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8일 오전 10시 16분]

1980년대 '할리우드키드'들에게는, 마치 <친구>에서 조오련과 물개의 수영능력을 둘러싼 논쟁처럼, 풀리지 않는 영화적 난제가 있었다. '람보'(실베스터 스탤론)와 '코만도'(아놀드 슈왈제네거) 중에 누가 더 강할까? 1980년대 할리우드를 양분한 두 근육질 스타는 남성성에 대한 당대 청소년들의 표상을 압도적으로 지배했다.

그들은, 1970년대 이소룡의 쌍절곤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사춘기 소년을 바벨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대에 할리우드키드들의 마초적 열망은 실현이 될 수 없었다. 두 활극영웅을 동시에 섭외하기에 그들의 몸값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꿈은 30년이 지난 이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지나친 팬서비스

 <익스펜더블3>은 8월20일 개봉한다

<익스펜더블3>은 8월20일 개봉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실베스터 스탤론은 어느덧 중년이 된 자신의 팬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즉 그들의 몸값이 한 편 영화에 모일 수 있을 만큼 저렴해 졌을 때 오랫동안 기획해 왔던 팬서비스를 실행에 옮겼다. 2010년 개봉한 <익스펜더블>은 1980년대 할리우드 활극영화 팬들을 위한 '서비스 팩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 돌프 룬드그렌, 이연걸, 제이슨 스타뎀, 미키 루크, 브루스 윌리스 등 80, 90년대 할리우드를 지배한 활극영웅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영화팬들은 열광했다. 영화의 완성도는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잊혀진 영웅들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낸 것만으로도 <익스펜더블>의 상업적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스탤론의 의리의리한(?) 기획은 의외의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익스펜더블>의 성공으로 스탤론은 활극배우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익스펜더블2>에서 람보와 코만도가 만난다. 30여년의 긴 기다림에 비해 허탈할 정도로 감질 맛 나는 짧은 조우였지만, 마침내 1980년대 할리우드키드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하지만 람보와 코만도 중 누가 더 강한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평단과 관객의 악평은 한결 같았지만 <익스펜터블2>도 시리즈를 연장하기에 충분한 상업적 동력을 유지했다.

1,2편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익스펜더블3>에는 멜 깁슨(스톤뱅크스 역), 웨슬리 스나입스(닥터 데스 역), 해리슨 포드(맥스 드러머 역), 안토니오 반데라스(라파도 가르고 역) 등 총과 주먹으로 80, 90년대를 평정한 활극 영웅들이 대거 합류했다. 2편에서 팬들을 감질나게 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해 늙은 람보를 지원한다. 람보와 코만도가 공동작전을 벌이는 꿈의 전투는 1980년대 활극영화광들에게는 그 자체로 황홀한 경험이다.

 람보와 코만도가 공동작전을 벌이는 꿈의 전투는 1980년대 활극영화광들에게는 그 자체로 황홀한 경험이다.

람보와 코만도가 공동작전을 벌이는 꿈의 전투는 1980년대 활극영화광들에게는 그 자체로 황홀한 경험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에 이종격투기선수 론다 로우지(루나 역), 올해 <헤라클레스: 더 비긴스>로 데뷔한 켈란 루츠(존 스마일리 역) 등 차세대 활극영웅들도 합류했다. 단지 화려한 배역만으로도 <익스펜더블3>은 활극영화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도입부의 다소 맥 빠지는 전투장면 이후 <익스펜더블3>는 1시간이 넘는 상영시간동안 오직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지루하게 전진한다. 그것은 '지구방위대' 수준의 활극영웅들을 한 전장에 밀어 넣고 '85년식'(람보식)으로 원 없이 때려 부수는 것이다. 후반 30분의 80년대식 활극의 대향연은 구식영웅들의 숭배자, 80년대 활극영화의 광신도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컴퓨터그래픽이 창조하는 현란한 초현실적인 활극에 익숙해진 젊은 관객들에게는 소박한 85년식 활극은 노인들의 안쓰러운 몸부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차라리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자기파괴적인 개그가 훨씬 더 신선하다.

<익스펜더블>과 같은 '서비스팩 영화'는 1편만으로 충분했다. 2편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3편은 역시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미 4편을 기획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노욕이 지나치면 추억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

왜 근육질영웅이 80년대를 지배했을까?

모든 문화상품이 그렇지만 특히 압도적인 다수 대중의 소비를 목표로 하는 거대상업영화는 직접적으로 사회적 잠재의식을 반영한다. 예컨대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명량>의 폭발적인 흥행은, 대부분 평론가들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지도력 부재의 상황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군도>가 기대만큼의 흥행 성적을 올리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대중의 의식흐름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조윤(강동원)이 아니라 도치(하정우)가 <명량>의 이순신과 같은 민중의 지도자로 좀 더 부각되었다면 <군도>의 흥행 성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1980년대 실베스터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같은 근육질영웅들이 할리우드를 지배한 것은 당대 미국인들의 사회적 잠재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처음 등장한 람보는 애초 1970년대식 반영웅에 가까웠다.(1960년대까지 할리우드의 활극영화는 존 웨인과 같은 보수적인 구식영웅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이후 반전운동의 영향으로 1970년대에 '더티 해리'(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반영웅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람보가 '신보수주의의 아이콘'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2편부터 시리즈의 상업적 잠재력이 대폭발했다.(1편은 약 4천6백만 달러, 2편은 전 세계에서 약 1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쓸어 담았다) <람보2>가 개봉한 1985년, 냉전체제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미국 경제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로 급격히 하강하고 있었다.

 람보는 1980년대 신보주의의 아이콘이었다

람보는 1980년대 신보주의의 아이콘이었다 ⓒ 트라이스타


이러한 정치경제적 불안은 미국인들을 패권적 메시아주의로 이끌었다. '강한 미국', 즉 신보수주의를 상징하는 람보의 등장은 이러한 1980년대 미국인들의 사회적 잠재의식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개봉 당시 <람보2>는 한국에서도 서울 관객 55만 명(현재 전국 약 800만 명)의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는데 이는 군사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단지 '반공영화'라는 오해(?) 때문에 <람보2>를 단체 관람해야 했다)

하지만 냉전의 해체 이후 근육질영웅들은 급격히 퇴조했다. 소련 붕괴 이후 국제 질서가 복잡해지고 1990년대 말까지 미국 경제의 호황국면이 지속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이분법적 세계관의 단순무식한 근육질 영웅에 열광하지 않았다. 세기말 혼돈의 시대에 근육질영웅은 급격히 매력을 잃었다. 그리고 곧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했다.

냉전 해체 이후 대중들은 <다이하드>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 <리쎌 웨폰>시리즈의 멜 깁슨과 같은 자유주의적 영웅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근육질 영웅들은 자유주의적 영웅들에게 활극의 왕좌를 내줬다. 실베스터 스텔론에게는 긴 암흑기가 찾아왔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정치권으로 떠나버렸다. 그들의 빈자리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키아누 리브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같이 근육량은 다소 감소했지만 뇌세포량은 크게 증가한 지적인 스타들이 차지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의 영웅들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최근 할리우드는 '슈퍼 히어로'들의 세상이다. 특히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은 슈퍼히어로시대의 선두주자이다. 이들은 1980년대 근육질영웅과 1990년대 자유주의적 영웅의 이미지가 겹쳐진 '복합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웨인의 '슈트'는 1980년대의 근육질영웅을 연상시키고 냉소적이고 개인주의적 인물성격은 <다이하드>시리즈의 '존 맥클레인'과 같은 1990년대 자유주의적 영웅과 유사하다.('캡틴 아메리카'는 1편에서 근육질의 구식영웅에 가까웠지만 2편에서 복합적 영웅으로 변신하면서 흥행수익이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정통활극영웅들도 복합적으로 진화했다. 예컨대 <본>시리즈의 맷 데이먼, <007>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 <테이큰>시리즈의 리암 리슨은 1980년대 근육질 영웅과 1990년대 자유주의적 영웅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복합적 영웅들이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일단 관객의 미적 취향이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관객들일수록 복잡한 이야기와 인물에 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현재 미국 자본주의의 전면적 위기와도 관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영웅들을 모두 합친 슈퍼히어로가 아니고서는 총체적인 위기에 놓여있는 미국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슈퍼히어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익스펜더블3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왈제네거 맬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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