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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도 힐링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년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최근엔 판매 2백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왜 다른 사람보다 잘살지 못할까? 왜 늘 사랑에 실패할까? 왜 웃을 일보다 울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힐링 열풍이 계속되는 것 자체가 지금의 삶이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이자 2007년 베스트셀러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저자 월호 스님은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을 무언가를 의지하는 것으로 채우려 한다고 지적한다. 물질적 존재인 돈이나 술, 혹은 마약에 의지하여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혹은 종교적 존재인 절대자에게 기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스님은 물질적이나 종교적으로 무언가에 의지해 편안함을 얻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외부의 조건은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동들은 일시적으로는 채워질 수 있을망정 끊임없이 외부에 갈구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감은 모두 주인이 아니라 손님에 불과합니다. 손님을 보내 버리세요.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의 담벼락을 관찰하면 마음이 아무 데도 속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월호 스님.
 월호 스님.
ⓒ 행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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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 스님은 힐링의 다음 단계는 웰다잉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알았다면 이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돌보고 채우는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은 '웰다잉' 즉, 후회 없이 죽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두려운 존재다. 그러나 월호 스님은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삶을 비춰주는 불빛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지금의 삶을 바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의 단어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하는 이들이 늘면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며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도 이유다. 대거 은퇴 물결을 맞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인구의 15%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은 인생 2막뿐 아니라 삶의 마무리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을 스스로 챙기고, 상속과 장례 준비 등을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강동구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선진국에서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죽음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죽음을 금기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웰다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MBC는 지난 12월 국내 최초 '웰다잉 페어'를 열어 사흘간 5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노년층에만 집중되었던 과거 행사와는 달리 이번엔 직접 유서를 써 보고 동영상 편지를 남기는 것에서부터 관에 직접 들어가 보는 체험까지 이색적인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관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컴컴한 관 속에서 불과 10분을 누워 있다 나온 사람들이 눈물을 쏟는 모습은 화제가 되었다.

중병에 걸렸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인 '사전의료의향서'도 신청자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민간단체가 2년 전부터 추진한 이 운동은 현재 7천 명을 넘은 상태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내 위치한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은 작년 한 해만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해 서명을 한 상태다. 의과대학 교수들과 시민단체가 종교단체와 노인대학을 돌며 강연을 통해 참여를 확산시킨 결과다.

죽음이라는 화두가 공개적인 장으로 나오며 기업들도 직원 교육에 웰다잉을 도입하고 있다. 워크숍 때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넣은 것이다. 한 기업교육 담당자는 "처음에는 반발도 많았지만 직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죽음의 참다운 의미를 새기기 위해 민간 연구소도 설립되었다. 부산 웰다잉문화연구소는 웰다잉 지도자 양성 과정도 운영하며 지역민들이 생명의 존엄성과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오늘의 나를 돌보다

그렇다면 웰다잉이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그 답은 월호 스님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님은 최근 신간 <삶이 값진 것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에서 죽음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용어에 빗대어 설명한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의 생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시간을 낭비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스님은 이는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잊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생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죽음의 의미를 깨달으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월호 스님은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숭고함을 역설한다. 돈 버는 일, 상처 받는 일, 시련 당하는 일, 고된 일, 미워하고 아파하는 일…. 스님의 말을 통해 수많은 삶의 존재놀이 앞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갚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의 삶은 단지 선고유예 받은 날들일 뿐이며 그 짧은 생을 살고 가는 이 세상에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된다.

웰다잉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후회 없는 마무리를 위해 오늘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불평, 불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환기되는 삶의 생생함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리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당연하지만 분명한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

힐링을 통해 자신을 치유했다면 이제는 웰다잉을 통해 삶의 순간을 절실하게 느끼고 후회 없이 살아갈 차례다. 웰다잉 바람을 통해 현대인들은 불행과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기 자신을 더욱 소중히 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태그:#웰다잉, #월호 스님, #삶이 값진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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