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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이탈리아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 뉴스가 이탈리아 대다수 언론 사회면에 올랐다. 이탈리아 북동부 트리에스테시의 막스 수아르드(48) 신부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막스 수아르드는 1995년부터 트리에스테 교구의 여러 지역 본당 신부로 활동하며 인접지역인 슬로베니아 이주민들을 담당하기도 했다. 보이스카우트를 담당하기도 했던 그는 여러 학교에서 종교담당 교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특히 막스 수아르드 신부는 여러 방송매체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터라, 그의 자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부 가톨릭 사제들의 탈선행위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교황청은 아동 성추행 등을 저지르거나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한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높은 수준의 문책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가톨릭 사제들의 탈선행위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교황청은 아동 성추행 등을 저지르거나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한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높은 수준의 문책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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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로 급히 휘갈겨 쓴 유서와 목을 매 자살한 막스 수아르드 신부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퇴출 관련 면담을 하기 위해 그를 찾은 트리에스테 교구 소속 잔파올로 크레팔디 대주교였다. 대주교는 급히 응급차를 불렀으나, 막스 수아르드 신부는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는 짤막한 내용만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은 지난 10월 21일 서른 살의 한 여성이 막스 수아르드 신부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교구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비롯됐다. 이 여성은 막스 수아르드 신부를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신고하면서 자신이 17년 전 그로부터 당한 성추행을 낱낱이 기록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이 변호사를 통해 밝힌 것에 따르면, 이 여성은 과거 13살 때 수아르드 신부로부터 당한 성추행이 자신을 괴롭고 수치스럽게 만들었으며, 이후 힘든 성장기를 보내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성추행 기억 때문에 그 지역을 벗어나 떠돌아다니며 살았다고 밝혔다.

이 여성이 17년 전 과거의 아픈 기억을 꺼낸 이유는 자신의 조카 때문이었다. 여성은 자신의 조카가 교리공부를 시작했다며 담당 신부를 소개했을 때 경악했다. 과거 자신을 성추행했던 바로 그 사제였기 때문. 여성은 조카와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용기를 내 과거 있었던 일을 알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교구청이 해명을 요구하자, 수아르드 신부는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모두 순순히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수아르드 신부는 직접 작성해 제출한 서류에 "그 같은 행동이 죄가 되는지 정말 몰랐다, 또한 상대측에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주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만약 알았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피해자에게 깊이 사과하며 용서를 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부가 30년 동안 아동 130명 성추행

가톨릭교회 내 아동성추행 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건 29년 전이고, 본격적으로 심판대에 세워지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 년 전이다. <AP통신>이 2014년 1월 낸 통계 보도자료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사제들의 성추행사건 관련소송의 피해보상금만 2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에 처음 드러난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은 1985년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발생한 길버트 고드 신부 사건이다. 1974년부터 1983년까지 교구의 어린이 수백 명을 성추행한 그는 20년형을 받았다. 2002년에도 미국 보스턴 대교구의 존 지오간 신부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10세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은 그는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지난 30년간 130명에 이르는 아동을 성추행했음이 추가로 드러나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지오간 신부가 문제를 만들 때마다 다른 교구로 이적시키며 사건을 은폐해온 보스턴 대교구의 버나드 로 추기경 역시 지탄을 받았다. 수감됐던 지오간 신부는 복역 중에 동료죄수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심각한 아동 성추행이 끊임없이 일어난 지역은 미국이다. 심지어 미국 내 5개 교구는 피해 보상금과 재판 진행 경비 등으로 재정 파산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내 아동 성추행 문제가 처음 드러난 29년 전,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문제를 일으킨 사제들을 비판하고 나서긴 했지만, 그에 따른 구체적 조치 없이 개인의 일탈행동으로 치부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2005.04~2013.02) 역시 아동 성추행 사건에 수치심을 느낀다며 이 문제에 접근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형 게오르그 라칭거 신부가 이끌었던 독일 바이에른 주 레겐스부룩 소년성가대 내에서 사제들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새 교황에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발맞춰 지난 1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유엔 아동권리 위원회가 아동성추행 사제들을 상대로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교황청은 이례적으로 책임 있는 담당자들을 파견해, 유엔에 적극 협력하며 문제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동성추행대책위 만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4일째인 지난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 소성당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는 모습.
 방한 4일째인 지난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 소성당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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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엔 등의 지적을 받아들여 즉각 실천에 옮겼다. 교황청은 지난 3월 아동성추행 대책위원회를 만든 것은 물론, 교회법을 개정해 성폭력, 아동성추행, 아동 성매매, 아동 성 포르노 등에는 최고 12년형의 실형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7월 7일에는 사제들에게 성추행 당했던 피해자들 6명(독일, 아일랜드, 영국 각각 2명씩)을 교황청으로 초청해 직접 피해사례를 듣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들뿐만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데 가담한 담당 주교들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문책을 내리고 있다. 지난 9월 교황이 직접 발표한 것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사제 지원자 숫자가 감소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성이나 자질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제양성을 해선 안 된다"라며 "하느님을 빙자하여 교회가 부여한 지위와 안락함을 누리는 사치 군림형 사제들과 교회의 은폐 속에서 범죄와 탈선을 저지르는 사제들에 대해 강경방침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같은 달 교황은 사제의 아동성추행을 은폐해 온 아일랜드의 숀 브래디 추기경을 은퇴시켰다. 일각에선 이번 브래디 추기경 은퇴가 75세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는 주교들 관행에 따른 것이긴 하나, 1975년 브렌덴 스미스 신부의 사건을 은폐 축소한 것에 따른 문책성 은퇴라고 분석했다. 스미스 신부는 1997년 74건의 성추행으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한 달 만에 급사한다.

9월 25일에는 폴란드 출신 베소워프스키(66) 대주교가 경찰에 체포된 뒤 가택에 구금된 사건이 발생했다.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도미니카 주재 교황청 대사로 파견돼 근무한 그는 현지에서 아동 성추행을 저질렀고, 이 사실은 현지 신문에 공개적으로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2013년 8월 소환됐고, 2개월 뒤인 10월 교회법에 따른 재판을 받은 뒤 사제직을 박당 당했다. 교황청은 사제직을 박탈당한 그를 이탈리아 경찰에 넘겼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가택구금 조치 등이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이다.

현재 형사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재판이 시작되는 2015년 1월까지 인터폴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게 되었다. 교황청에 따르면,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고위성직자를 대상으로 행해진 강도 높은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베소워프스키 대주교는 도미니카에서 근무할 당시 일반평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14세 미만 아동들을 돈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가 수만 장의 아동 포르노사진과 수백 개의 아동 포르노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황청은 베소워프스키 대주교 사건을 은폐해왔던 파라과이의 리비에레스 플라노 주교도 전격 해임했다. 리비에레스 주교는 2002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미국 경찰의 추적을 받던 카를로스 우루티고이티 사제를 캐나다로 도피시키는 것은 물론 주교 총대리로 임명하는 등 물의를 일으켜왔다. 더불어 리비에레스 주교 또한 주교회의 횡령혐의를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블랙리스트 1번은...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르>의 2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대다수 이탈리아인들은 가장 타락한 교구인 북서지역 리구리아 지방에 대해 교황청이 강력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문은 알벵가(사보나)에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나체사진을 올리는 사제, 밤늦게 새벽까지 바(bar) 등에서 일하는 신학생, 여성신도들에의 프러포즈를 하는 사제, 금고를 들고 도망가는 사제 등 탈선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몇몇 시장이 교황청에 항의서를 올렸지만, 담당 주교는 "음해하려는 소문일 뿐"이라며 "소문에 대한 진상규명이나 해명 자체가 성스럽고 거룩한 교회를 해칠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주민들이 해당 지역 주교인 마리오 올리베리(71)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블랙리스트 1번'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편, 몇몇 가톨릭사제들의 탈선행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내 가톨릭 신자는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문제나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황의 태도에 신뢰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태그:#이탈리아, #기독교, #사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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