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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30번째 이야기이다.
① 기표소에서 투표용지 인증샷 했다가 (울산지법 7. 4. 판결)
② 나꼼수에서 '나경원 인사압력설' 제기 공무원 무죄 (서울중앙지법 8. 16. 판결)
③ 동급생 학대로 목숨 끊은 학생, 누구 책임인가 (대구지법 8. 16. 판결)

[판결①] 투표소 인증샷은 무죄, 투표용지 인증샷은 유죄

방송인 김제동이 공개한 10.26 보궐선거 투표 인증샷
 방송인 김제동이 공개한 10.26 보궐선거 투표 인증샷
ⓒ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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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이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 투표소에서 트위터를 통해 인증샷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는 그저 투표 참여를 독려했을 뿐이었는데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해석이 발단이었다.

선관위는 선거 당일 투표 인증샷에 대해 "일반인의 투표참여 권유 행위는 가능하지만 투표 참여를 권유·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하도록 권유·유도하려는 것으로 의도되거나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은 안 된다"고 밝혔다. 애매모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도 작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기간에) 인터넷에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논란은 끝이 났다. 그 후 연예인들의 투표 인증샷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면 기표소 인증샷은 어떨까. 한마디로, 상당히 위험하다. 지난 4월 11일 생애 첫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게 된 김철수(가명, 22세)씨. 기쁜 마음으로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용지를 받아든 그는 기표소로 들어갔다. 김씨는 자신이 주권행사하는 감격스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찰칵' 하는 순간, 투표소를 관리하는 공무원이 다가왔다.

"선거법 위반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씨의 행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였던 것이다. 

제166조의2(투표지 등의 촬영행위 금지)
① 누구든지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투표관리관 또는 부재자투표관리관은 선거인이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한 경우 해당 선거인으로부터 그 촬영물을 회수하고 투표록에 그 사유를 기록한다.

대구지법은 지난달 4일 김씨에게 공직선거법위반죄를 적용, 벌금 30만 원 형을 선고했다. 그것도 김씨가 학생이고 초범인데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처'한 판결이었다. 만일 특정 후보자에게 기표를 한 후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렸다면 처벌 수위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부산지법 동부지원도 지난달 13일 4·11총선 당시 투표지를 촬영한 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친구들과 공유한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명심하자. 투표소 인증샷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투표지 인증샷은 선거법 위반이다.

[판결②] 허위사실공표죄 책임 면할 수 없지만... 의도가 없어서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진행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진행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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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나경원 후보에 대한 의혹들을 제기했다. 그중 하나는 나 후보의 서울 중구청 인사 개입 의혹이었다. 당시에는, 서울 중구 국회의원이었던 나 후보가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을 통해 구청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과 언론보도가 퍼져 있던 상황이었다.     

<나꼼수> 진행자인 김용민씨는 중구청 공무원인 A씨를 인터뷰하여 "중구청에 호남 출신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호남 출신 사무관들에게 중구청장이 전출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인사는 나경원 후보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 이 내용을 방송에 공개했다.

그러자 검찰은 A씨를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한마디로 "나경원 후보자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였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재판의 첫 번째 쟁점은 우선 나경원의 중구청 인사압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였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진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역의원인 나경원의 권고나 압력으로 중구청 인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소명자료가 아닌 소문을 제시하는 정도로는 허위사실공표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A씨가 제출한 소명자료가 소문에 불과하거나 구체성이 없으므로 허위라는 인식도 있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A씨에겐 무죄가 선고되었다. 왜일까. 법원은 "A씨가 자신의 발언내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가 ▲ 30 년간 재직하면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지위에 있지 않았던 점 ▲ 인터뷰 당시 팟캐스트의 개념이나 <나꼼수>를 알았다고 볼 수 없는 점 ▲ 자신의 육성이 방송에 그대로 재생되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 ▲ <나꼼수>에 인터뷰가 공개된 뒤 항의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중앙지법은 16일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단을 요약하자면, A씨의 발언(나경원 인사압력설)은 진실이라 볼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의 발언을 외부로 공표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의 항소로 2심에서 다시 법정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남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 공직후보자에 대해 검증 차원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자에게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시하라는 대법원 판례는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BBK 의혹' 제기로 구속된 정봉주의 사례가 단적인 예이다. 현행 판례는 마치 '구속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면 정치인 의혹을 제기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둘째, <나꼼수>가 A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발언이 그대로 공개된다는 점을 미리 밝히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현직 공무원을 상대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사안을 인터뷰하면서 당사자의 동의나 양해를 누락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중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꼼수>의 취재 방식이 언론윤리 관점에서 적절했는지 고민해볼 문제이다. 

[판결③] 동급생들 학대에 목숨 끊은 중학생, 누구 책임일까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룬 무언극(2012 대구호러축제)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룬 무언극(2012 대구호러축제)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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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철(가명, 1998년생)군은 2011년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동급생 B군, C군에게 인터넷 게임의 캐릭터 레벨을 올려주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세 사람의 관계는 친구에서 '주종관계'로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다. B군과 C군이 정군에게 게임레벨을 올리도록 강요하면서 폭행과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것은 폭행의 대부분이 학교보다는 정군의 집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 군의 부모가 낮에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집으로 찾아와서 정군을 폭행하고, 게임이나 숙제를 대신 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는 벌을 세우거나 물고문을 하거나 커터칼로 손목을 긋고, 라이터의 가스를 들이마시게 하는 가혹행위까지 일삼았다.

활달한 성격이던 정군은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고 2011년 4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정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정군의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가해학생 부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우선 "가까운 친구들에게 가해행위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살을 암시하는 등 불안해하다가 급기야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며 가해행위와 정군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렇다면 손해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우선 B군과 C군의 부모다. 법원은 "책임무능력자인 B군, C군을 감독할 의무가 있는 부모들이 정군의 부모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음으로 정군이 다니던 사립중학교와 교장, 담임교사도 책임을 진다. 법원은 "가해행위는 대부분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학교에서의 교육활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교사의 일반적인 보호, 감독의무가 미치는 범위 내의 생활관계에서 발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정군이 친구들에게 자살충동을 호소하였으므로 담임교사가 주의를 기울이고 탐문하였더라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장과 담임교사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 부모를 대신하여 가해학생들을 감독할 의무가 있으므로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군이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의 고통을 알려서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못한 점, 정군의 부모가 좀 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점 등을 들어 B군과 C군의 부모, 학교와 교장, 담임교사의 책임비율을 40%로 제한했다.

정군이라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을까. 불과 열다섯에 세상과 작별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정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군은 유서를 통해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저는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줄임)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저를 격려해주시던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태그:#투표인증샷, #나꼼수,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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