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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사진에 찍힌 인물은 글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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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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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네가 신분 상승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니 결혼 안 하고 이대로 살아 봐라. 딱 이렇게만 평생 살아야 된다."

옆 테이블에 앉은 세 여자의 대화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들을 향해 "내 이혼하고 싶다. 이 인간 진짜 싫다. 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라고 푸념했던 그 여자였다. 귀가 쫑긋거렸다. 삼십 분이 넘도록 남편과 남자친구 욕을 하며 '남자는 다 개새끼'라고 열변을 토하던 그들이었다.

나는 요즘 어딜 가나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올해 나이 서른이 되었기 때문인지, 건강상의 이유로 지방에 내려와 있는 탓인지, 하루라도 '결혼' 이야기를 듣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나라, OECD 국가 중 이혼률 1위를 차지했다는 대한민국 이야기가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엄마, 자아 분열을 시작하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나의 어머니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능력 되면 혼자 살라거나,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하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하셨다. 채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병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어린 세 자매를 홀로 키운 여성의 입에서 나온, 흘려 듣기에는 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랬던 엄마가 변했다. 요즘 엄마는 "부모가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결혼을 늦게 한다더라", "나중에 애 낳으면 봐줄게"라는 식의 말을 던진다. 부쩍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시더니, 주변에서 얼마나 '들리는 소리'가 많으면 저러실까. 그렇게 쿨했던 우리 엄마를 이토록 자아 분열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과연 뭘까?

10년 가까이 떨어져 있다 오랜만에 같이 살게 된 가족, 태어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창원이라는 계획 도시.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서울보다 물가가 비싸고 부동산 버블, 사교육 열풍이 극심한 창원시. 창원에는 부동산으로 한몫 건진 졸부들이 많고, 공업 도시답게 대기업 다니는 사람도 많다. 화려한 도시 이면에 가려진 빈부 격차는 말할 것도 없다.

엄마의 자아 분열은 바로 이 화려한 도시의 급속한 성장과 빈부격차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남들은 재건축한 아파트를 분양 받아 때깔 좋은 일상을 누리고, 화려한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에서 소비를 즐기고 있을 때 나만 초라하고 피곤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 대기업 다니는 남편들 덕에 지금까지 힘든 노동이라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친언니와 친동생을 마주할 때마다 느낄 부러움. 대기업에 다니지 않는 나의 자식들이 평생을 노동해 봐야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 엄마의 자아 분열은 사실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억 소리 나는 결혼이 일상이 된 대한민국

ⓒ splitsh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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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4포 세대의 중심에 서 있는 소시민이자 올해 서른을 맞은 가난한 여자다. 서울에서  4년 동안 젊음을 바쳐 일했지만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언론학을 전공해 자연스럽게 기자 생활을 했고, 마케팅에도 발을 담갔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소수 대형 언론사 기자가 아닌 이상 기자 월급만으로 혼자 서울 생활을 하다가는 생활비가 빚이 되어 돌아오기 십상이었다. 결혼은커녕 연애만 해도 신용카드 회사의 VIP가 되는 인생들.

그런데 뉴스에서는 결혼을 하기 위해 남녀가 도합 평균 2억 5천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단다. 잘 사는 집의 자제들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 중산층 친구들이 결혼을 할 때는 물론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이 결혼을 할 때도 빚을 포함해 억 소리 나는 결혼을 하는 경우는 흔하다. 듀오웨드의 조사에 따르면 예비 부부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싸우게 되는 주된 이유는 '신혼집 마련(35.6%)'과 '예단, 예물(27.1%)'이라고 한다. 이 억 소리 나는 결혼의 주범은 바로 이 집과 예단일 것이다.

종전(終戰)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들인 우리 세대는 대부분 대학 교육을 받은 '배울 만큼 배운 세대'다. 나는 어릴 적, 순진하게도 우리 세대가 결혼할 때쯤이 되면 이런 부조리한 결혼 문화는 사라질 줄 알았다.

대체 왜 우리는 결혼에 이렇게 큰 돈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제 막 스스로 인생을 일구기 시작한 두 사람에게 어째서 빚까지 잔뜩 얹은 인테리어 잘 된 신혼집이 필요한 걸까? 당장 다음달 생활비가 걱정인 청춘들에게 수백 수천 하는 예단과 예물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편에서는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기피하고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 현상을 개인주의 또는 이기심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 현상이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자유를 의미한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이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축적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두려울 만큼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왜일까?

5070 '결혼은 내 욕망'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금쪽같은 내 새끼들에게 아낌 없는 교육의 기회와 함께 끝 없는 경제적 원조를 베풀었다. 우리 세대 중 상당수는 결혼해서 새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부모의 집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결혼을 할 때도 잘 사는 집이든 못 사는 집이든 집안 허리가 휠 만한 결혼을 준비한다. 알뜰 결혼식이라고 준비해 봐야 천 단위의 돈은 우습게 깨진다. 그것은 부모의 집, 부모의 결혼, 부모의 인생에 진배 없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가 아니면 재산을 불릴 방법이 없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훈수를 두는 부모를 앞에 두고, 지금의 국가적 전세 대란, 부동산 버블이 당신들 탓이라고, 나는 좋은 대학 들어가고 대기업 다니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대다수가 노동 시간 대비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매년 연봉은 제자리 걸음인 데다 태반이 비정규직인 것은 물론 직장 분위기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의 욕망이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자식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다.

까놓고 말해 우리 세대는 돈도 없거니와 자립 능력도, 위기 대처 능력도 부족하다. 영유아기에 세균이나 추위에 어느 정도 노출된 아이일수록 성인이 된 후에도 면역력이 더 높은 법이다. 험한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갈 만한 면역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의 인생과 완전히 분리된 나만의 인생을 개척할 만한 힘도 의지도 부족하다. 거기에다 우리는 겉만 화려할 뿐 부와 권력, 교육의 혜택이 극심하게 치우쳐 있는 밀림 속에 살고 있다.

나는 이 화려한 결혼 문화를 만들고 조장한 주범이 안타깝게도 우리 부모 세대라고 본다. '5070' 세대의 남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무엇보다 주변으로부터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바로 내 자식 결혼에서 정점을 찍은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 데도 호텔 뺨 치는 결혼식은 늘어만 간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수요가 높아진다는 '베블런 효과'의 대표적인 예다. 베블런 효과는 주로 인간의 과시욕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자식들은 그런 결혼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자신의 의견과는 상관 없이 부모들이 원하는 결혼을 해야만 한다. 나에게는 언제나와 같이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일평생 부모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만을 살아온 기생(寄生) 자녀들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에도, 행복과 쾌락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는 그들은 그저 탐닉하는 본능에 충실하다. 기생하거나 경멸하거나.

국제시장 포스터
 국제시장 포스터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몰이는 산업화의 1등 공신으로서 인정 받고 존경 받기 원하는 5070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곧 천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이는데, 인구 5천만의 대한민국에서 천만을 달성한 영화들은 대부분이 기성 세대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을 허지웅씨가 세대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영화를 거론한 것은 '말실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인 셈이다.

어쨌든 영화를 떠나서 기성 세대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사실은 말 그대로 '팩트'다. 그렇다면 그렇게 고생해서 오늘을 일군 기성 세대의 자녀들의 오늘은 안녕할까.

본론부터 말해 지난해 서울시의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이 세대는 결혼하고 자녀 낳기를 꺼려한다. 이 우울하고 처절한 인생살이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이 세상에 내 후세를 만들어 다시 그 힘든 인생살이를 시작하게 만드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다. 번식하지 않는 DNA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자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살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기성 세대가 만든 세상은 화려하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은 우울하고 우울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젊은 세대가 정치적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권까지 잃게 된 것이다. 정치가 나의 기분과 현실을 좌지우지하는 돛대라는 사실을 회피한 순간, 우리의 미래는 내가 기생하거나 경멸하는 기성 세대의 손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나

내가 태어나 자라고 당분간 머물러야 할 창원은 '부자 도시'로 불리는 공업 도시, 즉 노동자들의 도시다. 그러나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 아니라 비판만 해도 그 즉시 욕을 들어먹기 좋은 새누리당의 터전이기도 하다. 겉은 화려하지만 윤락 시설이 넘쳐 나고, 끝없는 재개발로 가난한 원주민들이 발 붙일 곳 없는 도시. 이곳에서 살다 보면 때로 죽은 것처럼 살거나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나 혼자 죽자니 억울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에게 내일은 정말로 없는 걸까?

이 사달을 정리하려면 우선은 서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기성 세대는 자살하는 세대를 양산해 낸 책임이 상당 부분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법을 지금이라도 배워야 한다. 청년 세대는 사실 우리가 불행하고 비어 있으며 아직도 연약한 상태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세대의 화려한 결혼은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가 서로의 과오를 외면하기 위해 함께 치르는 비싼 의식(Ritual)에 불과하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신은 죽었다'고 설파하며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그 신에는 신이나 국가뿐 아니라 부모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내 인생에서 자식을, 내 인생에서 부모를 스스로 퇴장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판결>에서 부자(父子)가 서로에게 내리는 단호한 결별 장면은 소름 끼치도록 희망차다. 그들은 진짜를 시작하기 위해 용기를 낸 투사들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함께 보다 나은 내일,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건 모두 용기를 내야 할 2015년이다.

"나는 지금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게오르크는 쫓기듯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귓전에는 아버지가 뒤에서 침대 위로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중략--- 게오르크는 문을 뛰쳐나와 차도를 지나 강으로 달려갔다. 그는 굶주린 자가 음식물을 움켜잡듯이 난간을 꽉 잡았다. 소년 시절에는 부모가 자랑스러워 하는 뛰어난 체조 선수였던 그는 그때와 같은 체조 솜씨로 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점점 힘이 빠져 가는 손으로 아직 난간을 잡고 있는 그는 난간 기둥 사이로 자기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를 쉽사리 들리지 않게 해줄 것 같은 버스를 보면서 "부모님, 전 당신들을 언제나 사랑했습니다"라고 나지막이 외치며 떨어졌다.

(* 비유는 비유일 뿐, 괜히 부모 자식 간에 인연 끊고 하는 귀찮은 일은 없기를)


태그:#결혼,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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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상적인 사회를 꿈 꾼다. 사회가 변화하길 꿈 꾼다. 사람들이 변화하길 꿈 꾼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 꾸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내가 어떤 이상을 바라왔던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꿈 꾸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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