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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에 이어 최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4월 18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이민영 조합원의 하루 노동을 동행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시간까지 10시간 동안 서울 마천동과 천호동 일대 가정을 방문해 고객을 응대하고, 전봇대에 올라 인터넷 선을 잇고, 지붕과 옥상을 넘나들고,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나라 재계 3위 그룹인 SK.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는 2013년 2조 539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732억원, 순이익 123억원. 이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고발한다.... 기자 주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이민영 조합원(송파센터)을 <노동과세계>가 만나 하루 일정을 동행했다. 빌라 사이 담벼락에 올라 인터넷 선을 잇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이민영 조합원(송파센터)을 <노동과세계>가 만나 하루 일정을 동행했다. 빌라 사이 담벼락에 올라 인터넷 선을 잇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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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전 8시 16분 서울 송파구 개롱역 1번 출구에서 이민영(39) 조합원을 만났다. 4월 중순이지만 아침 날씨는 아직 쌀쌀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도 반가워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센터로 향한다. 이민영 조합원은 중학생 조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길이다.

"조카 등교시켜주고 오시는 길이세요?"
"네."

"그럼 이민영 조합원께선 미혼이신가요?"
"아유~ 제 나이가 얼만데요. 저도 결혼했어요. 아이도 둘 있구요."

그는 8살 아들과 6살 딸을 둔 아빠다. 개롱역에서 약 5분 거리 대로변에서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SK브로드밴드 송파행복센터가 있다. 주소지는 송파구 오금동. 8시 20분경 이민영 조합원이 센터로 들어간 후 '행복기사'라고 적힌 패찰을 어깨에 붙인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속 출근길을 서둔다.

센터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조회에 참석해 각각 그날 할 일을 배정 받는다. 9시가 조금 넘자 유니폼을 입은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이 센터를 나섰다. 센터와 근처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물거나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담소를 나눈다. 두어 명의 노동자가 <노동과세계> 앞으로 다가온다.

"어디서 오셨어요?"
"네, 이민영 조직부장님 오늘 하루 일정을 취재하려고 왔습니다."
"네, 오셨다고 들었어요. 저희 다 조합원이에요."
"네, 노조를 만드셨으니 이제 점차 나아질 겁니다."

"10여 년간 저희가 엄청 고생했어요. 그러면서도 내 권리를 찾으려는 생각을 못했어요. 나는 약자고, 위는 강자니까 그냥 당연히 그런 줄 알았죠. 사회적 추세가 씨엔엠도 노조를 만들어 권리를 찾고 그랬잖아요. 동종업계이고 거기 아는 사람도 있거든요. 젊은 시절을 여기서 보냈고 갈 데도 없으니 여기서 살아야 돼요."

인터넷 선을 설치하기 위해 전봇대 위에서 작업 중인 이민영 조합원.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 주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쉬고 싶다"며 지난 3월 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인터넷 선을 설치하기 위해 전봇대 위에서 작업 중인 이민영 조합원.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 주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쉬고 싶다"며 지난 3월 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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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 경쟁이 치열해요. 현장에서 기사들 일은 많고 회사가 우리한테 해주는 임금 등 처우가 갈수록 나빠져요. 우리는 그래도 센터 소속인데 센터가 또 하청을 주는 재하청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어요. 실적이 적어 회사가 만든 지표를 못 맞추면 등급이 깎이고 그만큼 대가도 줄어요."

"설치가 안 되는 곳도 있어요. 망이 안 깔려서요. 상담원이 고객을 이해 시켜야 하는데 고객이 자꾸 불만을 제기하면 현장기사한테 출동 명령을 내려요. 망도 없고 설치가 안되는 곳에요. 그럼 우리가 가서 상담업무를 대신해야 돼요. 돈도 안 나오는데."

"점심시간이 없어요. 저는 한 달에 2~3번 정도 점심을 찾아먹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따로 없기도 하고, 고객들이 커피며 음료수를 자꾸 주니까 그걸 먹다 보면 입맛도 없어요. 주는 걸 안 먹으면 친절을 거부했다고 기분 나빠하면서 해피콜을 안 좋게 주기도 해요. 우린 해피콜을 잘 받아야 되는데..."

마치 봇물이 터진 것 같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그동안 맺힌 울분이 쏟아져 나온다. 이민영 조합원은 자꾸 출발하자고 하는데 동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참 서서 들었다. 이곳 송파행복센터에서 일하는 기사 50여 명 중 4명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센터장을 제외하고는 노조를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민영 조합원이 물건이 든 커다란 쇼핑백을 차에 싣는다.

"이게 뭡니까?"
"셋탑이랑 공유기, 모뎀... 그런 거죠. 인터넷선하고요. 오늘 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이에요."

차에 올라 이민영 조합원과 함께 오늘 첫 고객을 찾아간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이 일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17년이요. SK브로드밴드는 5년이 됐고, 그 전에는 파워콤(현 LG유플러스)에 있었고, 케이블TV, 망 공사하는 일을 했어요. 다 비슷한 일들이에요. 이 일이 이직률이 높은데 우리는 메뚜기라고 해요. 메뚜기 뛰듯 한다고 해서요."

"오늘은 몇 곳을 가세요?"
"7곳인데요. 시간이 남으면 일이 밀린 다른 동료를 지원하러 갈 계획이에요. 방이동으로요."
"보통 하루에 평균 몇 곳을 가세요?"
"전에는 1시간 단위로 갔어요. 하루에 10곳 정도죠. 요즘에는 1시간30분 단위로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요. 아직도 다른 센터들은 1시간 단위로 가는 데가 많아요. 오늘 같이 다녀보면 아시겠지만 현장에서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도 힘들어요."

SK브로드밴드 송파센터 이민영 조합원이 아침조회에서 하루 일을 배정 받은 후 인터넷 설치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에 싣고 있다.
 SK브로드밴드 송파센터 이민영 조합원이 아침조회에서 하루 일을 배정 받은 후 인터넷 설치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에 싣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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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조합원이 마천동 주택 번지수가 빽빽하게 적힌 지번도를 보며 하루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민영 조합원이 마천동 주택 번지수가 빽빽하게 적힌 지번도를 보며 하루 첫 일정을 시작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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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조합원은 개통기사다. 선을 연결해서 인터넷이나 TV 등을 개통해 고객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일하시는 거에 따라서 건당으로 수수료를 받으시는 거죠?"
"그래요. 인터넷 1개 개통할 때도 있고, 인터넷·TV·집전화 등을 패키지로 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경우예요. 전화 하나만 개통할 경우에는 수수료가 650원이죠. 1000원도 안 되는 거예요. 본사에서 내려주는 수수료의 65%를 줘요."

SK브로드밴드에는 개통기사, AS(장애)기사, 해지기사, 그리고 모텔이나 빌딩 같은 건물만 설치하는 기사 등이 있다. 건물설치기사의 경우 사업자 등록을 해서 회사와 도급계약을 맺어야 일을 할 수 있다.

"같은 개통기사라도 저처럼 주택을 담당하는 사람은 전주를 타고, 아파트에 가는 사람은 전주를 안 타요. 조금 있다가 전주 타는 걸 보실 거예요. 여름에는 밤 11시 넘어서까지 일하기도 해요. 벌어야 되니까요."

오전 9시45분 첫 번째 현장에 도착했다. 송파구 마천동 한 주택에 인터넷을 연결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연립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주택가 한쪽에 차를 세워놓고 일할 준비를 한다. 인터넷 선 더미를 어깨에 메고 나선 이민영 조합원. 그런데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동네가 번지수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엉뚱한 번지수가 나오고 그래서 찾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몇 분 가량 이리저리 번지수를 찾다가 드디어 찾아냈다. 먼저 집을 찾아들어가 고객에게 인사하고 인터넷을 설치할 공간을 확인한 후 옥상에 올라가 옆집 지붕으로 건너뛴다.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밖으로 나와 공구가 든 주머니 일명 '사쿠'를 허리에 두르고, 안전끈을 어깨에 메고 안전모에 안전화를 착용했다.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다가 묻는다.

"이게 무슨 선이에요?"
"네. 인터넷 선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높은 데다 걸쳐서 하세요. 밑에 내려오게 하지 말구."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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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전봇대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 그 다음에는 전봇대 중간중간 박힌 '아시바'를 밟고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지상에서 5~6m 높이. 바라보기만 해도 아득하고 아슬아슬하다. 이민영 조합원은 긴 밧줄로 몸과 전봇대를 감은 채 뒤로 버틴 채 아시바를 밟고 서 있다.

"무섭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기사들이 이렇게 앞으로 웅크리고 일을 해요. 그러고 있으면 불편하고 일하기도 힘들어요. 이렇게 다리를 펴고 뒤로 버티는 게 편합니다. 처음에는 다리가 저절로 구부려지고 덜덜 떨리죠."

"감전이나 추락이나 그런 사고가 많겠어요."
"모 센터에서 기사가 감전으로 추락을 했는데 전치 8주가 나왔어요. 팔과 다리, 갈비뼈가 골절됐는데 자비로 치료를 받고 다시 나가서 일한다고 하더라구요."

"전선 뭉치하고 이게 가로등 안전기인데요, 이 두 가지 때문에 감전사고가 많이 나요. 아시바가 부러지기도 하구요. 전주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합니다. 더 위험한 게 담벼락 타는 거예요. 전주는 감전될까봐 긴장도 하는데 담벼락은 워낙 바쁘고 그럴 때 타는 거니까 자칫 떨어지기도 하죠. 작년에 저도 담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쳤어요."

일하는 도중에 동료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전주에 선을 연결한 후 '인식표'를 달아 어느 집에 선이 들어갔는지 표시를 해야 하는데 이민영 조합원이 가져오지 않아 도움을 요청한 것. 안홍식 조합원도 지부 조직차장을 맡아 노동조합 초기 활동을 시작했다.

"전주를 탈 때 안전화, 안전모, 그리고 이 '사쿠'라는 게 필요해요. 그런데 이 사다리를 비롯해서 연장이랑 장비도 모두 자비로 사야 돼요. 처음에 이걸 마련하려면 30만~40만 원 정도 들어요. 잃어버리거나 고장 나면 또 사야 되구요. 자기 차가 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신입직원이 잘 안 들어오는 게 전주를 타야 되니까 위험하기도 하고, 자기 차가 있어야 되는 그런 조건 때문이에요. 차도 전액 자기부담이고요. 차를 유지하려면 80만~100만 원은 빠져요. 회사가 우리한테 지원을 좀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안홍식 조합원은 가고, 이민영 조합원이 집에서 인터넷 연결을 끝내고 나왔다. 음료수를 갖고 와서 우리를 준다.

"고객님이 자기도 민주노총 사업장이라고 하시네요. 기자님들 수고하신다고 드리래요."

이민영 조합원이 인터넷 선을 설치하기 위해 6번째 전봇대를 올랐다. 그 중 아시바가 없는 전봇대도 있었는데 땅에 내려오는 순간까지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이민영 조합원이 인터넷 선을 설치하기 위해 6번째 전봇대를 올랐다. 그 중 아시바가 없는 전봇대도 있었는데 땅에 내려오는 순간까지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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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40분경 오늘 첫 번째 현장 일이 마무리됐다. 이어 두 번째 집으로 향하기 전에 이민영 조합원이 전화를 건다. 다음 약속이 1시여서 중간에 시간이 남는데 세 번째 가려던 집이 이사를 다 했으니 오라고 했다.

차를 타고 송파구 일대 지번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한다. 내비게이션은 그 주변에만 가는데 차에서 내려 한참을 찾아야 한다. 집들이 작은 골목 사이에 빽빽이 위치해서 번지수가 명확히 적혀 있지 않으면 한참을 헤맬 때도 있다.

두 번째 집은 이사 후 인터넷을 연결해 달라는 신청이 들어온 곳이다. 이민영 조합원이 이리저리 찾더니 갑자기 담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담장을 기다시피 가까스로 넘고 내려가 보니 조합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한참을 기다리니 한 집에서 이민영 조합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다시 전봇대에 오른다.

"저건 KT 전주구요, 저건 한전 전주예요. 우리는 한전 전주를 빌려 쓰니까 저런 전주를 찾아야 돼요. 저 위에 초록색 기계가 템이라고 해서 분배기인데 저기에 인터넷 선을 연결해요. 씨엔엠은 분배기를 낮춰서 전주를 안 타죠."

"왜 힘들게 주택을 하셨어요? 아파트를 안 하시고. 전주 타시는 게 너무 위험해 보여요."
"옛날엔 주택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전 주택이 좋아요. 안은 답답하고 밖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아파트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오래된 아파트들은 지하에 시설이 있는데 안 좋은 데도 많아요. 에프킬라를 들고 다녀야 할 만큼 모기도 많아요, 쥐, 벌레, 고양이 사체... 별게 다 있어요."

이민영 조합원이 인터넷 선을 연결하면서 2m 가까운 담장에서 뛰어내린다.

"이러고 다니니까 무릎이랑 허리가 안 좋아요. 인터넷을 연결해 달라고 해서 왔는데 TV도 해달라고 하시네요. 이게 현장영업인데요 지금은 덜하지만 전에는 현장영업 개수를 못 맞추면 그걸 갖고도 차감을 했어요."

이민영 조합원이 각종 공구들이 담긴 허리끈과 밧줄에 의존한 채 약 6~7m 높이 전봇대에 올라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다.
 이민영 조합원이 각종 공구들이 담긴 허리끈과 밧줄에 의존한 채 약 6~7m 높이 전봇대에 올라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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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공구와 사다리를 들고 전봇대와 담벼락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인터넷 선을 설치한 이민영 조합원.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다. 가정집에 들어와 모뎀을 설치하고 인터넷 설치를 마무리하고 있다.
 무거운 공구와 사다리를 들고 전봇대와 담벼락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인터넷 선을 설치한 이민영 조합원.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다. 가정집에 들어와 모뎀을 설치하고 인터넷 설치를 마무리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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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마치고 차로 이동. 시계가 12시 30분을 가리킨다.

"점심을 거의 못 드신다구요? 아침은 드셨어요?"
"아내가 주면 먹고요... 조카 때문에 어머니한테 가니까 어머니가 늘 주시죠.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침점심 다 굶고 저녁 한 끼 먹어요."

"토요일도 정상근무를 하고 일요일도 당직을 하신다구요?"
"토요일이 가장 바빠요. 월말이 되면 또 바쁘니까 센터장들은 나와주길 바라죠. 일요일도 일할 때가 많아서 한 달에 1~2번 쉬어요. 공휴일, 노동절, 명절 그런거 생각 못하고 살았어요."

"노조를 만들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으실 텐데요."
"제가 17년 일했는데 17년 일하나 1년 일하나 대우가 똑같아요. 또 기사를 함부로 대해요. 지난해 12월에 제가 해피콜을 3회 받았는데 결과가 다 안 좋았어요. 그러면 센터 지표가 깨지죠. 제가 마천동 일대에서 일을 했는데 '리베로'라고 해서 송파구 전체로 영역을 넓히더라구요. 그러면 이동시간은 굉장히 길어지고 일은 줄어요. 벌이가 절반으로 줄더라구요. 지난 2월에는 160만 원을 벌었는데 가불한 것까지 있어서 집에 50만 원 갖다줬어요."

"12월에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어요. 노조를 결성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불을 붙인 거죠. 월급이 적은데다 너무 들쭉날쭉해요, 기본급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기사들을 너무 함부로 대해요, 부속품 갈아 끼우듯 사람을 대하니까요."

이민영 조합원이 해피콜 전화통화 녹음된 걸 들려준다. 상담 여성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목소리로 10여 가지를 고객에게 묻는다. 기사의 복장과 용모가 단정했는지, 업무처리는 잘 했는지, 작업한 결과에 만족하는지, 주변정리와 마무리를 잘 했는지, 현재 작동이 잘 되는지, 그날 방문에 대해 만족하는지, 전체 만족도는 어떤지, 심지어 기사가 점수를 높게 주라고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시시콜콜 점수를 요구한다. 자칫 별 생각 없이 낮은 점수를 이야기했다가는 그 기사는 큰일이 나는 것이다.

"제가 지난해 12월 해피콜 3회 나쁘게 나와서 36만 원이 차감됐어요. 장비를 분실해도 차감하는데 헌 장비를 분실해도 새 장비 값을 차감해요. 장비를 찾아도 돈을 돌려주지 않아요. VOC로만 46만 원을 차감당한 기사도 있어요. 강동센터에서는 몇 년 전에 150만 원이 까였다는 기사도 있대요."

이민영 조합원은 선을 연결해서 인터넷이나 TV 등을 개통해 고객이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개통기사다. 하루종일 인터넷 선을 연결하기 위해 전봇대에 오르거나 담벼락, 가스관 등을 탄다.
 이민영 조합원은 선을 연결해서 인터넷이나 TV 등을 개통해 고객이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개통기사다. 하루종일 인터넷 선을 연결하기 위해 전봇대에 오르거나 담벼락, 가스관 등을 탄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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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세 번째 현장 천호동 한 주택. 인터넷 선을 연결하던 그가 상황이 좀 어려운 모양이다.

"오늘 기자님들이 오셔서 그런가... 어려운 코스가 많네요. 이렇게 선을 길게 하는 것을 '장타'라고 해요."

장타의 경우 선이 가는 길의 길이가 길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중간에 전봇대를 또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집 인터넷 선을 연결하기 위해 중간쯤 위치한 전주를 또 타는데 세상에... 여긴 아시바가 없다.

"이런 걸 '빽주'라고 해요."

딛고 설만한 것조차 없는 전주를 그가 올라간다. 아슬아슬해서 차마 쳐다보기도 힘겨울 정도다. 오후 2시 40분 경 작업을 마친 이민영 조합원이 밖으로 나왔다.

"예전에 설치해 드린 고객 분이라 절 기억하시네요."

그가 웃음을 머금었다. 고객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도 이 노동자들에게는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다시 차를 탔다. 이번에는 집을 쉽게 찾았는데 고객이 집에 없다.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집이 비어있어 기다리는 경우도 많으시겠어요."
"그럼요. 8시 28분에 갔는데 '8시 반에 오라는데 그걸 못맞추냐, 8시 반에 오라'고 타박을 해서 2분 기다렸다가 들어갈 때도 있어요. 씨엔엠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빠져서 골룸처럼 된 분도 있어요. 좋으신 분들도 많은데 진상 고객을 만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어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감정노동도 극심하다. 별의별 고객들이 다 있는데다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한다. 젊은층일수록 더하다니 걱정도 된다.

"저 때문에 점심 못드셔서 어떡해요?"
"아니, 지금 저희 걱정 하실 때인가요? 저희는 하루지만 매일 못 드시는 거잖아요."
"제가 웨딩 사진 찍을 때 빼고 이렇게 사진 많이 찍는거 처음이에요. 하하하!"

그런데 집 바깥으로 빼서 전주에 연결하는데 선이 짧다!

"선 재단을 잘못했어요. 당겨 봐야죠. 시공법상 선을 이을 수는 없어요. 안 되면 다시 깔아야 돼요."

이민영 조합원 얼굴에 땀이 범벅이다.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이 정도는 많이 흘리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 힘들죠. 덥고 땀을 흘리니까 입맛은 없고 물만 들이키는데 그렇게 물을 마셔도 화장실을 안 가요. 땀을 워낙 흘려대니까요. 비가 와도 그렇지만 땀 때문에도 감전사고가 많이 나요. 긁혀서 다치기도 하구요."

"이건 참 바람직한 전주예요. 아시바가 이렇게 다 잘 있잖아요. 아까 것 같은 건 아시바가 없으니... 저 집 바로 앞에 있는 건 KT 전주예요. 거긴 망이 없으니 여기로 이어야 돼요."

그가 또다시 전주를 탄다.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전봇대다. 밑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희미하게 '임을 위한 행진곡' 가락이 들려온다. 알고 보니 이민영 조합원의 휴대폰 벨소리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 민주노총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민주노총가를 부르고 있다.

연립주택이 빽빽히 모여있는 주택 옥상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지붕과 지붕을 옮겨다니며 인터넷 선을 설치했다.
 연립주택이 빽빽히 모여있는 주택 옥상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지붕과 지붕을 옮겨다니며 인터넷 선을 설치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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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가 들어가 이민영 조합원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에 어르신이 동의해 주셨다. 밖에서부터 팽팽히 당겨진 인터넷 선을 창문 틈에 구멍을 내서 들여오고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 연결해 인터넷이 잘 되는지 점검한다. 집에서 나와 출발 전에 이민영 조합원이 작업할 때 허리에 매는 허리띠를 들어봤다.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이 허리띠를 멍에라고 해요. 이 인터넷 선이 8kg니까 이건 6kg쯤 되겠네요."

더 될 것 같다.

"여보세요? OOO님 맞으세요? SK브로드밴드에서 전화 설치해 드리려고요. 전화 설치 신청하셨죠? 이사는 다 하셨어요? 지금 방문 드리겠습니다. 한 15분쯤 걸릴 겁니다."

이 현장은 전화만 연결하기 때문에 전주는 타지 않는다. 집에 들어갔던 이민영 조합원이 돌아왔다.

"이게 650원짜리 일이에요. 전화만 연결하는 거요. 이런 일이 많은 날은 공치는 거죠. 이건 그날그날 어떻게 일했는지 확인하려고 쓰는 건데요, 다음날 아침에 파쇄해요, 고객 개인정보 때문예요."

"이 일을 하면서 좋은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재래시장이나 그런 복잡한 곳에 차를 세워놔도 인터넷 선 설치하러 왔나 보다 해서 전화가 많이 안 와요. 좋은 것도 있어야죠."

4시쯤 도착한 마천동 여섯 번째 현장. 이 집은 새로 이사를 와서 인터넷과 TV를 설치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면서 이민영 조합원은 간부들과 통화하며 오늘 저녁에 있을 노동조합 회의 일정을 의논한다. 이민영 조합원이 사다리를 대문 안쪽으로 들여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간혹 사다리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위에서 일을 하니까 못 보고 아무도 없나 해서 가져가는 거죠."

집 주인이 나와서 선을 가스배관에 묶지 말라는 둥 잔소리를 한다. 개통기사들은 현장에서 온갖 가지각색 모양의 집을 찾아다니며 인터넷 선을 설치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강도는 굉장히 세고, 감정노동도 극심하다. 집 주변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 선을 설치하려면 요령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고객이 나와 지켜보며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올라간 여섯 번째 전봇대. 이민영 조합원의 등 뒤로 지는 해가 눈부시다. 대부분의 경우 가정집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전봇대에 선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에 연결돼 있는 선을 기준으로 때로는 위로 때로는 아래로 던져 엉키지 않게 하는 일 또한 힘들다.

점심시간도 없이 저녁이 가까워지도록 쉬지도 못하며 일을 한다. 잠깐 쉬는 시간에 슈퍼 앞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점심시간도 없이 저녁이 가까워지도록 쉬지도 못하며 일을 한다. 잠깐 쉬는 시간에 슈퍼 앞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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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집을 방문하기 전에 조금 쉬기로 했다. 동네 가게 앞에서 이민영 조합원과 음료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노동조합을 만드신지 불과 20일도 안되긴 했지만, 뭐 달라진 게 있습니까?"
"각 센터마다 개통기사하고 AS기사하고 상극이에요. 사무실에서 내근하는 여직원들하고 기사들 사이도 마찬가지구요.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개통기사 잘못이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등진 곳이 많아요."

"노조를 만들고 나서 모두 한 가지를 생각하니까 사이가 많이 좋아졌고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려고 해요.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이고, 다 똑같은데 서로 마음에 안 들어서 응어리가 졌던 거죠. 이제는 서로 뜻을 맞춰 가려고 해요."

"팀장들이 우리를 옥죄던 것도 많이 줄었어요. 팀장들도 노조에 가입하려고 하면 받아줄 겁니다. 우리 적은 센터장이나 팀장이 아니고 원청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싶어 그런게 아니고 원청이 시키니까 할 수 없이 그런 거에요. 노조를 만들면서 그런 것도 이해하게 됐어요."

"송파센터는 덜하지만 탄압이 심한 센터도 있지요?"
"우리 부지부장이 있는 어느 센터의 센터장은 쌍욕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녹음된 걸 저도 들었는데 참 기가 막혀요. LG유플러스 어느 센터에서는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20명을 잘랐는데 상급단체 간부가 가서 담판을 짓고 다시 복직해서 일한다고 해요."

"과거에는 비관적이고 노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설명회를 듣고 나면 노동조합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니까 대부분이 가입을 해요. 더 열성적인 사람들도 있구요. 지방은 서울 수도권보다 더 어려워요. 이동거리는 길고 가입자 수가 적으니까 기사도 적은데 일은 많죠. 충주에 가보니까 기사가 개통·AS·해지를 다하더라구요."

"작년 7월부터 노조를 준비했는데 제가 12월에 해피콜 나쁘게 받고 나서 지역을 바꿔 불이익을 줬을 때 노조가 아니었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예요. 노조를 결성해야 했기 때문에 참은 거죠. 우리가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워서 후배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고 처우를 잘 받으면 좋겠어요. 저는 조직이니까 발로 뛰어야죠."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있는 이민영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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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 바라시는 게 있다면요?"
"저 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야 돼요. 노조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이 우리나라에 많은데 그들이 노동기본권이 뭔지 알게 만들고 노조를 결성해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저는 이경재 지부장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 경비 노동자들이 노조가 없으면 우리가 만들자구요."

오후 5시30분경 오늘의 마지막 현장을 찾아갔다. 어제 인터넷과 TV를 신청한 집인데 조건 때문에 인터넷만 설치했기 때문에 오늘 찾아가서 TV를 개통해야 한다. 오후 6시 10분경 이민영 조합원이 작업을 마쳤다.

"오늘 일은 이걸로 마무리합니다. 굉장히 일찍 끝났어요. 사실 일이 있으면 더 하죠. 7시 타임을 하면 8시 30분까지도 하는 거죠. 오늘은 노조 회의도 있고 해서 여기까지 할게요."

기자를 다시 개롱역까지 데려다주면서 이민영 조합원이 한 마디를 보탠다.

"우리 조합원 중에는 파업 첫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터지기 직전에 지금까지 느낀 분노와 울분을 모아 노조를 만들었으니까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고객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이런 현실을 참고 인내하지 말자고 결단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부수고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면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이민영 조합원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공구와 사다리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노조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노동기본권이 뭔지 알게 만들고 노조를 결성해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민영 조합원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공구와 사다리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노조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노동기본권이 뭔지 알게 만들고 노조를 결성해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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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SK,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간접고용,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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