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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15년 전 보증금 500만 원에 월 25만 원짜리 창문도 없는 단칸셋방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은 달콤하기만 했습니다. 창문이 있는 방도 있었는데 월세가 5만 원이 더 나가 창이 없는 집을 계약하고 살았죠. 양쪽집 모두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았기에 우리 둘만의 노력으로 앞으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했습니다. 맞벌이를 하면서 악착같이 아끼며 저축해 전세자금 2500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얻은 우리의 두번째 공간은 창이 크게 달린 방2개짜리 전셋집이었습니다. ak

아이들을 낳고 키우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두번째 이사한 집은 지하에 3집, 2층에 4집, 3층엔 주인이 사는 다가구 주택이었습니다. 도배며 장판이 깨끗해 새로 할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습니다. 만삭이 되어 이삿짐을 정리하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집에서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남편과 함께 새로운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더 알뜰하게 모아 진짜 우리집을 사기 전까지 열심히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이삿짐을 대충 정리해 놓고 시계를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남편은 동네 입구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막달에 배가 많이 불러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국물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집을 나섰습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한 작은 물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부엌 바닥에서 "다다닥~" 소리를 내며 흩어져 버리는 작은 검은 물체에 우리 부부는 흠칫 놀랐습니다.

"뭐야? 자기도 봤어? 저것들이 뭐야?"
"글쎄. 무슨 벌레 같은데?"

남편은 그 말을 하며 싱크대 밑을 들여다 보다가 "아이쿠! 저것들이 뭐야? 자기야 플래시 좀 줘봐!"

바퀴벌레였습니다. 잠깐 집 비운 사이에 바퀴들이 새로 이사 들어온 우리에 인사를 하듯 모두들 나온 것이었습니다. 바로 약국으로 달려가 바퀴벌레약을 사다 뿌리고 바르고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면 여기저기 죽어나와 있는 바퀴벌레들이 어림잡아 50여 마리 정도였습니다. 기가 차고 어이없고 너무 끔찍해 다시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한 번 이사를 하면 들어 가는 비용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치약처럼 짜서 바르는 바퀴벌레약도 발라 보고 집을 비운 상태에서 약도 터트려 보고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어디서들 나타났는지  밤에 부엌에 나와 전등을 켜는 동시에 후다닥 사라지는 벌레들 때문에 너무 놀라 소스라치게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전문가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더니 한 집만 치워서는 소용이 없고 지하부터 옥상까지 모두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용도 엄청나더군요. 알고 보니 전에 살던 분들도 하다하다 안 돼서 도배에 장판까지 새로 한 것이었습니다. 쓸고 닦고 약을 뿌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벌레들과의 동거가 계속되었습니다. 얼마 뒤 아이를 낳은 후 한 달간의 몸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사이 남편이 연막탄을 5번이나 터트려 바퀴벌레가 거의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기를 벌레 있는 집에서 키워야 한다는 게 남편도 걱정이 많이 되었나 봅니다.

더구나 2년 계약을 하고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 아주머니께서 잘해 주셔서 중간에 이사를 간다고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김치를 새로 하면 친정엄마처럼 챙겨주시고 늦은 저녁 일하시고 돌아오시면서 간식거리도 여러번 챙겨다 주셨기에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죠. 깨끗하게 청소하고 벌레가 생겨날 기미를 주지 않으면 이상이 없겠지 했습니다.

남편의 노력으로 몇 달간 바퀴벌레를 구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놓고 있었죠. 이사와 첫 겨울을 보낸뒤  봄날 아침 옥상에 이불을 널고 집으로 들어 왔는데 가만히 누워서 자고 있는 아이 머리 맡으로 시커먼 벌레가 한 마리 기어 가고 있었습니다. 바퀴벌레였지요. 6개월된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고, 너무 놀라 아이를 들쳐 업고 또 온집안 대청소를 했습니다.

결국 바퀴벌레 때문에 아이 들쳐 업고 응급실로

바퀴벌레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봄이 되자 다시 바퀴벌레가 등장을 한겁니다. 며칠 뒤 저녁부터 아이가 징징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기저귀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도 아닌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아기가 자꾸 귀쪽을 만지면서 우는데 말도 못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혹시나 싶었지만 상상하기도 싫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새벽에 아이를 들쳐 업고 찾은 응급실에서 의사의 말에 기절을 하는 줄 알았죠.

아이 귓속에 벌레가 들어갔다는 겁니다. 너무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눈물만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아가의 귓속에 들어간 바퀴벌레가 고막을 건드리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1시간 뒤 무사히 죽어 있는 작은 바퀴벌레를 끄집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귀 안쪽에 염증이 생겨 며칠간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것도 미안하고 능력이 안 돼 깨끗한 집에서 키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컸습니다. 이 전셋집도 시세보다 저렴하게 들어온 것이고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다음날 저희 집에 음료수를 사들고 오셨습니다.

"애기 엄마, 어떻게 해. 애기는 괜찮아? 이거 미안해서 어째. 집이 오래 돼서 벌레들이 있는 것은 알았는데. 정말 미안하네."

주인 아주머니는 정말 친손주 걱정하듯이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5만 원이 든 봉투를 제 손에 건네주시면서 "얼마 안 되는데 병원비에 보태"라고 하셨습니다. 마다했지만 완강히 손에 쥐어주시고는 "우리 딸 같아서 그래. 집주인이 집관리 제대로 못한 탓도 있고, 미안도 하고 그래. 받아줘"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네도 남편분과 노력으로 신혼 때부터 열심히 사셨고 지금의 다세대 주택도 그 노력의 결실로 노후를 위해 대출을 끼고 구매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새댁네한테 주인집이지만 아직 대출금을 갚는 처지니 우리도 세입자나 마찬가지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부부 사는 모습에 당신들 신혼 때 아등바등 살던 모습이 많이 겹쳐져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 주인 아주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집주인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정말 집주인 잘 만났다고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주인 아주머니는 지하 두집도 돈벌어 새집 사서 이사 나갔으니 우리도 돈 많이 벌어 이사나가라는 이야기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했던 쓰레기 범칙금... 날 믿어준 주인 아주머니

얼마 뒤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쓰레기 무단배출 신고가 들어왔으니 확인하시고 범칙금 영수증 받아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집근처 전봇대 밑이 우리집을 포함해 옆에 있는 빌라 사람들 전체가 쓰레기 봉투를 내다놓는 장소였습니다. 저 또한 재활용과 쓰레기를 분리하여 내놓았는데 그 속에 들어 있는 아이 이름으로 된 약봉투가 문제였습니다. 아이치료약을 먹이고 종이만 따로 모아 내놓은 재활용 봉투를 누군가가 쏟아 놓고 사진을 찍어 신고를 한겁니다. 동사무소에서 범칙금 10만 원을 내라고 하더군요. 저는 억울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통하질 않았습니다. '10만 원이면 아이 분유가 몇 통인데, 내가 버렸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돌아와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주인 아주머니께 이야기를 했고, 아주머니는 함께 동사무소에 찾아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결국 신고했던 사람이 앞 빌라 사람들이었고,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범칙금을 안낼 수 있게 됐습니다. 아주머니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하시고는 내 딸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니 취소해 달라고, 도둑 고양이들이 봉지를 뜯어내고 쓰레기 흩트려 놓는 거 알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하시는데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후로도 주인 아주머니는 친엄마처럼 이것저것 신경써 주셨고, 다정한 이웃의 모습으로 몇 년간 그 곳에서 살다가 내집 장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빌라지만 처음 남편과 제 이름으로 된 집이었습니다. 빌라 계약을 마치고 주인 아주머니께 이야기를 했더니 계약기간이 완료되어도 집이 안 빠져서 전세금 일부를 나중에 줘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200만원을 떼이게 생긴 건가? 잘해줬던 이유가 설마? 의심이 잠시 생겼지요. 그렇게 이사를 하고 두 달 뒤 주인집 아주머니는 전세금 일부와 함께 화장지를 사들고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그때까지 계속 의심만 하고 있던 제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그때는 길다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짧은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마음 써주시고 편하게 대해주신 주인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그 사이 우리집에 풍랑이 일어 지금 또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네요. 하지만 그때처럼 아주머니와 같이 마음 따뜻한 주인집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아주머니 건강하시겠죠? 잘 지내시길 마음 간절히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공모글입니다.



태그:#나는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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