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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목요일(3일) 파주의 온도는 영하 25도. 금요일에도 영하 23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영하 25도는 지난 2010년 1월의 최저기온인 영하 26도를 기록한 이래 제가 파주로 이사 온 7년 동안에 겪은 두 번째로 낮은 온도였습니다.

올해 잦은 강설로 집 주위는 여전히 흰 눈밭입니다. 마을의 이웃들도 상수관이 얼거나 하수관이 얼어서 불편을 겪는 분이 여럿이었습니다.

올겨울의 잦은 강설로 헤이리는 여전히 눈밭입니다.
 올겨울의 잦은 강설로 헤이리는 여전히 눈밭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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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혹한의 아침에 창밖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혹한에 새들은 추위를 어찌 견딜까?"

매일 해모의 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딱새는 무사할까? 무리로 이동하던 참새들은 지난밤을 어디에서 보냈을까? 개똥지빠귀의 노랫소리는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박새의 데이트는 계속될 수 있을까? 쇠딱따구리의 나무파기 솜씨는 오늘도 볼 수 있을지?

올해는 해모의 긴 다리가 모두 빠질 만큼 눈이 내렸고 혹한도 유난합니다.
 올해는 해모의 긴 다리가 모두 빠질 만큼 눈이 내렸고 혹한도 유난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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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던 정원은 햇살이 퍼지자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리에 화려한 무늬를 단 노랑턱멧새가 사람의 발길로 눈이 녹은 정원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습니다.

노랑턱멧새 수컷입니다. 눈썹무늬와 멱이 노란 노랑턱멧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텃새입니다.
 노랑턱멧새 수컷입니다. 눈썹무늬와 멱이 노란 노랑턱멧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텃새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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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랑턱멧새의 먹이활동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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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딱새도 해모의 밥그릇 모서리에 앉아 꽁지깃을 흔들면서 단 한 개의 먹이를 물어갈 기회를 가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컷 딱새는 12월에 눈이 내리고 나서부터는 매일 몇차례 방문해 해모의 사료 한 알을 취하곤 합니다.
 이 수컷 딱새는 12월에 눈이 내리고 나서부터는 매일 몇차례 방문해 해모의 사료 한 알을 취하곤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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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부부는 운 좋게 발코니의 테이블 위에서 마른 고욤나무열매 하나를 찾았습니다.

직박구리는 밀짚모자 밑에 숨겨진 고욤나무가지에 아직 남아있었던 마른 고욤 한 개를 용케 찾아냈습니다.
 직박구리는 밀짚모자 밑에 숨겨진 고욤나무가지에 아직 남아있었던 마른 고욤 한 개를 용케 찾아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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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도 청향재의 좀작살나무 가지 위에서 무리 지어 노닐었습니다.

물까치는 간혹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곤 합니다. 다른 새들에 비해 몸집이 큰 물까치 떼가 작은 나무가지위에 함께 앉은 모습은 장관입니다.
 물까치는 간혹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곤 합니다. 다른 새들에 비해 몸집이 큰 물까치 떼가 작은 나무가지위에 함께 앉은 모습은 장관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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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히 보면 앙상한 나뭇가지는 물론 덤불 속이나 마른 풀줄기에서도 각기 다른 새들이 부지런히 모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무리를 지어 매일 방문하는 참새 떼. 이들의 방문은 삭막한 겨울 풍경을 따뜻하게 바꾸어놓습니다.
 무리를 지어 매일 방문하는 참새 떼. 이들의 방문은 삭막한 겨울 풍경을 따뜻하게 바꾸어놓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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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의 추위를 이긴 새들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의 걱정은 먹이입니다. 며칠째 땅이 눈으로 덮인 속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을까? 유심히 그들의 동태를 살피면 모든 것이 눈으로 덮여 먹이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눈 위로 드러나 있는 바짝 마른 풀들조차 너무나 중요한 생존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른 풀잎 하나도 새들이 겨울을 나는데 얼마나 용이하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보면 사람이 욕심을 담아 인공으로 만든 것 외에 자연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마른 풀잎 하나도 새들이 겨울을 나는데 얼마나 용이하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보면 사람이 욕심을 담아 인공으로 만든 것 외에 자연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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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이 가벼운 새들은 가냘픈 마른 풀줄기에 앉아서도 거뜬히 풀씨들을 취할 수 있습니다. 달맞이꽃 줄기 정도는 무리지은 참새가 함께 앉아도 까딱없습니다.

이들이 풀씨를 취해도 모두를 한 번에 먹어치우지를 않습니다. 아직 먹을 것이 남았다해도 이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유효한 것이 발견되면 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거두어드리는 사람과는 다른 습성입니다.
 이들이 풀씨를 취해도 모두를 한 번에 먹어치우지를 않습니다. 아직 먹을 것이 남았다해도 이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유효한 것이 발견되면 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거두어드리는 사람과는 다른 습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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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깨끗하게 풀을 베어 정리했더라면 정원에서 취할 먹이가 없을 뻔했습니다. 정원의 풀을 그대로 방치했던 저의 게으름이 정원을 깨끗이 정리한 부지런한 정원사보다 오히려 생태의 순환에는 더 유익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렇듯 마련 없이 한 일도 쓰임이 있고 방치된 마른 풀줄기 하나도 헛된 것이 없음이 경이롭습니다. 저의 게으름이 자연의 공존에 이바지했다는 자만에 취해있을 때 한 무리의 참새떼들이 정원의 풀줄기를 희롱하다가 조팝나무 덤불 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어서 까치 한 마리가 내려앉았고 참새들은 이내 조팝나무 덤불을 떠났습니다. 까치는 자작나무 뒤에서 '쿵쿵' 땅이 울릴 만큼 부리로 눈밭의 무엇인가를 쪼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무엇인가를 쪼고 있는 까치
 나무 뒤에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무엇인가를 쪼고 있는 까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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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몰두하는 그 모습이 수상해서 마침내 까치가 떠나자 그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밭으로 갔습니다. 예상대로 까치는 참새 한 마리로 식사를 한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까치가 떠난 자리에는 참새 한 마리의 희생이 남았습니다.
 까치가 떠난 자리에는 참새 한 마리의 희생이 남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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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가지들을 오가며, 풀줄기를 그네 삼는 새의 무리가 햇살아래에 가득합니다. 봄날처럼 화석연료로 공기가 잘 데워진 창 안쪽에서 보는 정원은 이처럼 가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창밖의 겨울 정원은 추위와 먹이 부족, 천적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새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장(戰場)입니다.

눈 덮인 들판은 새들에게 큰 시련입니다.
 눈 덮인 들판은 새들에게 큰 시련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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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겨울 해가 졌습니다.

오두산뒤로 또 한 번의 해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오두산뒤로 또 한 번의 해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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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리 들판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기러기들도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한강 하류의 개활지를 찾아갑니다.

모티프원의 지붕 위를 지나고 있는 기러기 떼
 모티프원의 지붕 위를 지나고 있는 기러기 떼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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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이 숲 어디에선가 저의 왼손 주먹보다도 훨씬 작은 이 작은 항온동물(恒溫動物)은 오늘 밤도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린 체 체온의 저하와 대항할 또 다른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내 숲은 어둠이 내리고...
 이내 숲은 어둠이 내리고...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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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매 순간 삶의 숭엄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일까?"

작은 생명은 또다시 살아남아야하는 밤의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작은 생명은 또다시 살아남아야하는 밤의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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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새, #겨울나기,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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