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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조(早)는 해(日)가 시간을 측량 막대(十) 위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시간, ‘아침’을 뜻한다.
▲ 早 이를 조(早)는 해(日)가 시간을 측량 막대(十) 위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시간, ‘아침’을 뜻한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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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고 믿었는데, 그것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임을 알았을 때 다소 당혹스럽다. 그러나 문화의 속성이 늘 어딘가로 흘러 다니는 것이고, 고대에는 민족이나 국경의 개념이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결혼식 폐백 예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절을 받은 집안 어른들이 신랑과 신부에게 아들, 딸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대추와 밤을 던지는 풍습이다. 흔히 씨가 있는 대추는 아들, 씨가 없는 밤은 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풍습은 유사한 발음으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중국어의 해음(諧音)현상을 이용한 데에서 생겨난 걸로 보인다. 즉 대추를 나타내는 조(棗, zǎo)와 이를 조(早, zǎo)의 발음이 같고, 밤(栗子, lìzi)과 '자식을 세우다(立子, lì zǐ)'는 말의 발음이 같아 합치면 결혼했으니 '일찍 자식을 낳아라(早立子)'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결혼식 폐백 전통이 사라진 중국에서 결혼식 폐백에 밤과 대추를 던지는 걸 아는 이는 거의 드물다. '단오'라는 절기가 비록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지만, 그것을 독창적으로 변형, 재창조하여 잘 보전한 '강릉단오제'가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문화는 그 기원 못지않게 계승, 발전, 보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황하문명에서 시작된 중국문명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때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명을 선보이다가 한(漢), 당(唐)대에 이르러 이미 세계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고대 중국 문명의 '조숙(早熟)함'은 후세에 화려하고 풍요로운 역사적 유산을 물려줬으나, 근대로의 순발력 있는 전환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으니, 중국이 근대 초기 겪는 많은 수난은 그 문명의 조숙함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조(早, zǎo)는 원래 일(日)과 갑(甲)이 합쳐진 형태였는데 '甲'이 막대기 모양의 '十'으로 변형되었다. 해(日)가 시간을 측량 막대(十) 위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시간, 즉 '아침'을 뜻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현대문학의 기수 루쉰(魯迅)이 어릴 적 삼미(三美)서당을 다닐 때 자주 지각을 하여 훈장님께 혼이 났던 모양이다. 지각으로 꾸중을 들은 루쉰이 자신이 앉는 책상에 스스로 '일찍 와 지각하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로 '早(빨리!)'자를 새겨놓았는데 지금도 그의 고향 서당 한 켠에서 남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오늘날과 같이 문화가 소프트파워로서 이렇게 높은 가치로 자리매김 될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早知今日, 何必當初), 5.4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때 그리도 무참히 그들의 전통을 스스로 깨부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그:#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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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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