 넘어 보이는 아랍계열의 남자들이었다.

독일 함부르크의 길 위에서 만난 남녀
▲ 길 위에서 만난 남녀, 2008 년 독일 함부르크의 길 위에서 만난 남녀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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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기가 막혔지만  아예 무시해버리고는 그들을 지나쳐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다 냅킨을 가져오지 않아서 다시 카운터로 갔는데 이 남자들이 또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앉으라는 표시, 그러나 무슨 길거리에서 여자 호리듯 저질스러운 손짓과 그 수준이하의 눈빛과 미소를 머금으며.

그들의 행동은 식사를 하는 내내 내가 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계속 이어졌다.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갔다. 이제 누가 보든 말든,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 내가 이 순간에 어떤 위기가 닥치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먼저 그 두 남자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여기 얼마나 빈 자리가 많은지 눈에 안 보여?, 지금은 아침 시간이야, 너희가 보다시피 이곳의 많은 자리들이 비어있어, 그런데 내가 왜 너희와 같이 앉아야 하는데? 너희 나 알아?"

그러자 그 중 한 남자가  마치 아이를 타이르듯 손가락을 자기 입에 가져다 대고는 "쉬~~!"라고 내뱉으며 내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또 한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주 고상한 척을 하더니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느냐는 식으로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걸 보니, 이제는 정말 인내의 한계가 온 것 같았다. 내가 일단 조용히 하라던 그 남자에게  "닥쳐!  너 ! 그 짓 그만 못해 !! " 라고 소리쳤더니 순간 남자의 눈빛에서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밀려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카타르 공항 풍경
▲ 카타르 공항 풍경, 2011 년 카타르 공항 풍경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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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나는 남자에게 대항해서는 안 될 여자. 그들이 바라보기에 분명 별 것 아닌, 남자 아래에 있어야 할 여자였다. 여행을 온 여행 족, 게다가 분명 여자 혼자 온 것 같고, 게다가 아시아인, 이 3 박자가 어울어진 데다가 여자의 몰골이 여행에 지쳐 초췌하다. 그러니 한 번 건드려봐서 넘어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일이었는데 감히 남자인 나에게 대항을 해 ?

눈을 부릅뜨고 부라리며 "감히 여자가, 어디서?" 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 식탁이라도 뒤엎을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야!  나 너희랑 똑같은 사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너희들, 아까부터 손짓 했을 때 내가 기분 나쁜 표정 지었던거 안 보였어? 그럼 예의를 갖추고 그만했어야지, 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 ? 어?! 

그랬더니 아주 기가막히다라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무어라 하려고 하길래, 나 역시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라는 태도로 "닥쳐! 조용히 해 ! 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황이 이쯤되자 겨우 더이상 어떤 짓들을 못하길래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자리로 돌아가기 전 카운터로 가서 그곳 점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이 나의 설명을 듣고는 알겠다고 하길래  내가 '어찌되었건 여기서 소리 질러 소음을 낸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다시 되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있는데 그들이  더 이상 앉아 있기 민망했던지 아니면 차를 다 마셔서인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한번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너희가 오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노려보았더니 아주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다독거리더니 결국엔 그냥 가버렸다.

독일 함부르크
▲ 독일 함부르크 2008 년 독일 함부르크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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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경험도 있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하루 종일 걷고는 피곤에 지칠대로 지쳐 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상대편에서 걸어 오던 어떤 아랍계 남자가 내게 그 어떤 오해의 여지도 없을만큼 성적 묘사가 적나라하게 들어간 말을 건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당시 나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나에게 한 말인지도 몰랐고 그가 무슨 이야기를 내뱉고 간 것인지도 의식없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가 지나쳐 가자 정신이 번뜩 나는 것이다.

나는 바로 뒤를 돌아 그를 찾았다. 그런데 그가 없었다. 그 길을 따라 상점들 안을 들여다 보자, 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키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들어가 들고 있던 지갑으로 냅다 그의 등을 내리쳤다. "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너 나에게 이런 말했지? 어?그랬더니 남자가 아니란다. 자기는 그냥 전화기에 대고 한 말이었단다. 

'뭐?  전화기? 니가 언제 전화했어?! 넌 분명히 나에게 말했어. 너 앞으로 다시 또 그딴 말 하고 다니면 죽어. 알았어?' 그리고는 냅다 한 대를 더 세게 때리고는 딱 잡아 떼는 그 남자를 두고 카페를 나왔다. 나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니 그도 카페에 나와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내가 다시 주먹을 쥐고 노려보니, 기가 막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얼마 전 까지도 나는 이러한 경험들을 남자와 여자, 혹은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 인권이나 그들의 종교관 어디 즈음에서 바라보는 데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와 같은 일화들에서 보듯, 대부분 이슬람계 남자들과의 불쾌했던 내 개인적인 경험들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은 종교도, 남녀의 평등 혹은 남성과 여성간의 성(性) 문제,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해변가의 두 연인
▲ 해변가의 두 연인. 2013년 해변가의 두 연인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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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른 한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

기차표 검사 도중 내가 대답하는 말 끝마다 따라하며 비아냥거렸던 한 독일 공무원도, 베네치아에서 길을 가다 동양인이라며 대놓고 나를 비웃어 대며 따라오던 어린 남자 아이들도, 내게는 기본적인 설명 사항 조차 알려주지 않으며 투덜거리던 한 우체국 여자 공무원도, 새벽 2시에 혼자 자고 있는 객실로 전화를 걸어 언어 추행을 했던 스위스의 한 호텔 남자 주인도 결국엔 그 경계의 선을, 인간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는 남겨 두었어야 할 '인간 존중'이라는 기본됨을 저버린 탓이었다.

작가인 크리스티안 생제르는 그녀의 한 책에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모든 존재가 제 방식대로 인생이라는 어려운 향해를 헤쳐나간다. 성공을 얻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가장 비밀스레 자리한 희망과 격정을 향해서다. 각각의 영혼을 존중하라는 법칙을 무시하면 세상은 죽음에 든다"

Hamburg, Germany.
▲ Hamburg, Germany, 2008년 Hamburg, Germany.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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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음을 멈추며 나를 놀리던 베네치아의 남자아이들 앞으로 다가갔다. "너희들은 이탈리아 인들이니?, 혹시 영어 할 줄 아니? "라고 묻자 아이들은 짧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부재한 것, 그리하여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이들의 눈을 하나 하나 똑바로 마주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인들은 사람을 피부색 따위로 구분하여 업신여기지 않아, 적어도 내가 아는 이탈리아 인들은 아무리 어리더라도 상대에게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들을 이렇게 쉽게 하지 않아"

순간 아이들의 눈빛에서 당혹감이 일었다. 그리고는 내가 물러가라 하지 않았는데도 멋적은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기에 상대도 쉽게 대할 수 있는 법이다. 내가 나를 존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에 함부러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법이다. 죽음은 반드시 육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되는 믿음들이 흔들릴 때, 결국 우리는 죽음에 든다.


태그:#인간에 대한 예의,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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