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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책표지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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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훈아, 이번에 내가 책 쓰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나?"

2월 말이었다.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기자 활동을 막 끝내고 쉬고 있던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15기 인턴들에게는 '구 팀장님'이라는 명칭으로 더 익숙한 구영식 기자였다. 

구영식 기자는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는 주제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과 인터뷰집을 내기로 했는데, 인터뷰 정리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응했다.

3월 2일, 류제성 변호사와 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에 동석했다. 인터뷰이는 '천안함 허위 문자메시지 사건'이나 'G20 쥐그림 사건' 등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판결과 법 조항의 법리적 문제를 따지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자신의 신념을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구영식 기자와 변호사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타이핑하고, 다시 집에 와서 빠진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뷰를 보통 2시간 정도 했고, 그 내용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평균 8시간이 걸렸다. 5번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 총 40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인터뷰는 일주일에 한 번을 목표로 진행했지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연기될 때도 있었다. 작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마침내 5월 6일 마지막 녹취록을 정리했다. 기자의 작업은 그것으로 끝났다. 녹취록을 바탕으로 보충 인터뷰를 하고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구영식 기자의 몫이었고,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출판사의 일이었다. 

10월 20일, 드디어 책이 출간됐다. 기자가 한 작업의 결과물이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걸 보니 뿌듯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구영식 기자에게 받은 책을 조심스레 넘겼다. 그와 함께 한 지난 인터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골목길에서 눈 치우자고 플래카드 걸면 집회냐?"

인터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들에게 현행 법 조항 및 판결의 문제점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부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 조항이 대단히 애매하고도 포괄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어떤 판결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은 만큼 자의적 해석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법 조항은 엄격해야 한다. 누구든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조항 때문에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면 억울할 테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용산참사 대책위 기자회견 사건'을 변론한 류제성 변호사는 "집회의 정의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집시법에는 집회의 정의 규정이 없다. 그냥 판례상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모이면 집회라고 해석한다. 딱 그 기준만 놓고 보면 기자회견은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으로 모인 것이어서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신고를 안 했으니 해산명령의 대상이고, 해산명령에 불응하면 해산명령불응죄가 된다. 우리는 두 사람 이상이 골목길에서 눈 치우자고 플래카드를 걸면 그것도 집회냐, 그거 신고 안 했다고 해산시키고, 처벌할 거냐고 반문했다.(107~108p)

이처럼 애매하고도 포괄적인 규정은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진다. 어떠한 성격의 행사든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으로 모이면 집회가 될 수 있고, 집회인데 신고를 안 했으니 불법집회라는 논리로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규정은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에 주로 적용된다. 용산참사 이후 용산참사범대위가 주최하거나 참여하는 집회, 시위는 거의 다 금지됐다. 류제성 변호사는 MB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소리 높여 비판한다.

집시법이 기계적으로 다 적용된다면 모든 기자회견은 처벌돼야 하고, 웬만한 집회는 다 처벌되어야 하는데, 왜 유독 용산참사만 그러냐? 이것이 경찰의 독자적 판단이겠냐? 용산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다. 그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란 게 망루에 올라간 사람을 중벌에 처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피고인 방어권 등을 무시하고, 수사기록열람 등사조차도 금지하는 상태에서 중형에 처했다.(122~123p)

지난 9월 5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쌍용자동차범국대책위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 회원들이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23번째 죽음을 막고, 용산철거민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박근혜 대선후보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월 5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쌍용자동차범국대책위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 회원들이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23번째 죽음을 막고, 용산철거민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박근혜 대선후보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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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하지 못하고…"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이 MB정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MB정부의 공안적 성격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심화시켰음은 분명하다. 김준현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이 악화된 것은 아니지만, 법 적용이 확대됐다"고 말한다.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이 현 정부에서 더 악화된 것은 아니다. (중략)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에서 명예훼손죄 형량을 더 높이지도 않았다. 전기통신기본법도 이전부터 있던 법이고, 새롭게 법을 만들어 탄압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있는 법률의 적용폭을 확대했다. 공안적 통치라고도 볼 수 있겠다.(36p)

MB정부 아래서 심화된 공안적 통치, 표현의 자유 억압은 자기검열의 강화를 가져왔다. 한명옥 변호사가 맡은 '인터넷 대통령후보 비방글 사건'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 상류층 아주머니도 마찬가지다. '나는 진짜 평범한 아줌마다. 그런데 내가 뉴스를 보니까 시민으로서 답답해서 내 의견을 표현했는데 이게 죄가 되고 내가 재판까지 받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내가 후보자 비판도 못하느냐. 앞으로는 절대 뉴스도 안 볼 것이고 글도 안 쓸 것이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해서 처음으로 사회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는데 이렇게 잡아들이니까 이들이 정치에 다시 무관심해지고 아예 정치혐오증을 갖는다. 정치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다.(292p)

어느 아주머니가 사회적 현안에 정치적 의견을 내놓은 순간, 즉 '시민'이 된 순간 각종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책 제목이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인 이유도 여기 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검열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심지어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소리 높여 옹호한 담당 변호사조차 자기 검열에 빠져들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맡은 이재정 변호사는 어느 토론회에서 자신이 어느새 자기검열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조선일보>를 직접 호명하지 못하고, '유력 일간지'라 돌려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랐다가 토론회 도중에 그걸 느꼈다. 무의식 중에 자기검열을 하면서 발언하고 있었던 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웃음).(212p)

방금 전까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이야기하던 이재정 변호사가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 말을 한 후에도 또 <조선일보>를 '유력 일간지'라고 말하는 이재정 변호사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검열이 정말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11년 3월 9일 낮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당시 문성근 시민캠프 공동대표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1년 3월 9일 낮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당시 문성근 시민캠프 공동대표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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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것은 권력자들에게만 좋은 것"

한 가지 분명히 짚어둘 사실이 있다. 모두가 평등하게 표현의 자유를 누리거나 혹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받는 일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유린될 때조차 권력자의 목소리, 주류의 목소리는 결코 억압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가 바로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짓밟음으로써 '침묵의 질서'를 유지하려 든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됨으로써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비주류, 사회적 약자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아가 사회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박주민 변호사는 인터뷰 전반에 걸쳐 이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제 사회가 점점 양극화된다고 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사실 발언해야 할 필요성과 발언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그래야 사회가 바뀔 수 있고 못 사는 사람들이 살 수 있다. (중략)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 하면 가진 사람들과 힘 있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조용하고 좋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는 점점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야 한다.(179p~180p)

특히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예로 들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대목은 집중해서 읽기를 권한다. 다섯 번의 인터뷰 중 기자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대목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SF소설 <파운데이션>이 있다. SF소설 분야의 명작이다. 거기에 은하대제국이 나온다. 그 제국이 망해가는 단초를 주인공이 어떻게 파악하냐 하면 조용하다는 거였다. 이 조용하다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조용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 이 제국이 무너지겠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까 조용하다는 것은 권력자들한테만 좋은 거지, 전체 사회와 국민들, 그리고 미래를 봤을 때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많은 얘기들을 활발하게 하고,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다.(183p~184p)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꾸는 '공적 기억'이 되기를

기자가 받은 책에는 'Remember 2012'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자가 받은 책에는 'Remember 2012'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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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책장을 넘기면 자연스럽게 책 작업을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 것이다.

인터뷰를 들으며 때로는 암담한 현실에 한숨 짓고, 때로는 변호사들이 보여준 표현의 자유를 향한 신념에 감동받은 기억들, 카페에서 혼자 녹음파일을 들으며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던 시간, 카페 창문으로 쏟아지던 봄날의 햇살, 가끔 인터뷰가 끝나고 구영식 기자와 변호사들과 함께 한 술자리….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런 기억들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공교롭게도 구영식 기자에게 받은 책에는 'Remember 2012'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마 2012년을 기억하고 싶을 때면 가끔 이 책을 들여다보며 책장을 넘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기자에게 2012년의 '기억'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자의 '사적 기억'일 뿐이다.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당초 기획대로 MB정부 5년의 '공적 기억'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잠시만이라도 MB 정부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에 얽힌 사람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정부의 잘못된 재개발 정책과 무자비한 경찰 진압 때문에 빚어진 용산참사, '명박산성' 이후 시민들을 둘러싼 차벽, 국가기관의 대대적 공세에 떠밀려 공영방송 사장에서 해임된 정연주, G20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구속될 뻔한 박정수, 성상납을 강요받다 자살한 장자연과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은 현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우리 주변의 시민….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이들을 기억한다면, 나아가 독자들의 '공적 기억'이 18대 대선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작으나마 이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구영식 외 지음, 스토리플래너(2012)


태그:#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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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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