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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 일을 하고 있다. 한옥 목수일을 2년 넘게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직종을 비교하면서 목수의 노동 일기를 기록해보았다. - 기자 말

1년 365일 5분 대기조인 자의 노동

목수의 노동 조건을 가정해보자. 한 달에 일하는 근무일수는 평균 20여 일 정도이다. 그에 따른 수입은 20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 정도이다. 야간 작업이 거의 없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 사회에서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근로기준법과는 다르게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하지만, 사회 평균적으로 보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단순계산만 해보면 주 5일 정도의 근무이고, 시급으로 따지면 법적인 최저임금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른다. 현장에서 만난 목수들의 사례를 들어보자.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형틀 목수 M은 이 일을 한 지 30년이 넘었다. 중동 건설 붐 때 사우디 현장에서 3년 동안 일했다. 그때 번 돈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데 든든한 기반이었다. 귀국 후 1년 동안 세 군데 넘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했지만, 모두 다 몇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두었다. 주된 이유는 돈이었다. M은 몸이 힘들더라도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다시 망치를 잡았다.

건설 경기가 좋던 1980년대, 건설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면 일반 사무직 노동자의 두 배 넘게 벌던 시절이 있었다. M은 어느 광역시에서 모텔 짓는 일을 주로 했다고 했다. 수십 채 넘는 모텔이 M의 손을 거쳤다.

그런 M목수가 작년 12월 일했던 근무 일수는 27일이었다. M목수의 27일은 일요일에 한 번씩 쉬고 만들어 진 게 아니다. 그의 휴일은 하늘이 정해줬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거나. 비나 눈이 아니면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추워도 출근했다. 미세먼지나 황사처럼 야외활동 주의를 당부하는 뉴스가 나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났다.

내가 한옥 목수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동안 가장 많은 근무일수를 기록한 것은 첫 해 여름의 25일이었다. 그때 느낌은 이렇게 일하다가는 몸이 부서져 버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초기에 요령 없이 일했던 탓도 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이틀은 쉬어야 체력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평생을 꾸준하게 해온 목수들 치고 몸이 피곤해서라는 이유로 쉬는 것을 본적이 없다. M 역시 그런 목수였다.

그가 목수일을 시작하고 일요일은 더 이상 쉬는 날이 아니었다. 날씨가 궂은 날에만 외출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1년 365일 매일매일 날씨가 좋다면 365일이라도 일할 것 같은 M목수의 평균 근무일수가 한 달 20일이 된 것은 불안정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철 같은 기상 상태에 따른 요인, 하청 회사의 자재 수급과 같은 요인 등 원치 않는 이유로 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우에 형틀 목수일을 지난 1월 3일부터 시작해서 현장이 마무리된 25일까지 일한 근무 일수는 20.5일이었다. 임신한 아내의 검진 날 이틀과 눈이 많이 왔던 하루를 제외, 그리고 이틀의 연장 근로를 하고 얻은 결과였다. '겨울방학'이 길었던 이유로 조금 무리하게 한다고 했지만, 같은 이유로 체력에 무리가 갔고 초기에는 몸살로 고생했다.

그래도 20일을 넘게 채워 안심하면서 조금 이른 설 명절을 보낼 수 있었는데, 이 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현장에서 명절이 끝나는 데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팀장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월 5일이 되어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현장은 회사의 자재 수급이 잘 안 돼서 5일 일하고 또 일이 없었다. 회사의 과오로 수십 명이 실업자 상태가 된 것은 사회적으로 분노해야 할 일이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의 지위가 딱 그랬다.

난 다행스럽게도 집 근처에서 9일간 한옥 지붕일을 할 수 있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같은 팀 목수들에게 2월은 힘든 시기였다.

현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D목수에게 물었다.

"형님, 이번 달 이렇게 일 못해서 어떡해요?"

D목수의 한마디, "어쩌긴, X 된거지"

그렇다. 언제든지 X 될 수 있는 불안정 노동. 앞머리에 언급한 목수의 노동 조건에는 이런 전제가 추가되어야 한다. 1년 365일 기상 상태를 살펴야 하는 5분 대기조 같은 노동. 언제든지 실업자 상태가 될 수 있는 노동.

불안정한 휴일과 소득은 삶의 질을 현저하게 추락시킨다. 현장에서 만난 형틀 목수들은 대부분 이런 걸 감내하고, 가장의 역할을 해 나갔다.

대목장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유산 중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목장의 사회적 지위는 건설직 일용 노동자 이다. 사진은 한 한옥 목수가 지붕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장면이다.
▲ 휴식 대목장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유산 중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목장의 사회적 지위는 건설직 일용 노동자 이다. 사진은 한 한옥 목수가 지붕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장면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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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목수는 한옥에 살지 않는다

한옥 목수들은 어떨까?

50대 후반의 K목수는 내가 현장에서 만난 한옥 목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30년 넘게 일해 온 K목수는 나이가 무색하게 엄청난 에너지를 자랑했고, 무엇보다 기능이 뛰어났다. 다른 목수들보다 조금 낫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출중했다.

선자 서까래 걸기는 한옥 목수의 기능을 살펴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한데, 그는 뛰어나다고 하는 목수들이 거는 양의 두 배를 걸었다. 내 짧은 경험으로 봤을 때는 거짓말 같은 실력이었다. 그가 도편수로 참여한 유명 사찰의 다포집만 해도 수십채였다.

그런 K가 말했다.

"맑은 날 쉬게 되면 죄 짓는 기분이 들어."

난 이 말이 갖는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에, 조금은 아득해졌다.

작년 겨울 그를 힘들게 했던 문제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딸의 학자금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선택한 길의 기능에 관한 '끝판왕'과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그는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 일종의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가족을 위해 객지생활하며 오로지 일만 했는데, '끝판왕'을 깬 뒤에 얻게 되는 것이라곤 가족과 관련된 문제뿐 일 수도 있다는 사실(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좋아서 하는 일에 경제적인게 무슨 문제인가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잠시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조장하는 '배후 세력'이 누군지가 더 궁금하다).

내가 속한 건축협동조합 '터'에서 작년 여름에 흙집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교육생 한 분이 '한옥 목수는 한옥에서 살지 않는다'는 말을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한옥과 한옥 짓는 장인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분 같은데,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실 너무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서 한옥은 고급 단독 주택에 속하지만, 한옥 목수는 사회적으로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 아파트 짓는 형틀 목수는 아파트에서 살까? 많지는 않지만 서울의 아파트에서 사는 목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공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한 목수들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다. 삼 년 차 풋내기 목수로서 앓는 소리 내는 나에 비하면, 훨씬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상에는 품위 있는 사람과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나눠 지는 게 아니라 품위를 지킬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논객 김규항이 했던 말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온 목수들. 이들에게 좀 더 적절한 보상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아니 최소한 근로기준법이 정한 것 만큼이라도 지켜졌으면 좋겠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규제 철폐를 외치는 정부를 둔 나라의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라도 지켜지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다음에는 '일용직 노동자'인 목수들이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근로 내용은 어떤 것이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옥목수, #형틀목수, #노동조건, #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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