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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라는 한일관계는 전혀 개선될 조짐이 없다. 박근혜정부의 한일관계는 두 가지 면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하나는 취임 1년내 한미, 한중, 한러 정상회담을 마쳤는데도, 한일회담만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임기 중 한일관계가 나빴던 김영삼, 노무현정부에서도 임기 초반에는 비교적 양호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임기초반에 양국관계가 악화되면서 정상회담조차 못한, 경색된 한일관계라는 이례적인 사태를 보여주고 있다.

터널 끝이 안 보이는 한일관계

아베 수상의 잇단 망언에다가 역사왜곡 조차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정치가들의 대규모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그치지 않고 있다. 무려 20년 넘게, 1100여회 수요집회를 이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종료되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 사법부의 징용자 피해보상 판결에 대해서 일본재계는 한 술 더 떠서 전혀 보상할 수 없다는 담화문까지 발표하였다.

박근혜정부는 일본이 위안부보상과 야스쿠니 참배,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관계 개선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대안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열어봤자 오히려 양국관계만 악화된다는 것이다.

한일 갈등 못지않게 중일간 영토분쟁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이 불거지면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호주가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11월 초, 일본 자위대는 오키나와 주변에서 육해공 자위대 3만4천명이 참가한 전후 최대 규모의 실전 훈련을 벌였다. 중국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일간 전쟁을 준비하는 단계로 돌입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국지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중일간 전쟁을 염려하는 언론도

일본정부는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양국 합의하에 미해결 보류시킨 센카쿠 영유권분쟁을 인정조차 않는다. 작년 9월에는 아예 국유화시켜 버렸다. 이런 일본정부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단순히 석유자원이 매장된 보물섬이 아니고, 중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과 일본에게 굴욕당한 피해의 상징이 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에게 센카쿠열도가 영유권 분쟁 지역임을 인정하고, 공동 개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전혀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는 전쟁 범죄를 단죄한 도쿄재판 6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과거사 반성과 역사 화해를 하기는커녕,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추진하면서 동북아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가 배후에 깔려 있다.

미국은 글로벌 파트너로서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노골적으로 요구해왔다. 향후 10년간 9500억달러 국방비 삭감을 메워야 하는 미국의 방위 분담국이고, 세계 각지에서 운용가능한 군대로 활용할 수 있는 주일미군 주둔국이며,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헌법하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터부시된 용어였다. 1972년 9월 내각법제국은 평화헌법하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금지된다고 명시하였다. 상대방이 공격해 올 경우 전수방위 원칙에 따른 개별적 자위권은 허용하되,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포함한 집단적 자위권은 평화헌법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 1997년 신가이드라인, 1999년 주변사태법을 거치면서 일본정부는 유사시 미군에 대한 병참지원을 포함한 후방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해 왔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집단적 자위권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공해상 일본자위대 함정과 미국 함선이 나란히 항해 중에 피격을 받으면 즉시 반격이 가능해진다.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된 미사일 방어와 요격, PKO 활동에 참가 중인 동맹국에 대한 무기수송 지원, 임무수행중 기뢰 제거시 무기사용 등도 가능해진다.

일본정부는 국회에서 여야당합의로 전시에 해외거주 일본인 구출을 포함한 자위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 일본자위대는 한국내 약 6만명의 일본인 구출을 위한 파병이 가능해진다.

유엔헌장 51조에 따르면, 회원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당연히 회원국으로 유엔헌장내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제53조에 따라 아직까지 제2차대전 전범국으로서 독일,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적성국가(Hostile State)로 분류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는 전쟁반성과 전후보상을 하면서 유럽각국과 화해하였고, 해외파병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일본은 아직까지 아시아각국과 영토, 역사갈등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다자간 안전보장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데다, 양자간 미일동맹에 의존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주변국가와 전쟁 가능성만 높이는 결과가 되고 만다.

한국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전제로 평화헌법 준수, 주변국 우려해소, 투명한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을 방문하여 집단적 자위권이 한반도와 한국주권에 관련된 지역이라면 반드시 사전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전허가 없이 일본자위대의 한국영토내 작전은 불가능하며, 북한에 대한 자위권행사 역시 사전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연대

동북아지역 내에서 영토분쟁과 군비경쟁이 심화되면서, 국지전을 예방하기 위한 대화를 지속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내에서도 영토분쟁을 자제하자는 내부 의견이 적지 않다. 일본도 전쟁을 방지하고자 비상시 핫라인 설치를 중국에 요구한 상태이다. 미국도 중일간 양국이 절제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년 2014년은 제1차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며, 내후년 2015년은 일본패전과 광복을 맞이한 70주년이다. 1965년 이래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등 군국주의로 인한 완전한 파멸을 재조명하면서, 전후반성과 평화 화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한·중·일 3국간에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제3국을 포함하여 동북아지역에서 영토분쟁과 군비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다자간 군비통제 기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정부는 우경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시아 각국과의 대화를 더 높은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위안부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준수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해야 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주변국의 이해가 있어야 하며,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집단적 자위권이 유엔회원국의 권리인 만큼 한국이나 중국정부가 막을 수는 없지만, 일본정부는 주변국의 양해와 지역안정에 기여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집단적 자위권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지금 동북아에서는 세력균형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미일동맹의 강화와 일본의 재무장은 착착 추진될 것이다.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해양진출,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역내 불안정성이 점증하고 있다. 미중 G2체제하 미일,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세력균형아래서 불안한 평화가 지속될 전망이 높다. 21세기 동북아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를 전제로 한국의 외교, 국방전략을 재검토할 시기에 와 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을 쓴 양기호님은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입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동북아 평화, #한일관계, #중일관계, #집단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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