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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다
▲ 역사는 반복된다
ⓒ 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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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우리쪽으로 돌려놓으면 돼

선거에서 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먹바위 딸은 선거대책관계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회의에 참석한 이는 S·피스 총리를 비롯 정보기관인 숲얼단 단장과 피스군 정보사령관·피스경찰청장·친원파 총재·먹바위 딸 선거대책본부장 등이었다. 먼저 입을 뗀 건 친원파 거두 늙은 여우였다.

"피스가 누구의 땅입니까. 만에 하나라도 공주님께서 숲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면 피스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피스의 미래도 염려되지만 무엇보다 원숭이 왕족과 친원파는 물론 먹바위 각하와 함께 했던 모든 세력들이 공멸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번엔 먹바위 딸 선거대책본부장인 독사가 나섰다.

"그러합니다. 느릅나무 후손이 당선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이라 한 게 아닙니까!"

회의를 지켜보던 먹바위 딸이 답답하다는 듯 나섰다.

"공주님, 공주님께선 이번 선거를 하나도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 어리석은 숲민들이 뭘 알겠습니까. 투표라는 게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인데,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선거 결과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숲얼단 단장인 늑대가 그런 정도야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우리가 한두 번 해 본 일이랍니까. 민주주의니 뭐니 떠들어도 아직은 권력 가진 놈이 대장인 세상 아닙니까."

피스군 정보사령관 오소리가 맞장구를 쳤다. 옆에 있던 피스 숲경찰청장 족제비가 손뼉을 치며 거들고 나섰다.

"그렇고말고요. 느릅나무 후손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결과를 마련해놓고 하는 싸움인데 질 리야 있겠습니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그렇게 한마디씩 보탰다. 지켜보던 먹바위 딸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나는군요. 모쪼록 앞으로도 제가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모든 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공주님께서는 원로 분들과 온천 나들이나 다녀오시는 게 어떨런지요."

숲경찰청장 족제비가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젊고 싱싱한 놈들로 들이겠습니다."

눈치 빠른 오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먹바위 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이 그리하라 하니 내 오늘 온천계곡으로 가지요. 대신 여러분들은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세요. 아시겠지요?"

먹바위 딸의 목소리가 풀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활기찼다.

"알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 모두가 합창을 하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 또한 신명이 붙어 날아갈 듯 했다.

먹바위 딸의 문란한 생활... 지지율 급락

긴급회의를 마친 관계자들은 마치 선거에서 이기기라도 한 듯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먹바위 궁을 나섰다. 이튿날 먹바위 딸은 모든 숲민에게 매달 도토리 열 가마씩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하지만 그 공약이 실천 될 것이라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론이 호전되지 않자 먹바위 딸은 먹바위 궁 소속으로 되어있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숲민을 위해 쓰겠다는 공약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번엔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바닥을 치던 지지율도 쑥쑥 올라갔다.

숲민들의 관심이 그렇게 먹바위 딸이 낸 공약으로 옮겨지나 싶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숲엔 먹바위 딸이 공주 시절 사생아를 낳았는데, 그 사생아가 원숭이를 닮았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숲민들이 동요하자 먹바위 딸은 자신은 아직 처녀이며 여직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다는 증명서를 만들어 숲민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숲민들은 먹바위 딸이 공개한 처녀증명서를 믿지 않았다.

느릅나무 후손은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피스를 하나로 통일 시켜 먼 대륙에 있는 숲까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그 공약이 먹혔던지 느릅나무 후손의 지지율이 쑥쑥 올라갔다. 먹이가 풍부한 대륙 숲까지 갈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친원파였던 삵의 후손을 비롯해 여러 숲민들의 지지선언이 잇따랐다.

그 때문인지 막판엔 느릅나무 후손이 앞서는 분위기였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부정선거가 난립했으며 매표행위 또한 극성을 부렸다. 몇몇 멧돼지는 도토리 한 됫박에 표를 팔았고, 너구리들은 쓰레기장의 관리를 맡는 조건으로 대리투표까지 했다. 선거가 임박해지자 피스정보기관인 숲얼단 소속의 딱따구리와 박쥐 등은 느릅나무 후손이 숲통령이 되면 통일을 이루는 게 아니라 숲을 N·피스에 통째로 넘길 속셈이라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 말은 삽시간에 숲 전체로 퍼졌고, 느릅나무 후손을 지지했던 많은 지지자들이 성을 내며 지지를 철회하는 소동이 일었다. 느릅나무 후손이 뒤늦게 거짓말임을 증명해 보였지만 떠난 지지자들을 돌아오게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투표를 몇 시간 앞두고는 먹바위 딸이 원숭이나라에서 불러온 젊은이들과 난잡한 밤을 보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고, 먹바위 딸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피스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겠군."

숲민들은 둘만 모이면 느릅나무 후손이 숲통령이 될 것이라고 속닥거렸다.   

"제가 숲통령을 한 건 공주님의 은덕이었습니다"

투표가 시작될 즈음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는 하루 종일 내렸고, 날씨 때문인지 투표율은 높지 않았다. 저녁 시간 먹바위 딸은 온천안가에서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그 자리엔 몇 시간 후면 숲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시궁쥐와 피스숲 고문인 흰머리독수리와 원숭이 왕족 등이 초대되었다.

실내엔 원숭이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미색의 젊은이들이 술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오래 묵은 술을 따 만찬에 초대된 이들의 술잔을 채웠다.

"자, 우리 먹바위 딸 공주님의 숲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를 하겠습니다."

피스에 살고 있는 원숭이 왕족 대표가 술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어머, 왕족 각하. 아직 투표도 끝나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 나가시는 거 아닌가요?"

먹바위 딸이 얼굴을 붉히며 술잔을 들었다.

"하하, 공주님 아무 염려 하지 마십시오. 이 시궁쥐가 다 조치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왕족 각하의 말씀이 지나친 건 아닙니다."

현직 숲통령인 시궁쥐가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호호, 당선이 확정되면 그게 다 시궁쥐 집사 덕분이라고 알고 있지요."

먹바위 딸이 시궁쥐에게 웃으며 화답했다.

"덕분은요. 공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 있었기에 나 같이 미천한 놈이 숲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게 아니었겠습니까. 지난 5년 동안 무리 없이 피스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공주님 덕이니 그런 말씀은 거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궁쥐가 겸양을 떨며 말했다.

"하하, 두 분께서 나란히 숲통령을 하시니 우리 원숭이 왕족이나 강 건너 본토에서도 마음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먹바위 각하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의 우정이 무탈하게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원숭이 왕족 대표가 시궁쥐와 먹바위 딸을 번갈아 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호호, 그럼요. S·피스가 원숭이나라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로 살고 있지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님께서도 생전 본토와 여러분들을 각별하게 여기셨으니 저도 그리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먹바위 딸이 원숭이 왕족에게 깊은 신뢰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역시 친원파가 피스를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도 든든합니다. 사실 전쟁에 패한 우리가 본토로 떠나고 N·피스 놈들이 친원파를 숙청할 때만 해도 S·피스에서도 저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많았는데, 먹바위 각하께서 그들을 거두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원숭이 왕족이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먹바위 딸이 옆 자리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젊은이를 품으며 말했다.

"호호, 별말씀을요. 우리가 어찌 원숭이나라의 은덕을 잊겠습니까. 태생이야 다를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원숭이나라가 우리의 아버지 나라가 아니던가요."

먹바위 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공주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피스에 사는 우리들도 한결 힘이 납니다."
"호호, 힘이 나신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공주님의 숲통령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도 친원파가 연 이어 숲통령을 하게 된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원파가 곧 친독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S·피스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줄 것이니 마음 놓고 여생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흰머리독수리가 말했다.

"호호, 감사합니다. 흰머리독수리 군대가 S·피스의 기틀을 잘 잡아 주셨기에 S·피스가 이나마 살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흰머리독수리 군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N·피스에게 먹혔을 겁니다. 원하는 건 다해드릴 테니까 S·피스를 계속해 지켜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린 형제가 아닙니까. 호호."

먹바위 딸이 흰머리독수리에게 감사의 잔을 올렸다. 잔을 받은 흰머리독수리가 단숨에 비워내더니 말했다.

"공주님의 치세가 영영세세하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영영세세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숲통령 선거를 오년마다 할 것이 아니라 이참에 종신제로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숭이 왕족이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먹바위 아버지 숲통령 각하께서도 못다 하신 일이니 공주님께서 완성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시궁쥐가 반색을 하며 나섰다. 시궁쥐의 말에 흰머리독수리도 "그 일이라면 우리도 힘껏 돕겠습니다." 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호호, 숲법을 바꾸라시니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먹바위 딸이 창밖을 내다보며 술잔을 들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먹바위 딸은 내리는 비를 보며 비가 참으로 태평스럽게 내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하, 공주님. 고민하실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밀어붙이면 될 일인걸요."

시궁쥐가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호호, 그렇다면 시궁쥐 집사의 말대로 해보지요. 자자, 여러분. 비도 내리는데 지금부터는 정치 얘긴 그만하고 우리 여흥이나 좀 즐겨봅시다. 오늘 특별히 미색이 출중한 아이들을 들였다고 하니 마음껏 즐겨봅시다."

먹바위 딸의 말이 있자 다들 곁에 있던 시중들을 끌어 당겼다. 먹바위 딸도 시중드는 젊은이의 손을 당겼다. 그녀가 젊은이의 손을 자신의 사타구니에 찔러 넣으며 말했다.

"손길이 순하고 곱구나……."

먹바위 딸의 말에 젊은이의 눈빛이 번쩍 달아올랐다.

"공주님!……."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부정선거, #박근혜, #친일파, #국정원,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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