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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커피이야기> 표지
 김성윤의 <커피이야기> 표지
ⓒ 살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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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책', 서슴없이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95쪽짜리 A6판형(105×148mm), 누가 봐도 작은 책이다. 그러나 이 작은 책속에 커피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알차다. 기자가 쓴 커피 이야기는 어떨까, 솔직히 그리 기대하지 않고 커피 책 섭렵의 일환으로 집어 들었는데 의외로 큰 소득을 주었다고 할까.

'커피는 이 시대의 성수'라고 찬양하며 글은 시작된다. 기호품을 넘어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17세기 기독교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과 맞설 때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카푸친 분파 수도사 마르코 다비아노는 열정적인 설교를 통하여 기독교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기여했는데, 이 카푸친 소속 수도사들이 즐기던 커피가 원두에 우유를 첨가한 카프치노란 것이다.

커피의 기원을 말하는 또 다른 전설들

저자는 커피의 식물학적 정의를 내리고 이어 원산지별 연구, 전파과정 등을 설명한다. 한국의 커피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가공법, 맛과 향을 구별하는 단어들, 사회정의의 입장에서 커피는 어떤 존재인지, 건강에 해롭다는 의견에 대한 반론 등으로 꼼꼼히 짚어준다.

커피나무는 꼭두서니과(rubiaceae)에 속하는 상록수다. 커피는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커피체리 안에 들어있는 씨앗이다. 커피원두는 수분, 회분, 지방, 섬유질, 당분, 타닌, 카페인 등의 성분으로 구성된다. 커피의 중요한 성분인 카페인은 아라비카 종이 1%, 로브스타 종이 2% 내외 함유하고 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 흔히 알려진 이야기는 염소지기(혹은 양치기) 칼디 이야기이다.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 소년 칼디가 염소(양)들이 먹고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먹었는데 기운이 넘쳐서 그 열매를 이웃의 수도사들에게 알려 음용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소위 에티오피아 버전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두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예맨 측 전설로 알리 밴 오마르 알 샤딜라라는 이슬람 사제가 1258년경 정적들의 모함으로 모카 항 인근 사막으로 쫓겨난 적이 있다. 굶주림에 생과 사를 넘나들 때 붉고 작은 열매를 따먹었는데 신기하게 피로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이 커피 열매를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달여 환자들에게 처방하여 병을 치료하기에 이른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모카의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예멘 버전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와 관련이 있다. 마호메트가 졸음을 이기려고 애쓰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는데, 이 음료가 바로 커피라는 것이다.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나 '알라의 선물', '신의 축복'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 노예, 이름만 바뀌었지 지금도 존재한다

에티오피아 기원의 커피는 예멘의 아덴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었다. 1997년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커피원두가 아랍에미리트에서 발견됨으로 커피가 도입된 시기를 12세기로 보고 있다. 무슬림들에 의해 음용되던 커피는 예멘의 모카 항구를 통해 급속도로 아라비아 전역과 유럽으로 확산된다.

페르시아에서는 15세기 중엽 사파비 왕조 때부터 커피를 음용하였고, 터키에서는 16세기 중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카페 카네라는 커피 하우스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커피 하인이 등장한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웬만큼 산다고 하는 가정에는 '카베기'라고 하는 커피 끓이는 일만을 전담하는 하인이 한 명씩은 있었다. 부유한 집에서는 '이초글란'이라고 해서 카베기가 끓인 커피를 손님에게 올리는 하인까지 따로 두기도 했다.(책 23~24쪽)

유럽에는 1600년경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커피가 처음 소개된다. 현재도 성업 중인 이탈리아의 그 유명한 '카페 플로리안'이 문을 연 때는 1720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1644년 항구도시 마르세유를 통해 처음으로 커피가 수입된다. 오스트리아는 1683년 오스만 대군이 빈을 포위했을 때 통역관이던 폴란드인 게오르그 프란츠 콜시츠키가 오스만군이 버리고 간 커피를 가공하면서 시작된다.

네덜란드는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1675년 의사 브란덴부르크에 의해 궁정에 커피가 소개된다. 영국에서는 1650년 옥스퍼드에 커피하우스가 등장한다. 1668년 북미대륙으로 건너가고, 테이크아웃 커피로 발전하며 커피는 세계화에 이른다.

중남미는 1720년경 가브리엘 드 클리외라는 해군장교에 의해 재배가 시작된다. 브라질은 팔레타에 의해 전파되었고, 파젠다라는 대형농장으로 발전하면서 커피 노예를 부리게 된다. 값싼 노동력으로 값비싼 커피를 생산하여 부를 누리는 파젠데이로스(농장주)가 등장한다.

농원을 개간하고 유지하는 일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노동력은 아프라카에서 들여 온 노예들로 충족되었다. 파젠데이로스는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채찍질은 예사였고, 손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기도 했다.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중략) 노예에서 농장인부로 명칭이 바뀌었을 뿐 생활수준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책 41쪽)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임오군란으로 서양의 외교사절들이 들어오면서 유입된 것으로 본다. <서유견문>에서 유길준은 커피와 홍차가 1890년경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쓰고 있다. 고종이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고 보는데, 위베르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손탁이 손탁 호텔에서 커피를 판 것이 우리나라 커피 하우스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책은 커피를 향과 맛, 느낌에 따라 표현하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표를 참조하라)

향을 중심으로 하는 감별법
과일 향(감귤 향)/ 견과류 냄새/ 고무 냄새/ 곡물 냄새(맥아냄새, 구운 빵 냄새)/ 꽃향기/ 나무 냄새/ 동물 냄새/ 썩은 냄새/ 와인 향/ 재 냄새/ 초콜릿 향/ 캐러멜 향/ 탄내(스모키)/ 화학물질 냄새(약 냄새)/ 향신료/ 흙내

맛을 중심으로 하는 감별법


단맛/ 산미/ 신맛/ 쓴맛/ 짠맛

혀의 느낌에 따른 감별법
밀도(바디)- 입을 꽉 채우는 듯한 맛과 향일 때 바디감이 좋다고 한다.
수렴성- 입이 마르는 정도, 수렴성이 높으면 맛이 없는 것이다.


커피, 인권을 생각할 때다

지금도 멕시코의 커피 재배농민들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고 국경을 넘고 있다. 2001년 애리조나 사막의 따가운 뙤약볕 아래서 6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2000년에는 14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7명이 커피 농장의 종사자들이다.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이민하려고 국경을 넘다 죽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커피 가격의 폭락으로 인하여 재배 농민들은 열악해 가지만 커피 상인들은 여전히 부를 축적하고 있다. 커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제3세계 커피 재배농민들은 절박하지만, 다른 작물로의 전환이라든지, 커피 쿼터제 등은 그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커피를 가공 판매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 이른 바 로스터들의 수익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세계 3대 로스터는 미국의 크래프트, 유럽의 네슬레, 미국의 프록터&갬블이다.(중략) 네슬레는 인스턴트커피 부문에서 26%의 수익이 늘었다. 이는 맥주업체 하이네켄이 17%, 프랑스 다농의 유제품 부문 수익이 11%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로스터들의 수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책 81쪽)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과정 중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이제 공정무역이나 유기농, 그늘재배, 생계유지커피, 인증커피 등으로 재배농민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우리는 그 생산자들의 아픔을 헤아려야만 한다. 그런데 생산자만 그런 게 아니다. 커피 체인점 종사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커피 하우스들이 체인화 하면서 늘어나고 다국적 기업들이 밀려들어 왔다.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커피 종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 종사자들 중 몇 명이나 정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을까? 스타벅스, 카페베네, 엔젤리너스 등 커피전문점들이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주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인 시급 5210원 언저리에서 넘나든다. 이들은 현대판 커피 노예는 아닐까? 한 잔의 커피를 즐기기에 앞서 이들을 배려해야 할 때다.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하며 담석, 통풍, 천연두, 홍역, 감기 등에 처방되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짧은 시간에 커피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김성윤은 누구인가?
현 조선일보 편집국 산업부 기자. <조선일보> <주간조선> <카사 비스트로> <트래블+레저> <쿠켄> 등 다양한 매체에 음식 및 음식점 관련 기사를 쓰고 있음. 인터넷 조선일보 '기자클럽'(www.club.chosun.com/reporter)에서 음식관련 웹사이트 '구름에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커피이야기>/ 저자 김성윤/ 살림출판사 2004년 초판1쇄/ 95쪽/ 값 4800원



커피 이야기

김성윤 지음, 살림(2004)


태그:#커피이야기, #김성윤,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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