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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정류장에 정차한 8012번 2층 버스
 잠실역 정류장에 정차한 8012번 2층 버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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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수도권 교통 최대의 화젯거리는 경기도의 2층 버스 시범 운행이었다. 12월 3주간 수원, 김포, 남양주를 달리며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을 실어 날랐으며, 부족한 교통망으로 고민하는 인천 청라에 찾아가 교통난 해소방안을 모색해보기도 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SNS와 뉴스 댓글에서 의견을 교환했다. 항상 이용은 하지만 정작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던 버스에 대해 오래간만에 이야기꽃이 피었다.

하지만 2층 버스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 발전을 위해 더 나아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들이다.

효율성

2층 버스가 우리에게 상기시킨 첫 번째는 바로 효율성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국내 최초의 버스 운행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면서도 버스 수송의 기본 규모는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물론 경유대신 CNG(압축천연가스)를 쓰고, 안내양이 사라진 대신 교통카드가 등장했고, 차고가 낮은 저상버스와 고급좌석으로 장거리를 운행하는 광역버스가 나타났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사 1인당 수송하는 승객수와 버스 1대가 차지하는 면적은 큰 변화가 없다.

이러다 보니 버스는 낮은 수송력의 대명사로 불린다. 수송력이 낮아 차내 혼잡과 입석 운행 문제가 불거져도 이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차량과 기사를 늘리는 것도 모두 비용이고, 차량이 많아지면 공영차고지와 CNG충전소도 늘어야 하는데 주민들 반대가 심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버스는 승객 수송에 있어서 공간 효율성과 에너지 효율성이 모두 낮은 상태에 머물러 발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층 버스는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발상을 제시한다. 바로 옆으로 늘릴 수 없다면 위로 늘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아파트다. 우리나라에 인구가 늘면서 단독주택만으로 주택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등장한 게 아파트다. 주택을 층층이 쌓아올리면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주택가격에 포함된 토지비용이 줄어든다. 가용토지가 부족한 우리나라다운 해결법이다.

2층 버스도 마찬가지다. 귀중한 도로를 아끼면서 수송력을 높일 수 있다. 도로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특히 중앙버스 전용차로는 더하다. 우리는 중앙버스 전용차로에 과도한 버스가 들어갔을 때, 버스들이 옴짝달싹을 못하는 일명 '버스기차'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정류장 앞 도로도 비싼 도로다. 정류장에 버스가 너무 많이 몰리면 승객은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고 버스는 지연이 심해진다. 버스가 도로를 적게 차지하는 것은 교통흐름 개선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 토지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홍콩에 2층 버스가 일반화되어 있는 이유를 새겨보아야 한다.

아울러 2층 버스는 기사 1인당 더 많은 승객을 나를 수 있다. 운전기사 업무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2층 버스가 2배의 승객을 나르지만 연비가 절반까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낮은 효율 때문에 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하고 버스의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효율이 높은 2층 버스는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

2층 버스의 1층은 저상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
 2층 버스의 1층은 저상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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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버스가 제기하는 두 번째 화두는 바로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다. 2층 버스를 말할 때 보통 버스 2대분이라고 하는데,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저상버스 1대와 광역버스 1대다. 이번 시범운행 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사실 2층 버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1층의 저상기능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저상 시내버스는 있었지만, 저상 광역버스가 없었다. 이 때문에 지체장애인이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수도권의 부실한 광역철도망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장애인들은 중거리 대중교통 이용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시범운행을 한 2층 버스는 최초로 광역버스의 저상운행 가능성을 실증했다. 그동안 장애인들은 고속버스나 시외버스에 휠체어 탑승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특히 지난해 9월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정류장에서 '저상 2층 광역버스'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 저상 광역버스의 도입은 시대적 요구라고 할 만하다.

대중교통은 영어로 공공교통(public transportation)이라고 한다. 그만큼 높은 공공성을 필요로 하고 사회적 약자를 먼저 우대할 의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2층 버스는 우리 사회의 질적 발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2층 버스로 운행된 8012번을 탔다. 올 때는 1층에 탔었는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옆에 달리는 자가용과 눈높이를 맞추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승용차를 내려다보는 일반 광역버스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층 버스의 1층이 저상 구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휠체어 장애인들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규제완화의 필요성

불합리한 규제때문에 2층 버스 안에서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불합리한 규제때문에 2층 버스 안에서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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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층 버스는 우리에게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현재 지자체의 2층 버스 도입의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규제라고 한다. 정부 규제상 버스의 높이가 4m로 제한되어 있는데, 2층 버스는 그보다 높다는 것이다. 버스 제작사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높이를 낮출 수 있지만, 그러면 승객이 차내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이동해야 하는 등 불편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규제가 시대변화를 못 따라가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만하다. 국민들의 신체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작은 버스 안에 승객을 가둬놓는 꼴이다. 승객의 신체에 맞춰 버스의 규격을 정하는 게 아니고 버스의 규격에 신체를 맞추라니, 이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작년 여름 국토교통부가 전격적으로 광역버스 입석금지를 시행했을 때 가장 비판을 받았던 부분은 충분한 대안 마련 없이 시행을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정작 모든 규제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규제완화를 통한 대안 마련에 인색하다면 이는 무책임한 일이다. 불필요한 규제의 개혁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 규제완화가 어렵다면 정부가 독점하는 권한을 지방에 이양시키는 것도 좋다. 특히 수도권 교통은 어느 한 지자체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선진 외국과 같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수도권 교통 통합행정기구를 만들고 수도권 교통에 대한 권한을 과감히 이양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전문적인 기구가 수도권 교통을 담당한다면 불필요한 규제들이 한층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은 기본적으로 서비스라고 한다. 서비스업 발전을 주장하는 현 정부가 정작 본인의 행정서비스가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이는 큰 문제다. 2층 버스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가 '손톱 밑 가시'가 되어 통근자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정부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시범 운행된 2층 버스는 짧은 시간임에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거리를 남겼다. 특히 2층 버스가 '불합리한 규제'라는 바탕 위에서, '효율성'이라는 실리와 '교통약자 우대'라는 명분을 동시에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더 나은 변화를 위한 방향성이 뒷받침될 때, 2층 버스와 같은 새로운 대안이 도입되고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 기자는 공공교통애호인, 교통평론가입니다.



태그:#2층버스, #경기도, #국토교통부, #알렉산더데니스, #규제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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