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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2014년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일본에서 이예다씨와 함께 징병 반대 활동을 하고 온 '안악희(가명)'라고 합니다. 이예다씨는 2012년 징병을 거부하고 프랑스 정부에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오로지 병역거부라는 하나의 사유로만 망명이 받아들여진 최초의 사례입니다. 저는 앞으로 진행될 연재에서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여러분께 알리고자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예다씨의 방일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선, 2014년 내내 벌어진 군 내의 사고와 맞물려서, 한국군이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비인권적인 구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지,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얼마나 열악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아울러 민주화 이후 자유국가가 되었다고 알려진 한국에서 아직까지 병역거부를 비롯한 인권 상황은 좀체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예다씨는 아주 바르고 반듯한 분이셨습니다. 덕분에 일본의 활동가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작가 아마미야 카린씨로부터는 '예다링'이라는 애칭까지 받았습니다. 4일 동안 벌어진 질풍노도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이곳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기자 말

2014년 9월 18일.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멀리서 통학로에서 아이들이 뛰어가는 소리, 자전거의 벨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의 주택가는 정말 조용하다. 한국의 주택가에 어느 정도의 소음이 항상 깔려있는 것과는 달랐다. 때로는 지나친 고요함이 이상할 정도다. 

<주간 금요일>의 대담이 끝나고 난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두 사람. 이예다씨와 아마미야 카린씨의 대담은 주간 금요일 10월 24일자(제1013호)에 수록되어 있다.
▲ 이예다씨와 아마미야 카린씨 <주간 금요일>의 대담이 끝나고 난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두 사람. 이예다씨와 아마미야 카린씨의 대담은 주간 금요일 10월 24일자(제1013호)에 수록되어 있다.
ⓒ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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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일본의 진보적 주간지 <주간 금요일>과의 대담이 잡혀 있었다. 이 잡지는 광고를 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토요타도 과감하게 비판하고 일본에서 터부시되는 위안부 문제나 재일교포 문제도 과감하게 다룬다. 아마미야 카린씨는 이 잡지의 편집위원이다. 이예다씨와 아마미야씨는 징병제부터 평화헌법, 전쟁, 국제평화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다. 아마미야씨는 이예다씨가 징병을 거부하고 프랑스에 망명한 과정이 가장 궁금한 듯했다.(관련기사 : 토요타도 과감하게 깐다, 우린 광고가 없으니까)

"망명할 당시, 프랑스 정부의 난민신청 담당자가 한국군의 현 실태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놀라던가요?"

이예다씨가 답했다.

"전부 다요."

대담을 마치고 우리는 일본 국회로 향했다. 참의원회관에서 출입인 등록을 하고,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입장했다. 일본 국회에는 여러 개의 세미나실과 소회의실이 있는데, 이곳들은 국회의원 승인 하에 시민단체나 NPO의 집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 국회의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토론회와 비슷하다.

이날 이예다씨와 아마미야 카린씨는 '알자! 비밀보호법'이라는 이벤트에 패널로 참석했다. 이 이벤트는 'U-20 데모 실행위원회'라는 단체의 주관 하에 열렸다. U-20 데모 실행위원회는 미성년자들로 구성된 단체로, 작년 12월 공포된 특정비밀 보호법에 반대하는 10대 청소년 단체다.

집단적 자위권과 맞물려서 특정비밀 보호법도 일본에서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가 비밀로 지정한 사항을 누설하면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이 법은 마치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연상케 한다. 일본 언론들은 이 법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내부고발을 어렵게 하여 통제국가로 가는 지름길을 열 것이라며 반대했다. 만약 집단적 자위권이 실시될 때, 이와 관련한 정보들이 국가 비밀로 지정되면 자위대는 기습적으로 무력행사에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 국회의 참의원 회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 필자와 이예다씨. 일본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수없이 벌어졌던 자리다.
▲ 당신의 지도자에게로 안내하시오! 일본 국회의 참의원 회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 필자와 이예다씨. 일본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수없이 벌어졌던 자리다.
ⓒ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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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 비밀보호법' 행사가 열리는 회의장은 제법 컸다.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비롯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아마미야 카린씨와 이예다씨는 비밀보호법과 관련해 국가의 정보통제에 대해 청중들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작년 말부터 연일 해외뉴스란에 오른 특정비밀 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자세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리였기에, 특정비밀 보호법에 대해 다함께 자유로이 논하고,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 한국의 현 상황,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나 예다씨 우리는 모두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국가가 안보를 핑계로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시범 케이스'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국가가 정보를 독점하고 강력한 처벌 권한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정보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국민들은 정확한 사실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이는 고스란히 권력자의 편에 서지 않는 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며 살아왔다. 그래서 비밀보호법 관련 이슈에 관해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나카타쵸"라고 하면 즉시 떠올리게 되는 건물. 일본 국회의사당에 쓰인 대리석의 일부는 당시 조선산 황용 대리석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도 별로 사랑받는 건물은 아닌거 같다.
▲ 참의원 회관 안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본관 일본에서 "나카타쵸"라고 하면 즉시 떠올리게 되는 건물. 일본 국회의사당에 쓰인 대리석의 일부는 당시 조선산 황용 대리석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도 별로 사랑받는 건물은 아닌거 같다.
ⓒ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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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전후 자유주의 체제에 익숙해서인지, 국가의 기밀지정이라는 것 자체를 굉장히 생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사실 일본은 이제까지 별도의 국가보안 관련 법안 없이도 잘 돌아갔다. 이예다씨는 무척 담담한 어조로 "한국에서는 비슷한 법으로 표현의 자유에 상당히 제약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안보를 이유로 특정한 사항에 대한 발언 자체가 금지되는 한국의 현실에 그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한정 주어진 자유 하에서 살아온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특히 놀라운 이야기였던것 같다.

이벤트가 끝난 뒤, 우리는 청소년 활동가들과 근처의 중국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뒤풀이를 했다. 일본의 청소년들은 이 젊은 망명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내보였다. 무엇보다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망명객이라는 점에 놀라워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예다씨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일본어는 언제 배우셨나요?"
"아, 어릴 때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여러가지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갔고, 특정비밀 보호법이 공포된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이 발동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징병제가 실시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개개인의 삶은 무엇을 잃게 될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동시에 오갔다. 국가는 달랐지만 개인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매한가지였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상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강하게 공감하는 듯했다. 20대 초반의 황금같은 시간을 군대에 매인 채로 보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놀라는 듯했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징병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일과시간 외에는 영외 외출이 가능하고 주말에는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병영생활을 생각한다(실제로 다른 나라의 경우 대체로 이러하다).

그러나 한국의 징병제가 사실상 인신구속의 상태로, 병사는 죄수와 같은 수준의 감시체계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군대에서는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느냐, 좋아하는 책을 볼 수 있는가, 인터넷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부분 "안 된다"라고 하는 내 대답에 모두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군대에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라디오의 소지도 안 되며, 병사들은 모든 서적을 검열받고서 부대 내로 반입할 수 있고, 휴대폰은 당연히 소지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외출이나 외박은 대부분 월 1회로 제한되며, 영내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일과시간이 끝나도 사실상 자유롭지 못하다 이야기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군대에서 휴대폰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왜죠?"
"군대는 보안이 생명이기 때문에, 군사보안을 통제할 목적이에요."
"그렇다면 군대 내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닐 수 없나요?"
"아뇨, 간부들, 그러니까 부사관 이상의 군인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군사 보안과 관계 없어요?"
"아뇨, 사실 병사들이야말로 군사보안과 상관 없죠. 원칙적으로 비밀 문서나 군사 보안은 간부들이 취급하죠. 일반 병사들은 그런 문건을 만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이해가 안 가요. (웃음) 그래서 제가 지금 한국의 징병제가 잘못 되었다고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중국에 2007년경 밴드 '명령 27호'로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다. 3개 도시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중국의 펑크 밴드들과 함께 공연했다. 당시 중국의 밴드들에게 한국의 병역제도를 이야기하면서 군대에 가면 밴드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자, "주말에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대답이 너무 자연스럽게 돌아왔었다. 그들도 한국군이 왜 이렇게 감옥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뒤풀이가 끝난 뒤, 우리는 아마미야 카린씨의 집에 모여 내일 있을 기자회견의 연설문과 자료들을 정리했다. 내일은 일본 외국인 특파원 협회(FCCJ)에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 외국인 특파원 협회는 수많은 명사들이 거쳐간 곳이었다. 우리는 보다 세밀하게 모두의 의견을 모아서 발표 사항을 정리하고 연설문을 다듬었다. 사실 나도 예다씨도 이러한 공식 석상에 나서본 적은 없었던지라, 스톱워치를 동원해서 발표시간에 정확히 맞추기 위한 연습도 병행했다. 연설문과 자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정문의 도리이. 일본의 심장부에, 그것도 일왕의 근거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법률상으로는 이곳은 정부와 상관 없는 사설 종교법인의 시설이다. 어디까지나 법률상으로는.
▲ 한밤중의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정문의 도리이. 일본의 심장부에, 그것도 일왕의 근거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법률상으로는 이곳은 정부와 상관 없는 사설 종교법인의 시설이다. 어디까지나 법률상으로는.
ⓒ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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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조금 걷기로 했다. 지하철로 가는 도중, 야스쿠니 신사가 눈에 띄었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는 거대한 도리이(鳥居)가 있었다. 전몰자와 전범자가 어지럽게 뒤섞인 상징적인 신사, 그 앞을 우리는 묵묵히 걸어갔다.

후에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필자가 느낀 감정은 군국주의의 망령이나 일제시대의 향수보다 더 복잡 미묘한 비판으로서의 대상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이야기는 후에 다른 칼럼으로 더 설명할 기회가 있을테니, 여기서는 더이상의 자세한 기술을 생략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차창 밖으로 도쿄 시내의 야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기자회견을 하게 되다니 상상도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그:#이예다, #병역거부, #아마미야 카린, #망명, #특정비밀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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