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벽, 사람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잉워(硬臥, 경와)는 객실 전체가 열린 공간입니다. 승객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몸은 더욱 민감합니다.

아직 창밖은 암흑입니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아침은 멀기만 합니다. 불편한 잠자리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지난에서 우리가 타고 온 기차
▲ 웨양역에 도착해서 지난에서 우리가 타고 온 기차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오전 9시경 웨양(岳陽, 악양)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 차장이 객실을 돌며 기차표를 나누어주고 인식표를 수거해 갑니다. 미리 내릴 곳을 알려주기에 안심하고 잘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생소한 제도지만 낯선 여행자를 편안하게 합니다.

기차표 사는데 비자는 왜!

웨양역에서 내려 다음 행선지인 구이저우성(貴州省, 귀주성)의 구이양(贵阳, 귀양) 가는 기차표를 구입하였습니다. 1월은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춘절이 있어 기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어 회화책을 꺼내 기차표 구입과 관련된 대화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발권 창구로 향했습니다. 몇 년간 중국어 공부를 하였지만 실전에서 사용은 이번 여행이 처음입니다. 저를 제외한 일행은 중국어롤 전혀 하지 못해 부담은 가중되었습니다.

동정호를 품고 있는 웨양
▲ 웨양역 동정호를 품고 있는 웨양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우선 외국인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안녕, 나 한국인이야. 우리 일행이 5명인데 모레 저녁 구이양가는 루안워(軟卧, 연와) 표를 원해."
"여권 가지고 있어?"
"여기."

역무원이 컴퓨터로 표가 있음을 확인한 다음, 여권을 뒤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을 찾는지 알 수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컴퓨터 화면에 '여권번호' 기재하는 곳이 보입니다. 제가 여권에 있는 여권번호를 가리켜도 역무원은 반응이 없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역무원이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두 사람이 우리 일행 다섯 명의 여권을 다시 검토하더니 하나를 제게 보여줍니다. 그곳에는 몇 년 전 중국 여행을 할 때 사용했던 유효 기간이 지난 개인 비자가 있습니다. 컴퓨터에 기재하는 것은 여권번호인데 역무원은 비자를 찾고 있습니다.

단체 비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섯 명 이상이면 단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별도에 용지에 기재된 단체 비자를 역무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Group Visa, 团体签证"라고 영어와 중국어로 이야기해 보지만, 여권에 부착된 비자만 찾고 있습니다.

소요시간이 길어지자 뒤쪽에 줄을 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사람은 앞으로 와서 역무원에게 항의해 보지만, 역무원은 기다리라는 말뿐입니다. 30여 분쯤 시간이 지나자 역무원도 포기하였습니다. 비록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지만 여권에 개인 비자가 있는 사람은 비자번호를, 없는 사람들은 여권번호를 기재하고 표를 출력하였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지혜가 생긴다

다섯 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라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차표를 발권하는 동안 가이드북을 보며 일정을 짜고, 동정호(洞庭湖) 가는 시내버스를 알아보는 등 자연스럽게 분업이 되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혜가 아우러져 좋은 여행이 되고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
▲ 동정호 여가를 즐기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동정호에 도착하였습니다. 동정호는 가로 48km, 세로 26km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바다처럼 느껴집니다. 장강을 따라 하류의 상하이에서 상류의 사천까지 물류의 허브 항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류항으로 발달한 동정호 모습
▲ 동정호 물류항으로 발달한 동정호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동정호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시성(詩聖) 두보의 '등악양루'란 시의 배경이기에 친근한 이름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백과 더불어 중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던 두보는 관직보다는 유랑으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57세에 그가 쓴 작품이 '등악양루'입니다.

"옛말에 들은 동정호, 오늘 악양루에 오르니
오와 초는 동남으로 갈리고, 하늘과 땅이 밤과 낮이 떠있네
그리운 친구는 편지 한통 없고, 병든 몸을 외로운 조각배에 의지할 뿐이네
북방의 전운은 깊어만 가고, 난간에 기대의 눈물만 흘리네"

한류 덕분에..

숙소 인근에는 '악양제일중학교'가 있습니다. 중국은 학교 이름에서 학교 서열이 있습니다. '제일중학교'는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중학교를 의미합니다. 학생들 모습은 발랄하였으며 자부심 가득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K-POP과 가수, 배우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묻고 또 묻습니다.

악양제일중학교 정문 앞에서 연예인이 되다
▲ 한류의 여파 악양제일중학교 정문 앞에서 연예인이 되다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일행 중 한 분이 스마트폰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려주니 오히려 분위기가 시큰둥해집니다. 이미 한물간 노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알지 못하는 신곡을 들려줍니다. 중국에서 우리 연예인들의 관심을 알 것 같습니다. 한류 덕분에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들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태그:#웨양, #동정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