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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리 아파트, 학교, 과수원 근처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이 있다는 것을. 이 고약한 냄새는 금세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내 몸을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사전에 알려줬다면 이상한 낌새를 차렸을 때 가능한 조치라도 취했을 것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관리,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에 있는 '노루표 페인트' 공장에서 에폭시 도료탱크 냉각수 공급 장치 이상으로 물을 뿌리면서 수증기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이 공장 직원과 안양·광명 지역 주민들이 악취와 눈 따가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병원 진료를 받았다.

화학물질안전원 관계자는 "에폭시 도료가 유해물질은 아니지만 만일에 대비해 수증기의 정확한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틀이 지난 4일 오후까지도 악취가 남아 있어 주민들의 불안과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지역의 위험 물질 정보, 있는 그대로 알려져야 하는 이유
ⓒ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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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매년 공개하는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에 따르면, 노루표 페인트는 26개 화학물질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중 발암성 물질이 7개, 생식독성과 발달독성물질이 5개, 환경호르몬 4개, 사고대비물질 6개 등을 취급하고 있다.

특히, 이번 누출된 수증기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폭시 성분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에폭시의 주성분인 비스페놀 A(BPA)는 환경호르몬, 생식독성과 발달독성이 있는 물질로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거나 혼란시켜 뇌기능 저하, 생식기능 저하, 성장장애, 기형, 유방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미국 국립 독극물 연구소(NTP)에 따르면, 주로 플라스틱이나 에폭시 합성수지 원료로 쓰이는 BPA는 동물 실험결과 임신이나 수유기간 중 장시간 노출될 경우 생존율과 성장률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BPA는 주로 식료품이나 음료수를 용기에 밀봉하는 과정에서 섞여 들어가는 것으로, 국내에서도 BPA의 인체 위해성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아용 젖병 제조시 BPA의 사용을 금지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화학물질안전원은 성분분석이 시작도 되기 전에 "유해물질이 아니"라며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험성은 있는 그대로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예방과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루표페인트가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치료를 돕기 위해 운영한다는 신고센터가 위기모면형 대책이 아니길 바란다. 화학물질안전원 또한 분석결과를 하루라도 빨리 빠짐없이 공개해서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설사 이런 조치가 잘 되더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평상시 주민들에게 화학물질 정보가 알기 쉽고 보기 편하게 공개되고, 사고시 어떠한 매뉴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알권리법' 제정이 시급하다.

발암가능물질인데 현장 방치... 시민단체 역학조사 촉구

사고 열흘이 지난 시점인데도 아세트산비닐이 누출된 도랑 주변이 비닐로 덮여져 있다.
▲ 인천 서구 누출된 아세트산비닐 관리 실태 사고 열흘이 지난 시점인데도 아세트산비닐이 누출된 도랑 주변이 비닐로 덮여져 있다.
ⓒ 인천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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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알권리법' 제정이 왜 시급한 지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지난 8월 19일 인천서구 왕길동 소재 한일화학공사(주)에서 아세트산비닐이 누출되어 주민 10명이 병원진료를 받고 주변 하천 물고기 100여 마리와 가축 20여 마리가 폐사되고 농작물 1000여평이 고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세트산비닐은 필름, 접착제, 목공용 본드, 껌 등의 원료로 이용되는 물질로, 국제암연구소(IARC)는 발암가능물질(2B 군)로 분류하고 있다. 아세트산비닐은 흡입할 경우 눈, 피부, 호흡기에 자극을 일으키며, 심할 경우 구토나 현기증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사고대비물질이다.

지난 2012년 9월 대한민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구미불산 누출사고와 유사하다. 저장탱크에서 누출된 점, 소방서 등 관계기관의 대처미흡으로 누출 차단이 늦게 이루어진 점, 주민대피 등 후속조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점 등이 피해를 키웠다.

사고 당시 즉시 주민들에게 누출물질에 대한 정보제공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인천환경운동연합이 사고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현장에 가보니, 발암가능물질이 누출되었음에도 불구 비닐로 덮어놓은 게 다였다고).

지난 8월 31일자 경기신문에 따르면, '서구청 환경개선팀 관계자는 '피해 민원 관련해서는 한일화학공사로 연결하고 있으며, 이 업체 대해서는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면서 책임을 업체 측에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이에 이 지역 환경시민단체들은 '피해범위를 정밀진단하기 위한 민관합동조사단 구성과 위험물질 누출 후 주변 환경 및 지역민들의 인체 영향 등 정확한 역학조사를 촉구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연일 계속되는 화학사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사고예방을 위한 관리도 부실하다. 여전히 사고가 나면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보장된 지역별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화학물질 정보공개와 지역사회알권리법 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이유다.

ⓒ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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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위험지도 어플 제작 후원하기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사고예방의 선행과제는 국민에게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기 쉽게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우리 주변(어린이집, 학교 등) 유해화학물질 위험정보를 손쉽게 제공하기 위한 '우리동네 위험지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여 무료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 개발비와 화학물질 위험정보 청구소송비 마련을 위한 소셜펀치 후원함을 개설 모금운동을 진행한다. 소셜펀치로 후원하기. 기간은 10월 31일까지이며 제공되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스마트폰 어플로 제공되는 총 3268개 사업장 1만2700개 화학물질정보

●우리주변(학교, 어린이집 등)에 있는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업체명
●해당업체에서 배출하고 있는 화학물질 종류와 대기배출량
●위험정보(발암성, 생식독성, 변이원성, 발달독성, 환경호르몬, 잔류성/농축성, 사고대비물질)
●발암성 물질의 발생 가능한 암정보(골수종, 백혈병, 폐암, 간암, 신장암, 위암)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1차 제작보급 후 생활환경 속에 존재하는 유해화학물질 위험정보(학용품, 화장품, 방사능 등)로 업데이트 버전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1차 제작보급 후 생활환경 속에 존재하는 유해화학물질 위험정보(학용품, 화장품, 방사능 등)로 업데이트 버전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다. 이 글은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학물질 누출사고, #노루표페인트, #위험지도, #아세트산비닐, #정보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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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 기획국장으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이며 안전보건 팟캐스트 방송 '나는무방비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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