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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일요일 저녁, 친구들과 여의도에서 놀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은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 한강에서 놀다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버스는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저만치 앞에 정차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그날은 더웠다. 버스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차도로 내려왔다. 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버스를 향해 뛰었다. 인도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입에서 뭔가 뱉어내는 듯한 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발걸음을 멈추기에는 늦었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했다.

"이봐! 학생!"

나는 돌아볼 새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중간쯤 자리를 잡고 섰다.

3년 같은 30분... 다 아저씨 때문이다

버스는 흔들렸고, 나는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어두워지는 바깥 풍경을 봤다. 그때, 버스에 타기 전 나를 불렀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 아저씨는 날 왜 불렀을까.'

이어 그 아저씨의 입에서 뭔가 나오는 걸 본 것 같은 기억도 떠올랐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게 가고 싶을 때처럼 등줄기가 꼿꼿해졌다.

'확인하기에는 버스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아직 갈 길이 먼데…, 아무 일 없을 거야.'

나는 좁은 공간에서 천천히 내 몸을 살펴봤다. 블라우스 치마와 신발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다리를 살짝 뻗어봤다.

나는 '가래'가 싫다.
 나는 '가래'가 싫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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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하마터면 버스 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종아리 중간쯤 '노오란 가래'가 착 붙어 있는 것 아닌가. 속은 울렁거렸고 다리가 간지러워졌다. 병균 덩어리가 다리를 스멀스멀 파먹고 있는 것 같아 빨리 가래를 닦아내고 싶었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휴지나 손수건은 나오지 않았다. 옆 사람 바지에라도 슬쩍 문지르고 싶었지만 소심한 마음에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으으으…."

나는 3년 같은 30분은 보내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류장 표지판에 다리를 문지르며 진저리를 쳤다. 그날은 샤워 시간도 엄청 길었다.

"카악~"

누군가 가래를 뱉기 위해 저런 소리라도 내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노오란 가래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나는 가래가 싫다. 누군가 가래를 뱉는 걸 보거나, 길바닥에 묻은 가래를 보기라도 하면 불쾌하고 끈적한 기분에 평정심을 잃는다. '가래 투척'은 전철역 주변이 특히 심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전철을 타러 갈 때면 바닥을 보지 않고 시선을 멀리한 채 빠르게 걷곤 한다.


태그:#더러운이야기, #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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