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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감사원의 친환경농산물 인증 실태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여러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요지는 인증기관이 난립하면서 부실 인증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인증기관 문제는 그동안 많은 농민들로부터 지적받아 온 것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다행히 제도 운영의 부실이 친환경 무용론으로 침소봉대하는 일은 없었다.

친환경 농정은 규모화·기업화 농정과 함께 우리 농정의 큰 축을 이뤄왔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개입한 곡물 메이저, 식품 대기업, 패스트푸드, 글로벌푸드, GMO, 농약, 화학비료, 기계화 등이 '규모화'에 속하는 반면, 가족농, 친환경, 유기농, 자연농업, 소농, 협동조합(생협), 로컬푸드, 슬로푸드 등은 '친환경'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규모화 농정은 김영삼 정부, 그리고 친환경 농정은 김대중 정부때부터 본격화했다.

규모화 농정과 친환경 농정의 차이는, 규모화의 경우 경쟁 지향의 소수의 엘리트 농민 양성에 주력하는 데 비해 친환경 농정은 전체 농민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책 대상의 범위가 넓고 광범위하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수출 위주의 중공업 중심으로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삶의 질'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산업간, 지역간, 계층간 불균형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WTO, IMF, FTA를 거치면서 가파른 시장개방과 신자유주의 경쟁, 그리고 이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국민은 생명의 가치와 같은 인간 본연의 삶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적잖았다. '공업화' '기계화' '이윤 추구'에 내몰렸던 시간만큼 우리가 인내하고 복구해야 할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실 불필요할 만큼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부분이 많았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식량자급률 22%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괴롭히는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불거지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도 모르게 살과 피 속에 화학물질을 담고,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세상을 만들었다. 친환경 농정은 이렇게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우리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반드시 필요한 정책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어렵사리 친환경 농정이 이어져 왔지만 개선해야 할 과제는 누적돼 왔다.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이 끈기를 지니고 친환경 먹거리를 위해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때에 화학비료, 농약, 그리고 GMO까지 허용하는 GAP(농산물관리인증)제도가 마치 친환경인증제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인 양 사실을 호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지역 농민들에게 친환경 농업을 교육하고 장려해야 할 시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친환경 농사를 지어온 지역 친환경농민단체장을 상대로 "돈도 안 되고 어려운 친환경 농사를 그만두라"고 권유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3.2%에 머물러 있는 GAP농산물을 30%까지 확대하겠다고 내세운 점,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이 일선 학교의 식재료 조달 때 친환경 농산물 권장 사용비율을 줄이고 GAP 농산물로 대체키로 한 점 등은 언론이 노골적으로 GAP농산물을 옹호하는 구실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남긴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 정부 들어 농식품부가 농산물 품질인증의 주력으로 삼고 있는 GAP도 다뤘다. 문제는 참여 농가 비중이 친환경 인증보다 10%P 적은 3.2%에 불과한 GAP 제도의 경우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TV와 일간지는 친환경 인증 기관의 난립을 문제삼으면서도 GAP에 대한 감사 지적사항은 중점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들이 감사 결과를 벌떼처럼 보도하고 나섰지만 GAP 인증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를 꼬집는 데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래 기사 내용은 많은 이들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미디어펜>이라는 인터넷 신문에 실린 것이다.

'특히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 제도의 경우 자기인증 금지 규정 자체가 없어 3개 인증기관의 임원들이 62톤의 농산물에 대한 자기인증을 받고 있음에도 제재가 불가능한 상태다.'

어찌해서 수많은 유력 언론들은 친환경 농산물 '셀프 인증' 사례는 문제 삼으면서 문용린 교육감과 정부가 친환경 인증의 대안으로 내세운 GAP 농산물의 셀프 인증 실태에 대해선 보도하지 않았을까.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친환경 농산물 사용 기준을 낮추고 전자조달입찰시스템과 GAP농산물 이용을 권장했다. 때문에 올들어 서울시친환경급식센터 이용 학교수가 854개에서 30개로 급감해 급식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1일 서울시내 중학교에서 학교급식 집단 식중독 사태가 터졌다. 이에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문용린 교육감의 사퇴와 함께 친환경 학교 급식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민감한 때에 감사원이 진작에 마무리지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주요 언론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GAP 인증의 문제를 빼놓고 친환경 인증 감사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돌이켜 보면 한미FTA, 한-EU FTA 협정문은 지자체가 환경에 기여하는 친환경 농산물의 학교급식을 지원하는 근거를 명확하게 담고 있는 못한 게 사실이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미국 유기식품 기준에 맞춰 유기농 식품 기준에 GMO와 화학 첨가제까지 수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정부가 애써 추진해 온 친환경 농정을 스스로 축소해야 하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친환경의 가치를 애써 폄하하고, 농약이 안전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홍보에 열 올릴 일은 아니다. 더구나 농약과 화학비료, GMO까지 허용하는 GAP제도가 친환경 인증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차라리 우리 먹거리의 안전성을 드높이기 위해서 친환경 농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가가 처한 여러 가지 형편상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친환경 농정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일이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난처한 입장이라면, 국민이 올바르게 현실을 직시하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라도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

갑작스런 타결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한·호주 FTA나 한·캐나다 FTA의 속내는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식의 일방향 '날치기' 통상 독재는 정부나 국민,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국민이 정부에 힘을 보태고 싶어도 알지 못해서 넋놓고 당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

지금 국민은 GMO를 피할 수 있는 길마저 완전히 차단당하고, 먹을 권리까지 내놓아야 하는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 친환경 먹거리 정책과 제도가 후퇴하고 GMO식품을 유기농 식품인양 사먹는 일을 초래할 수 있는 중차대한 협상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언론은 이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태그:#GAP, #감사원, #친환경,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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