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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대학에 다니던 시절, 세입자 신분으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해 밥도 잘 나오고 방도 아파트처럼 깔끔해 내가 세입자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하숙방을 구하고 기숙사를 나오면서부터 세입자의 서러움과 세입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황당한 일이 시작됐다.

대학 2학년 재학 당시, 성적이 모자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학교 주변의 저렴한 하숙집을 알아봤다. 2007년 당시 하숙집 월세금은 40만 원 정도 됐다. 기숙사에 비해 부담이 커 친구와 함께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함께 살게 됐다.

우리가 입주한 하숙집의 구조는 이랬다. 1층은 남자 숙소, 2층은 여성 숙소. 숙소가 나누어져 있어 성별 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1층의 남자 하숙생이 갑자기 학기 중에 이사를 가게 돼 방 한 칸이 비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와 친구는 '그럼 새로운 남자 하숙생이 곧 들어오겠구나'고 생각했는데, 여자 하숙생이 들어오게 됐다.

사생활을 위한 하숙집은 없다... 오묘한 소리가 들리는 방

 소음이 안 되는 방... 나와내 친구는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소음이 안 되는 방... 나와내 친구는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 www.sx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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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주머니는 "학기 중에는 하숙생 구하기가 힘드니 부득이하게 여자 학생을 1층에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의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덕분에 나와 내 친구는 여학생과 한 라인에 살게 됐다. 처음에 나와 내 친구는 '주인아주머니 입장에서 노는 방이 생기면 수입이 주니까 손해를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편한 일은 여학생이 이사 오면서 차차 시작됐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의 1층은 집 구조가 복도식으로 돼 있었다. 각 방이 분리돼 있는 원룸 구조가 아니라 한 집에 방 세 칸이 있고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문을 열게 되면, 서로의 방이 공개돼 사생활이 노출될 때가 잦았다. 이전에는 남학생들만 1층에 있었기 때문에 상의를 벗고 화장실에 갈 때가 많았는데, 여학생과 한 라인에 살게 됐다는 것을 깜빡 잊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갑자기 복도에서 마주쳐 민망했던 순간도 있었다.

가장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것은 그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데려온 날 밤의 일. 나와 내 친구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건너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남녀의 거친 숨소리와 신음이 들리면서 우리의 수면을 방해했고, 기분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각 방마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사생활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 집이었으면 "차라리 다른 데 가라"고 당부했을 텐데, 세입자 신분으로는 그 어떤 불만도 옆집 여학생에게 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한 겨울, 주인아주머니는 저녁 시간대에 1~2시간 잠깐 보일러를 틀어주고 늦은 밤에는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았다. 나와 내 친구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저녁에 이불을 깔아 놓으면 온종일 따뜻하다"는 말로 엉렁뚱땅 넘어가버렸다. 추운 겨울밤, 입에서 김이 나올 때 이불을 돌돌 말아 잠을 청하던 악몽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전기장판을 구입했지만, 주인아주머니는 "전기장판 또한 공동 하숙 공간에서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전기장판의 따뜻함을 무력화하려는 시도. 전기장판을 트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세입자 인생'이란 말그대로 참담했다.

한겨울, 우리는 41만 원짜리 따뜻함을 누렸다

 41만 원짜리 따뜻함, 느껴본 적 있는가
 41만 원짜리 따뜻함, 느껴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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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지만, 하숙집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2년 동안 우리는 근근이 살았다. 하지만, 결국 하숙집을 박차고 나오게 된 것은 돈 때문이었다. 계약 기간 만료 후 주인아주머니는 "둘이 합쳐서 월세를 5만 원만 더 내면 재계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45만 원의 월세를 내고 살기엔 버거운 상황이었다.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친구는 밥도 안 먹는데 월세에 밥값(아침·저녁)까지 내고 있었다. 나 또한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기에 돈이 아까웠던 건 마찬가지. 결국 우리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의 자취방으로 이사했다.

내 친구와 나는 자취를 하면 하숙보다 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취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숙집과는 달리 공간이 완벽하게 독립돼 있는 원룸 구조라 다른 방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생활의 보장이란 이런 것이랄까. 하지만, 우리 앞에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공과금.

처음에는 '공과금이라고 해봐야 관리비 3만 원에 수도요금 1만 원, 전기요금 평균 1만 원, 가스비 1만 원 정도'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사했을 때가 봄이었으니 날씨도 풀리고 보일러 틀 일도 없어서 첫 달은 공과금이 비교적 적게 나왔다. 하지만 여름의 전기요금과 겨울의 가스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가 갈수록 무더운 여름이 기승을 부리며 우리는 에어컨을 틀게 됐는데, 여름에는 5~6만 원의 전기요금이 나왔다. 겨울도 예외는 없었다. 매달 10만 원에 육박하는 가스비는 우리의 숨통을 죄였다.

지난 2011년 겨울, 내가 사는 부산에 유례 없는 한파가 불어닥쳤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도심 곳곳의 난방시설이 고장 나고, 물이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 마침 자취방 보일러가 고장 나버렸다. 주인 아저씨에게 수리 요청을 서너 차례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수리하지 않았다. 당시 나와 내 친구 또한 돈 한 푼도 없는 소위 '개털'이었던 상황. 보일러 회사에 전화를 걸어 수리를 먼저 하고 나중에 수비리를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친구가 전열기와 난로를 들였다. 당시 우리는 전기요금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던 터라 난로를 트는 게 컴퓨터를 켜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전기요금, 많이 나와봐야 5~6만 원 정도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우리는 밤마다 난로를 틀어놓았다. 하지만, 그 달 나온 공과금 고지서의 액수를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기요금 41만 원.'

우리는 '이건 꿈일 거야'라는 생각에 서로의 볼을 당기고, '난리 블루스'를 췄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세입자의 세계... 내 집은 어디에?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생이 된 나. 20대 후반이 됐지만, 아직 세입자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넉넉하고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나 같은 신분에 속한 이들에게 집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지금은 지인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지만, 이렇게 보금자리 없이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

집 문제, 그리고 집을 운영할 수 있는 생활비 충당의 문제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주거의 문제'와 '생활의 문제'가 보장되지 않는 한 개인의 행복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안정적으로 살 권리'는 개인의 빈부 격차와 달리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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