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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과 맥주를 지칭하는 '치맥'은 언제부턴가 고유명사가 됐다. 두 개 중 하나라도 빠지면 서운한 느낌마저 든다. 치맥은 요즘같이 무더운 날에 더욱 간절하게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 치킨으로 잃었던 입맛을 되살리고,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래다보면 어느덧 절정이던 무더위가 지나간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끼리 치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여름날의 대표적인 풍경이 됐다. 이런 대중의 사랑에 힘입어 '치맥 문화'는 축제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처음으로 만든 곳이자 '치킨의 메카'라고 자처하는 대구에서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열린 '2013 대구 치맥 페스티벌' 개막식에 다녀왔다.

치맥 페스티벌 첫 날인 지난 18일, 축제가 열린 달서구 두류공원 야구장에는 치맥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교복을 입은 학생과 선글라스로 멋을 낸 대학생, 등산 모자를 쓴 어르신들까지 전 연령층이 현장을 찾았다.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개막식이 열리기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한손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입장을 기다렸다. 이 축제에서 맥주를 마시려면 '성인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줄이 순식간에 100m를 넘겼다. 이날 경찰 추산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관람객들은 시음과 시식 행사,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 축제에 참여한 교촌치킨, 땅땅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별별치킨 등 30여개 업체들도 시식용 치킨을 제공하기 위해 각 부스에서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안하다, 맛있었다,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라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펼쳐졌다.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펼쳐졌다.
ⓒ 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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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페스티벌은 팔을 닭날개처럼 모아서 흔드는 '닭날개 댄스'로 시작했다. 이후 행사를 주관한 한국식품발전협회 이수동 회장과 김범일 대구시장 등이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그리고 개막식 전부터 화제를 모은 '닭 위령제'가 펼쳐졌다. '닭의 혼령을 위로한다'는 특이한 발상의 퍼포먼스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박정욱 명창은 무대에 올라 닭에게 구슬프고도 해학적인 노래를 바쳤다.

"수억 만마리 튀겨죽고, 끓는 물에 삶아 죽고 자라지도 않은 영계로 잡혀먹고. 닭소리로 위령제를 시작한다. 다같이 외칩시다. '꼬끼오~'. 죽은 닭들의 혼령을 모시자. 인간 손에 죽은 억만 마리 닭의 혼령들. 많은 사람 영양보신 시키시고. 장닭, 씨암탉, 병아리 혼령을 치맥 페스티벌로 모십시다. 닭은 죽어서 무엇이 될까. 다음 생에는 인간이 되라."

박정욱 명창이 닭 혼령들을 위로하고 있다.
 박정욱 명창이 닭 혼령들을 위로하고 있다.
ⓒ 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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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울음소리를 내며 닭의 혼령을 위로하자는 명창의 말에 시민들은 "꼬끼오"라고 크게 외치며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난 가마솥에 삶아 죽은 닭인데 위령 잘 받고 가네"라는 닭의 말을 대신 전하는 것으로 위령제는 마무리됐다.

오랜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밤

이날 20개가 넘는 부스에서 치킨과 맥주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몰리는 인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맥주를 마시려면 성인인증센터에서 신분확인을 한 다음 다시 줄을 서야 하는데, 최소 1시간을 투자해야만 무료 시식용 치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치킨을 구입하려는 줄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서 발걸음을 돌리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 오종태(35·대구)씨는 "방금 왔는데 차가 막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돌아간다"라며 허탈해했다.

창원에서 온 이나경(24·여)씨도 "부스 설치 같은 걸 봤을 때 생각보다 시설이 잘 된 것 같다"며 "하지만 너무 사람이 많아 줄을 오랫동안 서야 돼서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맥주를 얻을 수 있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맥주를 얻을 수 있다.
ⓒ 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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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메인무대에선 6명의 댄서들이 20여 분간 춤을 췄고, 후에 초대가수 코요테가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치맥을 받기 위해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밤이었다. 아직 줄 서 있는 시민들은 행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이곳을 찾은 남녀노소 모두가 한여름 밤의 추억을 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올해 처음 개최된 '치맥페스티벌'은 무료시식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 등 미숙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맥주를 대대적으로 나눠주는 행사다 보니 안전과 음주운전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경찰본부와 소방본부, 의료본부 부스가 행사장 안에 설치돼 있었고, 안전요원이 곳곳에 배치되어 안전사고를 대비한 덕분이다.

마땅한 문화상품이 없었던 대구시에게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상품이 하나 생긴 것으로 보인다.

"독일 뮌헨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 Oktoberfest)'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축제로 만들고 싶다."

김범일 대구시장의 인사말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본다.

밤이 되자 행사장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밤이 되자 행사장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 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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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맥페스티벌, #치맥, #대구, #두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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