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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주도의 바람소리가 제법 무서운 밤이었다.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게르에서 나는 열한 명의 젊은 예술가들과 둘러 앉아 있었다. 일주일간의 워크숍 중반 즈음이었다. 열한 명의 예술가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 뒤, 나에게 마지막으로 발언권이 주어졌다.

"누가 마을에 들어가서 살게 되든, 진정성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과 녹아들면서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작업은 마을에 이렇게 보여질 것이고 저런 작업은 이렇게 비쳐질 거 같네요."

그 다음날, 나는 그 말을 한 걸 후회했다. 내가 제주도에 산 지 불과 일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마을 원주민도 아닌데, '진정성'을 요구하고, 이런저런 평가를 할 자격이 있는지 싶었다.

"같이 살아보실래요?" 기사 보고 찾아온 여자 1호

육지에서 온 열한 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제주도 한 자리에 불러모은 것은 우리집에 사는 여자1호, 유라였다. 그녀는 신랑과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 한림읍 한림3리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다. 한림3리의 인구는 불과 100여명이다. 요즘 제주도 마을들 같지 않게, 이주민들도, 젊은 사람들도 찾아보기가 아직은 쉽지 않은 곳이다. 마을을 돌아보는데 걸어서 10분이면 족하다.

요즘은 육지의 예술가들이 자연환경이 좋은 제주도로 와서 살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문화이주자'라는 사람들이다. 마을에서 산 지 오래지 않아 떠나버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간극도 좁히지 못하는 경우들을 봐온 유라는, 제주도의 가장 작은 마을에서 사진을 하는 남편과 아이도 낳고, 천천히, 느리게 작업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유라 부부는 그 걸음에 동참할 의사가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한림3리 어르신들께 인사시키고 제주의 역사와 문화, 생태를 공부하는 워크숍을 일주일 동안 진행했다.

한림3리 퐁낭 밑에서 임남호 이장님과 함께 한 예술가들.
▲ 문화예술단체 '아테우리' 한림3리 퐁낭 밑에서 임남호 이장님과 함께 한 예술가들.
ⓒ 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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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제주4.3연구소 오승국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테우리 멤버들.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제주4.3연구소 오승국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테우리 멤버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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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쉐어하우스 입주자 1호인 유라는 한림3리에 집을 얻게 되면 우리 집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번 워크숍은 어쩌면, 그녀를 보낼 준비를 하는 전초전 쯤 된다.

올해 여름, 쉐어하우스를 위해 농가주택 내부 공사를 할 때, 나의 '같이 살아보실래요'라는 기사를 보고 찾아온 그녀를 만났다. 많은 이들이 공사기간에 연락을 해오고 얘기를 나누고 집을 보고 갔지만, 한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하다 보니 내 나름의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그만 하라고 하는 데도(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빗자루를 들고 와 청소를 돕는 그녀는, 마치 호기심 많은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적극 청소를 돕는 '싸가지'가 있는 것을 보고, 어디 가서 민폐 끼치는 타입은 아니라는 말을 믿기로 하고 김치전골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눠본 후 같이 살아보자고 했다. 

바닷가에서 목놓아 우는 여자 1호에게서 나를 봤다

유라, 지현과 우리집 마당 화단 정리를 하던 날.
 유라, 지현과 우리집 마당 화단 정리를 하던 날.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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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인의 삶을, 그녀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자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낯선 사람들의 동거에 있어 어느 정도의 충돌은 불가피한 거라고 서로 인정하면서도 서로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와서 산 지 한 달 만에 그녀가 흘리는 눈물, 그것은 왠지 모를 서러움이었다.

그런데 그 서러운 눈물이, 낯설지가 않았다. 기억이 났다. 내가 혼자 제주도에 와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흘렸던 눈물이 말이다. 나 또한 제주도에서 믿고 의지하고 싶었던 누군가에 의해 '너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우리는 달라'라는 이유로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 했던 적이 있다. 외로운 하나의 섬 속의 섬, 그것이 나였고, 또 유라였다.

그녀가 판포리 바닷가에서 목놓아 우는 것을 봤을 때 느꼈던 자괴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어느새 다시 그녀를 가르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워크숍을 준비하기 위해 역사, 문화, 생태 등 각 분야의 강사들을 섭외하고 마을 분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뭔가 어설픈' 그녀에게 나는 잔소리쟁이가 되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주도 인맥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연결돼. 뭐든 조심해야 돼. 사람들 체면을 세워주고 거기서 실리를 찾아야지. 그건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저 사람은 저런 부분을 기대하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해줘."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눈치, 밀당, 체면, 정치 등의 인간관계론을 가져다가 '썰'을 풀고 있는 내게 그녀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굴리며 답답해서 복장 터져 하는 나를 보고 말했다.

"언니는 내가 못 보는 걸 보는구나. 어쨌든 그냥 천천히, 진심을 갖고 가면 될 거라 믿어요. 그것 밖에는 가진 게 없으니깐."

믿을 사람 없는 제주에서 아군을 얻었다

하늘나라로 간 오월이를 함께 보내고, 오월이를 그려달라는 내게 유라는 오월이를 만들어주었다.
 하늘나라로 간 오월이를 함께 보내고, 오월이를 그려달라는 내게 유라는 오월이를 만들어주었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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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심을 보고, 진정성을 보고, 한림3리에서의 일들에 동참하기로 한 것을, 나는 종종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제주도에서 산 지 일년 반 동안 만나게 된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따라하고 있었다. 먼저 육지에서 입도했다는 것만으로 그리 오래 살지 않았는데도 섬의 모든 사람들을 아는 척 하고, 모든 것에 대해 아는 척 하는 사람들. 이제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넌 아무것도 모른다며 과시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들처럼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오는 것만 같을 뿐, 각자 다른 삶을 살다 다른 생각을 하며 섬에 들어왔고, 삶의 방식도, 목표도 다른 이에게 내 방식과 내 인맥이 옳다며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언젠가 입도한 지 몇 년 된 이와 술 한 잔을 하며 대화를 하다가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

'아군이 없다. 누가 믿을 수 있는 아군인지 알 수가 없다. 어제 내가 한 말과 행동을 오늘 모두가 알고 있더라. 섬에는 비밀이 없다. 그런데 이 곳의 표면적으로 아름다운 삶과 좁아서 쉽게 만들어지는 인맥, 그런 걸 모르는 육지 사람들한테 과시하고 살기에 참 쉽다.'

입도조(入島祖)라는 말이 있다.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면 제주의 성씨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제주에 들어와 정착했든 그 후손들은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였다.

요즘에는 섬에 들어온 '육지것'을 이르는 다른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섬에 대대로 살아온 이들과 달리 이제 입도해서 일대조가 되었다는 뜻이다. '섬사람'으로 살아가려고 연고도 없이 온 이들을 구성원의 일부로 포용해주는 맥락의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섬으로 들어와서 살아가고 있는 나, 마을로 들어가 뿌리를 내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유라, 우린 그저 입도조 동지일 뿐이다.

다른 길을 걸어왔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섬에서 다른 길을 가겠지만, 아군은 하나 얻은 셈이다. 그녀와의 동거 4개월, 이젠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


태그:#제주도, #쉐어하우스, #한림3리, #아테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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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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