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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 일을 하고 있다. 한옥 목수일을 2년 넘게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직종을 비교하면서 목수의 노동 일기를 기록해보았다. - 기자말

처음 작성한 근로계약서. 이빠진 내용에 동의부터 해야되지만, 그나마도 지켜지지 않는 내용 뿐이다.
 처음 작성한 근로계약서. 이빠진 내용에 동의부터 해야되지만, 그나마도 지켜지지 않는 내용 뿐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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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1년 6월, 한옥학교 6개월의 과정을 수료하고 학교 소개로 알게된 도편수를 구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손에는 작업복과 객지 생활에 대비한 물품이 가득한 가방, 다른손에는 10kg 넘는 공구가방을 든 채였다. 이 분야에 처음 뛰어든 초심자의 두근거림에 가방의 무게까지 더해져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 당시만 해도 한옥 목수의 외모는 뭔가 '전통적'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옥 목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는 것이 처음 만난 도편수의 인상이었다.

겨울에는 일이 귀하지만, 여름에는 사람이 귀한 직업이다. 때는 6월, 소개가 되었을 때 이미 '입사'가 정해진 것이었다.

경북 구미시 외곽의 한 여관에서 캔맥주에 마른 안주로 '입사 기념 회식'이 진행됐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아침 7시부터 바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옥학교 6개월 과정 후 입사

당시에 한옥학교에서의 수업은 인근의 신축 한옥을 나무를 깎는 것부터 조립까지 실습을 하는 것이었다. 인원이 많고 교육을 위한 것이니 만큼 효율성을 따지는 작업은 아니었다. 서까래 깎는 것은 치목 과정에서 가장 먼저하고 가장 고된 작업 중의 하나이다. 학교에서는 서까래를 하루에 두세 개 깎으면 족했다. 그런데 현장에 나가면 열 개가 넘게 깎아야 된다고 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었지만, 현장에 와서 해보니 그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일을 분업화하고, 노동 강도와 시간을 늘리면 된다.'

보통 서까래 깎기는 엔진톱, 홈대패, 기계대패, 손대패의 과정을 거친다. 한옥학교에서는 무급이긴 했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대로 하루 여덟 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면서 한 사람이 엔진톱부터 손대패까지 직접했다.

현장에서는 하루 열 시간 동안 하나의 공구만 잡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오전, 오후 참 시간 외에는 쉬지 않았고, 흡연자의 경우 담배를 피면서 일했다. 고된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과정이 장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딱하게도, 근로 조건은커녕 일당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확인하지 않고 시작했다. 첫 일당은 '노동일기 ①'에 나온 것처럼 7만 원. 소개한 한옥학교는 8만 원 정도 줄 것이다라고 했는데, 먼저 일하기 시작한 목수가 7만 원을 받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내 일당도 정해졌다.

이후에 몇 차례 현장을 옮기면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현장에서 '오야지'라고 부르는 도편수의 성격에 따라 숙소가 여관인지 창고인지 컨테이너인지가 정해졌다. 임금이 며칠을 깔고 주는지, 체불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작업을 급하고 위험하게 하는지 안전하게 하는지가 정해졌다.

당연히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은 없었다.

형틀 목수일을 하면서는 어땠을까?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날에 안전교육을 받았다. 원청회사 직원이 진행하는데 현장에 대한 소개와 안전사고 사례를 들려주며 안전 작업을 당부했다. 중간중간 실제 근로계약을 맺는 하청회사의 직원이 개인정보와 개인 보호구를 지급받았다는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

그 서류와 함께 '일용직 근로계약서'라는 걸 함께 작성하게 했다. 비록 꼼꼼하게 읽어볼 시간도 없이 서명해야 됐지만,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된 지 3년차에 처음 작성하는 '근로계약서'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3항. 근로시간 : 시업 및 종업시간은 07:00~18:00로 한다. 근로시간은 휴게시간 2시간(09:00~09:30, 12:00~13:00, 16:00~16:30)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하며, '을'은 업무상 필요에 의한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동의한다.

시업에서 종업까지는 총 11시간, 휴게시간 2시간을 빼면 9시간인데, 8시간이란다. 물론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는 9시간 넘게 일하고 있고, 휴게시간 역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수 일을 처음할 때는 기능을 배우는 게 우선이었고, 근로기준이나 임금은 그 다음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 너무 피곤했고,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삶의 질은 좋은 편이 못됐다. 이 일이 너무 재미있지만, 근로 조건이 조금만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이 법이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루 노동 시간이 여덟 시간만 된다면, 일과 후에 지쳐 눕고만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근로시간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 50조가 있었다. 일요일에 한 번은 마음 편하게 쉬고 싶었다. 유급 휴일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 55조가 있었다. 사용자의 사유로 일을 못하게 됐을 때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휴업 수당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 46조가 있었다.

노동 일기를 쓰게 된 동기, 일용직 노동자 모습 때문 

4대보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서가 있을 때는 계약 기간이 1월 이상인 근로자, 근로계약서가 없는 경우라도 동일 건설현장에서 1개월 이상 근무하거나 20일 이상 근로 했을 경우에는 사업주에게 신고, 납부 의무가 있다.

한옥 일을 할 때에는 내가 한 달에 며칠을 일했건 19일을 일했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들어갔는데, 이는 모두 신고, 납부 의무를 피하기 위한 사업주의 꼼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원청으로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 일기를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언론에 비친 목수를 비롯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2006년 포스코 건설을 상대로 한 포항건설 노조의 파업 때처럼 일용직 건설노동자도 귀족 노조로 둔갑시키는 일부 보수 언론이야 그렇다고 치자. 진보 언론에서의 건설 노동자는 명절 때 등장해서 임금 체불 등으로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육체 노동자의 건강함과 건설 기능인으로서의 자부심은 이상일 뿐이거나, 이상이 현실이 된 미국, 일본의 건설 노동자 이야기일 뿐이었다. 내가 만난 건설 기능인들은 육체적으로 놀라울 정도였고, 기능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라도 그런 멋진 목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해 보니 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나는 육체 노동에 대한 건강함을 이야기하기에는 일 끝나고 쉬기에 바빴고, 자부심을 갖기에는 근로조건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느꼈다.

한국은 그래도 일하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하기 좋은 법을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다. 이 글을 쓰려고 근로기준법과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읽어보면서 말이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 지켜진다면, 건설 노동자의 기능과 자부심은 올라갈 것이고, 그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는 집의 품질을 올리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근로기준법, #한옥목수, #형틀목수, #건설일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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