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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2500년 전 공자가 <논어>에 적은 문구입니다. 2013년 대한민국도 '배우고 익히는' 열기가 뜨겁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아이들은 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 직장에선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공부에 빠진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논어와 차이가 있습니다. 즐거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걸 놓쳐서입니다. 함께 모여 '즐거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공부가 왜 배우고 익힐수록 즐거운지 살펴봅니다. - 기자말

바로 세운 주먹 위에 오른 손 하나, "사랑합니다."
▲ '언어로써 수화' 바로 세운 주먹 위에 오른 손 하나, "사랑합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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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수화, 아쉽지만 현실입니다."

안양대학교 수화동아리 '예손'의 부리더 이성재(22)씨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0일 만델라 대통령 추모식에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실수가 나왔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수화 통역사가 연단에 선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옆에서 아무런 뜻도 없는 손짓만 했다. 구색만 따진 보여주기였다. 바꿔 말하면, 대중이 수화에 대해 갖는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아직 길이 멀다.

지난 13일 언어로써의 수화 보급에 매진하고 있는 안양대학교 수화 동아리 '예손'을 찾았다. '아름다운 손'이라는 뜻의 '예손'은 열흘 후면 20년을 바라보는 장수 동아리다. 현재 20여 명의 멤버들이 다가올 공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들이 걸어 온 이야기, '예쁜 손'이 널리 퍼지기 위한 노력을 들어봤다.

"수화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지하철 1호선 안양역, 한 달에 한 번 시민들은 걸음을 멈춘다.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떻게 수화에서 저런 멋스러움이 나오는지 다들 신기하고 놀랍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한 예손은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표가 '수화의 대중화'라고만 짧게 밝혔다.

"수화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처럼 그냥 하나의 다른 언어로 인식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예손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양대학교 수화 강의가 대표적인데, 20년 전 수화 동아리 예손을 처음 만든 모상근 목사가 강사로 재직 중이다. 14년째 '수화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모 목사는 수화기 너머에서 말을 보탰다.

"처음 강의를 들었던 친구들이 이젠 마흔입니다. 그 후로 많은 후배들이 수화 보급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들이 수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넓혀주고 있어요. 고맙고 대견합니다."

"수화 배우고 싶다"는 한 마디에...

어느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안양여고 학생들을 바꿨다. 안양대학교 수화 대회 찬조 공연.
▲ "수화 배우고 싶어요" 어느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안양여고 학생들을 바꿨다. 안양대학교 수화 대회 찬조 공연.
ⓒ 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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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손의 노력은 계속 됐다. "수화를 배우고 싶다"는 여고생들의 한 마디에 학교를 벗어났다. 안양여고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해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여고생들과의 수업은 어땠냐?"는 질문에 예손 리더 홍유리씨(23)는 한숨부터 쉬었다.

"아...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이내 목소리가 바뀌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배우려는 의지 하나는 정말 대단해요. 유튜브 영상보고 미리 연습하고 익히고... 수업 때 경험하지 못한 걸 배우니 다들 즐거워 해요. 특히 지난달 수화 발표대회에선 굉장한 모습도 보여줬어요."

그의 말처럼, 지난 11월 28일 진행된 안양대학교 수화대회 영상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장면이 이어졌다. 절도 있는 군무로 수화 공연을 하는 20여 명의 여고생들 있었다. 절로 '와!'라는 감탄이 나왔다.

물론 멤버들이 공통으로 꼽은 최고의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안양대학교 채플 강의. 이 시간이면 '예손' 멤버들의 긴장은 극에 달한다. 무대 공포증 때문이다. 멤버들이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며 연사 옆에 서서 수화 통역을 진행하고 있다. 수백의 눈이 동시에 지켜보는 것이다.

"너무 너무 긴장되지만 수화가 언어로 인식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 당연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과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재밌는 사실은 예손 새내기 중 다수가 채플 시간 수화 통역을 보고,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다.

"목표요? 수화가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거죠"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청각장애인 수는 35만 명이다. 하지만 전문 수화통역사는 835명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420명 당 1명 꼴로 수화 통역사가 있는 셈이다. 의료, 법률 등 전문영역을 비롯해 일상에서 통역사가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때문일까. 전공과는 별개로 예손의 멤버 중에도 인생의 진로를 바꾼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예손 1기 멤버 모상근 목사는 전문 수화 통역사로 활동하며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멤버 중엔 4학년 고성미(24)씨가 전문 수화통역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제가 공대거든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 출발했는데. 해보니까 사회를 바꾸는 일이더라고요. 보람찹니다."

그랬다. 예손의 활동은 한 마디로 '소소하게 세상을 바꿔가는 과정'이었다. 이들이 꿈꾸는 건, 수화가 언어로써 대중에게 더 넓게 퍼지는 그날이다. 멤버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꾸밈없고 진솔한 이유기도 했다.

수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어렵지 않다. 주먹 하나와 그 위로 오른 손바닥만 올리면 된다.
▲ 사랑합니다. 수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어렵지 않다. 주먹 하나와 그 위로 오른 손바닥만 올리면 된다.
ⓒ 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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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끝으로 책 한권을 보여줬다. 1기 멤버 모상근 목사가 지은 <수화 아카데미>였다. 겉표지에 바로 세운 주먹 하나와 그 위로 오른 손바닥이 있었다. 예손 멤버 중 하나가 뜻을 아냐고 물었다. '분명 어디서 많이 봤는데.' 가물가물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1학년 윤란(21)씨가 수줍게 웃으며 도움의 손을 보탰다.

"사랑합니다."

순간 고백 아닌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즐거운 공부'의 시작은 역시 마음을 나누는 '사랑'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랑합니다'를 말하는 예손 멤버들의 손이 더욱 살갑게 보인 이유다.

▲ 수화는 아름답다. 수화, 단순히 손으로 하는 대화 이상의 것임을 보여준다. 안양대학교 수화 동아리 <예손> 공연 영상.
ⓒ 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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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화, #안양대학교,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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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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