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을 끝자락인 지난 11월 29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있는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 마을 찾았다.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날씨가 포근하다. 우뚝우뚝 솟은 산들이 산뜻하게 보인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는 빈 짚단이 초병처럼 서 있다. 흙에서 나는 풋풋한 냄새가 마음을 산뜻하게 한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용산에서 양수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하늘은 여전히 비라도 내릴 듯 잔뜩 찌푸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이제 늦가을 지나 겨울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다. 나뭇잎을 떨군 채 앙상하게 서 있는 나뭇가지가 어쩐지 추워 보인다. 

황순원 문학관의 모습이다. 휴일에는 2천명정도 관람한다고 한다.
 황순원 문학관의 모습이다. 휴일에는 2천명정도 관람한다고 한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소나기 마을을 거닐다

양수역에서 내려 문호리 행 버스를 탔다. 작고 아담한 버스다. 버스는 북한강 변을 따라 시원하게 달렸다. 강 건너 산은 반쯤 운무에 가려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산이 떠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 저기 집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덮여 있다.

15분 정도 달려 문호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서능리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바꿔 탔다. 시장을 보러왔다는 아주머니와 동행했다. 예전에는 집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시인들이 많이 들어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외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개울이라하기에는 물이 너무 없다. 물길을 막아 그나마 물이 흐르고 있지만 그 위쪽으로는 풀들이 자라 개울같이 않은 풍경이다.
 개울이라하기에는 물이 너무 없다. 물길을 막아 그나마 물이 흐르고 있지만 그 위쪽으로는 풀들이 자라 개울같이 않은 풍경이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소나기 마을로 가는 동안 산밑으로 고급 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가 다 왔다며 차에서 내리면서 "잘 다녀오라"고 까지 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인심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윽고 버스는 개울을 건너 소나기 마을 입구에 내려 주었다. 소나기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예전과 달리 나이를 보여 주는 듯 거무스름하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몇 년 전과 너무 변해 있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가득하다.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언덕길에도 차들이 줄 서 있다.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치즈체험관이 생겼다. 문학관으로 오는 버스와 치즈 체험장으로 오는 버스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치즈체험관이 생겼다. 문학관으로 오는 버스와 치즈 체험장으로 오는 버스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가 만났을 개울물은 말라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개울의 면모를 잃어가고 있다. 겨우 가두어 놓은 작은 보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서야 개울인 줄 알았을 정도다. 그동안 가뭄이 심한 탓도 있지만 원래 개울 모습으로 복원이 필요한 듯하다.

문학관으로 오르는 언던길 입구에는 치즈를 만드는 체험 마을이 조성돼있다. 옆에는 레일 위로 달리는 썰매장까지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썰매를 즐기고 있다. 조금 떨어진 언덕에는 젖소를 기르는 우사도 보인다. 황순원 선생이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잠시 생각해 본다.  

수수대가 있는 광장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있다.
 수수대가 있는 광장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있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문학관으로 가는 길을 오르다보니 이미 문학관을 관람하고 오는 어른과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광장에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진 수숫단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한가롭다. 모두가 예전 그대로 잘 관리되고 있다. 달라졌다면 과람객수가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황순원 선생 묘소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관람객, 선생님도 반갑게 맞아 줄 것만 같다.
 황순원 선생 묘소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관람객, 선생님도 반갑게 맞아 줄 것만 같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일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1천에서 2천 명 정도 관람한다니 소나기 마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하다. 황순원 선생도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배하기 위해 묘소를 찾았더니 먼저 오신 분들이 짝을 지어 참배하는 모습이 보인다.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문학관 내부의 기둥에 선생을 추모하는 글을 남긴 학생도 있다.
 문학관 내부의 기둥에 선생을 추모하는 글을 남긴 학생도 있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이 모습을 보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게 생각된다. 신춘 문예 작품을 선생이 심사했으니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묘소 참배를 마치고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전히 모든 것이 잘 정돈 되어 있다. 기둥에 노란 색종이가 기득 붙어 있다. 감사하다는 인사다.

숲길을 걸으면서 선생의 작품을 설명한 표지판의 글자가 자연 훼손 된 곳도 있다. 복원이 필요한 곳이다.
 숲길을 걸으면서 선생의 작품을 설명한 표지판의 글자가 자연 훼손 된 곳도 있다. 복원이 필요한 곳이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휴대폰에만 매달려 살 줄 알았던 아이들의 가슴 속에 우리의 문학이 싹이 트고 있구나 생각하니 기특한 일이다. 문학관을 나오는데 광장 계단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황순원 성생에 대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 물어보니 강원도 고성에서 온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고 한다.

문학관을 나와 산책길을 오른다. 이곳은 소설 속의 배경들이 잘 꾸며져 있다. 소나기 광장과 사랑의 무대, 고백의 길, 수숫단 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송아지 들판, 너와 나만의 길, 등을 걸으면서 잠시 소설 속의 주인공이 돼 본다. 설명이 떨어져 나간 곳이 있어 보수가 필요한 곳도 있다.

목넘이 마을로 가는 고갯 길, 이 길을 걸으면 짙은 소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어 가슴까지 시원하다.
 목넘이 마을로 가는 고갯 길, 이 길을 걸으면 짙은 소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어 가슴까지 시원하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소나기마을은 황순원 선생의 대표작 '소나기'의 무대인 징검다리, 수숫단, 들꽃 마을 등으로 재현한 체험장이다. 작가와 문학의 생애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관이다. 이외에도 대표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산책로가 꾸며져 있어 짙은 솔 향기와 함께 문학의 향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온 중고등학생이 황순원 선생의 작품을 공부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온 중고등학생이 황순원 선생의 작품을 공부하고 있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황순원 선생의 문학관이 이곳에 들어선 이유는 단편소설 소나기의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작품 배경이 양평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소설 끝 부분에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을 문학 테마 마을로 재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야 서운한 마을을 안고 문학관을 떠났다.   


태그:#ㅄㄷ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