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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노동자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3월27일 오전 11시50분]

그는 5시간 이상 누워 있지 못한다. 새벽일만 10년 넘게 하다 보니 몸이 이를 기억하고 있는 탓이다.

박윤수(가명, 47)씨는 매일 새벽 1시에 야쿠르트 및 발효유를 배달하기 시작한다. 아파트 28개동 약 1000가구에 배달을 하고 나면 오전 3시가 조금 넘는다. 그는 야쿠르트 배달로만은 벌이가 부족해 이어서 신문을 배달한다. 신문 배달을 하고 나면 오전 5시가  넘는다. 그는 집에 도착해 남편과 세 딸의 아침을 준비한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은행에 가 일을 보거나 시장에 가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한다.

어느새 오전 11시. 다시 야쿠르트 유니폼을 챙겨 입고 배달구역에서 오후 4시까지 판매를 한다. 늦어도 오후 5시 전에는 야쿠르트 대리점에 가야 한다. 다음날 배달할 물건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다시 배달해야 할 야쿠르트와 유산균 음료들을 정리하면 오후 7시가 되서야 박씨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새벽 1시에 시작되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삶

동네 곳곳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는 쉽게 만날 수 있다.
▲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야쿠르트아줌마 동네 곳곳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는 쉽게 만날 수 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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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에서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 중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다. 한국야쿠르트에 따르면 1971년 47명에서 시작한 전국의 야쿠르트 아줌마는 현재 약 1만 3500여 명에 달한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별다른 경력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자신의 재량에 따라 배달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부들이 선호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주부들의 사회활동이 드물었던 1970년대부터 시작된 판매 배달원의 대표선수다. 한국야쿠르트는 이들 아줌마들이 주로 파는 65ml밖에 안 되는 야쿠르트 판매를 기반으로 매출 1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아줌마 방문 판매 조직은 이후 화장품, 정수기, 학습지 등에서도 벤치마킹됐다.

하지만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회사 제품을 파는 이들 야쿠르트 아줌마는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니다. 현행 법상으로는 특수고용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국민권익위원회가 고용노동부에 법률검토를 권고한 '특수고용 유사업종'의 노동자다. 한국야쿠르트는 1971년부터 이들이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일해왔다고 설명한다. 4대보험은 당연히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18일 저녁, 6년 넘게 야쿠르트 배달일을 하고 있는 박윤수씨를 만났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전국에 600개에 달하는 야쿠르트 대리점으로부터 물건을 지급받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를 배달 판매한다. 한 달이 지나면 집집마다 다니며 한달치 요금을 정산한다. 물론 최근에는 자동이체 고객이 늘어 그 수고가 많이 덜어지기는 했다. 매달 9~10일이 되면 한 달 동안 13개에 달하는 야쿠르트와 기타 발효유의 판매 배달 금액(개당 150원-1300원)을 대리점으로 입금시킨다. 다음날 판매금액의 22~26%를 지급 받는다.

마실 것을 많이 찾게 되는 여름이 박씨에게는 배달이 늘어나는 성수기다. 반면 겨울이나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마시는 것을 끊는다. 박씨는 "야쿠르트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좀 힘들다 싶으면 가장 먼저 야쿠르트를 끊는 것 같아요. 경기가 많이 안 좋아지면 배달집이 확 줄어요"라며 "요즘은 모두들 먹고 살기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영업에 대한 압박도 있다. 박씨가 일하는 야쿠르트 대리점은 보통 한 달에 두 번 영업 교육을 실시한다. 새로 출시한 제품이 있으면 제품 설명을 하기도 하고 집집마다 방문해서 판매를 권하라는 게 교육의 주 내용이다.

대리점에서는 한 달 총 매출이 600만 원일 경우 30만 원 어치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라고 압박한다고 한다. 야쿠르트 아줌마들끼리는 건강기능식품을 줄여 '건기식'이라고 말하는데 이를 판매하기 위해 친척부터 동네 친한 사람들까지 총동원해 팔아보지만 매달 역부족이다. 하는 수 없이 박씨는 제품을 사서 남편과 세 딸에게 먹인 적도 있다. 박씨는 TV에 관련 CF가 나오거나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말만 나와도 고개를 젓게 되는 등 '건기식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말할 정도다.

불안한 노후...4대 보험 적용 못 받고

야쿠르트 아줌마의 월급명세서
 야쿠르트 아줌마의 월급명세서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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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배달부터 건강식품 판매까지. 새벽 1시부터 낮에 서너 시간을 빼고는 저녁 7시까지 일하는 박씨의 월수입은 200만 원 내외다. 최근에는 경기가 좋지 않아 150만 원 정도로 떨어졌다. 한국야쿠르트 측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쿠르트 아줌마의 2012년 월평균 매출은 750만 원이고 평균 수입은 18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박씨가 배달하는 곳에서 10분 거리에는 대형마트 두 곳이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 박씨가 배달하는 야쿠르트와 발효유 제품을 판매한다. 박씨는 "요즘 사람들은 배달해서 시켜먹고 매달 돈 내는 것보다는 마트 가서 사 먹는 걸 좋아한다. 우리에게는 많이 팔라고 압박하고 마트에다가 같은 상품을 뿌려놓고, 마트는 동네마다 생기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물 셋, 스물 둘, 열여섯. 박씨에게는 세 딸이 있다. 기술직인 남편의 월급은 자신과 비슷한 150만 원 정도. 두 딸의 대학 등록금과 중학교 3학년인 딸 학원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다. 박씨가 새벽에 신문 배달을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여기저기 몸이 아파 와서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일을 그만둘 때 목돈이라도 만져 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6년 넘게 야쿠르트 배달을 하고 있지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퇴직금은 기대할 수 없다. 박씨는 얼마 전 15년 일하다 이 일을 그만뒀지만 퇴직금은 한 푼도 없는 동료를 봤다. 그는 "일반 직장에서 15년이면 퇴직금을 못 해도 돈 천만 원 이상은 받을 텐데"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박씨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사업자 등록'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들었을까. 그는 한참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아이들 키우기 위해 일에 뛰어든 거라 4대보험이 되는지 퇴직금을 받는지 제대로 따질 겨를이 없었다. 갑과 을이 쓰여 있는 계약서에 따라 도장을 찍고 서명을 했을 뿐이다.

"불안하죠. 노후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 이 나이에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다른 일을 뭘 할 수 있을까 싶어 계속하는 거죠. 그나마 저는 남편 회사에서 의료보험이 돼 다행인 축에 속해요."

박씨에 따르면 주변 야쿠르트 아줌마 중에는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많다고. 그 경우 의료보험부터 연금까지 5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모두 개인의 몫이다.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는 형편들"이라는 것. 박씨는 몇 년 전, 남편이 다쳐 1년간 직장 없이 쉬었을 때, 의료보험 혜택마저 받지 못해 눈앞이 깜깜해졌던 경험도 있다.

박씨 한국야쿠르트를 두고 "야쿠르트 아줌마들에게 참 냉혹한 회사"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 측 "영업 압박은 없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각 박스에 야쿠르트와 발효유 제품을 넣어 전동카로 실어 나른다.
▲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배달하며 사용하는 전동카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각 박스에 야쿠르트와 발효유 제품을 넣어 전동카로 실어 나른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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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쿠르트의 공식홈페이지에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위한 복지혜택'이 소개돼 있다. 판매 우수자 및 장기근속자들에게 여행을 보내주고, 1년에 한번 각종 이벤트 및 판매우수자에 대한 시상을 하는 야쿠르트 대회를 개최하고, 상조회를 운영하며 야쿠르트 아줌마 단체 연금저축을 지원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박씨는 "야쿠르트 대회는 매년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곳에서 유명 가수들을 불러 공연을 하는 거죠. 집에서 거길 가려면 일도 빨리 끝내야 하는데, 대리점에서는 어쨌든 가야 한다니까 가죠. 뭐 반갑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장기근속자 여행 보내주기 혜택도 10년 이상 된 사람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나마 연금저축이 도움이 되는 편이다. 연금저축은 말 그대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단체로 저축을 드는것인데 10만 원을 저축하면 1만 원씩 회사에서 돈을 더해주는 식이다. 지난 6년간 1만 원 보태주던 것을 올해 3월부터 5만 원으로 올렸다. 5배가 뛴 셈이라 반갑지만 1년이면 60만 원 정도가 더해지는 거라 퇴직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들은 왜 한국 야쿠르트에서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것일까.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왜 그랬는지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면서 "지금까지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건 여사님(야쿠르트 아줌마)들도 이에 동의하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을 시작하실 때 여사님(야쿠르트 아줌마)들은 4일간의 교육을 통해 개인사업자 등록에 대해서 다 알고 시작하신다"며 "개인사업자에 대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상태에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건강기능식품이나 야쿠르트 판매에 대해 영업 압박은 없느냐는 질문에 "여사님(야쿠르트 아줌마)들은 그 동네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들이다. 이 분들의 역량에 맞춰 판매할 수 있도록 회사가 북돋는 수준"이라며 "판매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에 대한 복지문제는 "이분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복지혜택이 없는 게 맞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혜택을 주려고 회사 측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연금저축도 그 노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은 "정부는 2000년부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관해 고민해왔지만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새로운 법이나 특별법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확대해 이분들도 똑같이 노동 3권 등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태그:#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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