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달을 앞두고 독특한 가족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오빠가 돌아왔다>(아래 오빠)는 김영하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족코미디다. <오빠>는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불량가족'의 대립과 갈등, 화해를 통해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소재의 독특한 가족영화이다.

 김영하 원작의 <오빠가 돌아왔다>는 3월20일 개봉했다.

김영하 원작의 <오빠가 돌아왔다>는 3월20일 개봉했다. ⓒ 마운틴픽처스


독특하고 인상적이지만 뒷심이 부족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중딩' 백세주는 '전문고발꾼'(파파라치)인 아버지 백원만(손병호 분)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 고귀순(이아연 분)과 오빠 백태봉(김민기 분)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다. 전형적인 '88만원 세대'인 태봉은 거리음악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결국 월세방에서 쫓겨나고 만삭의 어린 아내 로미(여민주 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백원만은 태봉에게 또다시 폭력을 휘두르지만 성인이 된 태봉은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와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한다. 폭력으로 백원만을 제압한 태봉은 아버지로부터 가족권력을 탈취한다. 태봉의 작은 혁명(?) 이후 원만은 호시탐탐 권력회복을 노리며 태봉부부를 쫓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결을 중심으로 불량가족의 좌충우돌 코미디가 펼쳐진다.

 집으로 돌아온 태봉은 아버지 백원만을 힘으로 제압하고 가족권력을 장악한다.

집으로 돌아온 태봉은 아버지 백원만을 힘으로 제압하고 가족권력을 장악한다. ⓒ 마운틴픽처스


<오빠>는 한마디로 불량가족의 막장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5명의 가족 중 단 한 명도 정상적인 인물이 없다. 일반적인 가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세주가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 역시 중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 수준의 인물은 아니다. <오빠>는 이렇듯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불량가족의 대립, 갈등과 화해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노진수 감독은 전작 2009년 <노르웨이의 숲>에서 독특하고 인상적인 영화세계를 보여 줬다. 일본의 유바리영화제에 초청돼 영화제 관계자로부터 "헨타이 강도쿠"(변태감독)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적 금기의 경계선에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노진수 감독의 변태적 악취미는 비록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꽤 독창적이고 신선한 영화세계를 보여 줬다.

<오빠>의 전반부는 노진수 감독의 변태적 기질과 독특한 연출력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다. 빵빵 터지지는 않지만 키득거리게 만드는 B급 유머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코미디의 맛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 움직임, 배경음악을 적절히 결합한 몇 몇 코미디 장면들은 꽤 인상적이다. 특히 에로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를 은근슬쩍 영화 속으로 불러내는 마니아적 B급 유머는 단연 백미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급격히 힘을 잃는다. 갑작스럽게 충무로 가족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을 쫓는다. 불량가족의 변태적 매력은 뻔한 전개와 교훈적인 결말로 한순간 빛을 잃는다. 전반부가 감독의 영화라면 후반부는 제작자의 영화와 같은 느낌이다. 이 같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대립적 이질감은 이 영화의 매력을 급격히 반감시킨다.

<오빠>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거칠고 투박한 작품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놀랄 만큼 저렴한 제작비를 고려하면(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평균적인 상업영화의 제작비와는 큰 격차가 있다)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오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운 영화다. 원작의 냉소적인 정서와 노진수 감독의 극단적인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가족의 탄생>과 같이 좀 더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가족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업적-윤리적 압박 때문인지 <오빠>는 다소 어정쩡한 영화가 됐다.

젊은 배우들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민기는 중견배우 손병호와의 맞대결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뽑아냈다. 한보배, 여민주 등 젊은 여배우들의 거칠지만 날 것 그대로의 생동하는 연기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비중 있는 조연배우들의 인상적인 단역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노진수 감독은 <오빠>를 "캐릭터의 영화"라고 말했는데 독특한 캐릭터들의 톡톡 튀는 연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집중하는 노진수 감독의 연출법은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 방식과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 있다. 그리고 캐릭터 중심의 전개는 전반적으로 산만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연출법은 다양한 영화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관객들에게는 색다른 체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아들의 폭력은 19금?

 백원만은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백원만은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 마운틴픽쳐스


<오빠>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족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관람불가다. 아마도 가족코미디 장르에서 19금을 받은 영화는 <오빠>가 처음 일 것이다. 19금의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추측컨대 아들이 아버지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불량한(?) 설정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물론 백원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권력에 대한 태봉의 폭력혁명(?)은 사회적 통념을 고려할 때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족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빠>는 극단적인 영화가 아니다. 파격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밝고 따뜻한 가족코미디다. 욕설이나 표현의 수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태봉이 아버지 원만을 직접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태봉이 원만을 묶어 놓고 자신이 신던 양말을 입 속에 구겨 넣는 장면이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감상하기에 다소 민망한 성적 표현들이 일부 등장하지만 최근 TV드라마의 표현수위를 고려하면 15세 이상의 청소년이 볼 수 없을 만큼 과하지는 않다.

영화뿐만 아니라 TV드라마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는 장면은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단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19금을 받은 영화는 여태껏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정도의 장면은 거의 모든 TV드라마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따귀를 때리는 것은 훈육이 아니라 엄연한 폭행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폭력은 로맨스이고 아들의 폭력은 불륜인가? 물론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하는 것은 매우 부도덕한 행위이며 범죄다. 아버지가 아들을 폭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07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 신체적 폭력이 발생한 가구의 비율은 전체가구의 11.6%였다. 2010년에는 16.7%로 오히려 증가했다가 2013년에는 7.3%로 감소했다. 최근에는 가정폭력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미국(1.2%), 일본(3%) 등 OECD국가들에 비하면 현저히 높다. '매 맞는 남편'이 종종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부부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들이다.

자녀에 대한 폭력도 심각하다. 자녀에 대한 신체적 폭력은 2007년 49.7%에서 2010년 39.1%, 2013년 18.3%로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부부폭력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정서적 폭력까지 포함한 자녀폭력은 2013년 46.1%로 아이 두 명 중 한 명 꼴로 부모의 신체적, 정서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유독 가정폭력 발생비율이 높은 이유는 아버지 혹은 남편의 폭력에 관대한 가부장적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적지 않다. 또한 아버지의 폭력을 당연한 것처럼 묘사하는 미디어의 보수적 태도도 가부장적 폭력을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 아들의 폭력이 19금이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폭력도 19금이어야 한다. 이 같은 가정폭력에 대한 이중적인 사회적 잣대는 한국을 가정폭력 1위 국가로 만들고 있다.

물론 <오빠>에서처럼 아버지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가정폭력의 해법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19금의 세계에 가둬두는 것도 결코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운 화법으로 가정폭력 문제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오빠>의 시도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

현실에는 화목한 가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도 많다. 영화는 사회의 밝은 측면 뿐 만 아니라 어두운 측면도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관람한 후(물론 합법적으로는 볼 수 없다) 가부장적 권력에 대해 폭력혁명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우려처럼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영특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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