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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짜장볶음밥 등 새로운 메뉴가 등장했다.
▲ 새로 문을 연 컵밥노점 짜장면, 짜장볶음밥 등 새로운 메뉴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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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공무원 준비 수험생)의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도 공시생만큼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각종 학원과 공시생들로 번잡한 노량진 학원가. 3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수험생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이른바 '컵밥'이 생겨났다. 컵밥의 가격은 1800~3000원으로 주머니 가벼운 공시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컵밥 인근 식당 주인들이 동작구청에 '노점상의 식사류 판매금지'를 요구했다. 이에 구청은 컵밥 노점상에 '식사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 몇 차례 요리기구를 수거하는 등 단속에 나섰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그렇게 컵밥이 사라질 뻔한 지난 4월, 공교롭게도 대기업 편의점에서 컵밥을 출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 뒤로 프랜차이즈 컵밥 업체 '오컵스', '지지고' 등이 점포 수를 늘렸다. 전국적으로 컵밥이 늘어난 셈이다. 3개월 뒤, '컵밥의 발상지' 노량진은 어떤 모습일까?

왜 컵밥 가격은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랐나?

지난 5월 이후 컵밥 노점은 '해물컵밥' 등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
▲ 새로 생긴 '해물컵밥' 지난 5월 이후 컵밥 노점은 '해물컵밥' 등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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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기자는 노량진 거리에 갔다. 컵밥을 취급하는 노점상은 더 늘어났고, 노점상 주변에는 여전히 서서 컵밥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1호선 노량진역 건너편 맥도날드 주변 '컵밥거리'에는 총 9개의 컵밥 노점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컵밥 노점은 총 13개로 늘어났다. 늘어난 4곳은 지난 5월 이후 취급하던 분식류를 컵밥으로 '품목'을 바꾼 곳이다.

원래 케밥을 팔던 노점상은 케밥에 들어가는 닭고기를 이용해 '닭고기 컵밥'을 팔았다. 다른 케밥집은 돈가스 컵밥과 돈부리(일본식 덮밥) 컵밥으로 메뉴를 아예 바꿨다. 토스트를 팔던 노점상도 김치볶음 컵밥을 팔기 시작했다. 동작구청의 권고대로 컵밥에서 핫바로 품목을 바꾼 노점상도 다시 컵밥 노점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짜장볶음 컵밥을 판다.

그런데 이제는 컵밥을 사먹는 것도 만만치 않다. 재료 값 상승으로 몇몇 컵밥 노점들이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노련) 소속 컵밥 노점 7개 중 4곳은 2000원 하던 컵밥을 지난 7월 16일부터 2500원으로 올렸다.

민노련 노량진 지회 양용(37) 지역장은 "가격을 올릴 컵밥 노점은 올릴 수 있게 우리끼리(노점상끼리)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식당에서 저희들(컵밥 노점상)에게 (너무 싸다고) 불만이 있는 상황에서 500원이라도 올리면 우리 쪽 손님이 식당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겸사겸사 가격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오므라이스 컵밥 노점 주인 전방욱(56)씨도 "나름대로 컵밥 노점에서 양보한 것"이라며 "(오므라이스를) 2000원에 팔 때에 비하면 매출이 80% 수준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컵밥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던 김현민(29)씨는 "자주 먹는 컵밥인데 가격이 올라서 아쉽다"며 오른 가격에 부담감을 토로했다. 김씨는 "한달에 고시원비, 학원비, 생활비로 100만 원은 들어간다"며 "돈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 고시생들에게는 추가 부담해야 할 500원도 아쉽다.

"햄버거 3000원>컵밥 2500원>고시식당 1666원"

지난 4월 문을 연 3D 고시식당의 식사는 노량진에서 가장 저렴한 1800원짜리 컵밥보다도 저렴하다.
▲ '컵밥'보다 저렴한 고시식당 홍보전단지 지난 4월 문을 연 3D 고시식당의 식사는 노량진에서 가장 저렴한 1800원짜리 컵밥보다도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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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컵밥보다 싼 고시식당이 등장했다. 지난 4월 노량진에 고시식당을 개업한 천성규(33)씨는 지난 28일부터 고시생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 전단을 뿌렸다.

'햄버거 점심세트 3000원>노량진 컵밥 2500원>노량진 고시뷔페 월식 한끼 1666원.'

천씨의 고시식당은 월식이 15만 원이어서 한끼 식사 가격이 1666원이다(10매 쿠폰 이용시 한끼 식사 당 3000원). 천씨는 "월식 15만원은 이벤트성이고 평소에는 18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끼 식사 가격이 2000원이다. 월식을 선택할 경우 2500원 컵밥보다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컵밥은 가격을 올리는 데 반해 고시식당은 가격을 낮추는 추세다. 이로써 '노량진 컵밥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컵밥 노점과 인근식당이 갈등하는 와중에 고시식당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장사하는 데 컵밥이 신경 쓰이느냐?"는 질문에 천씨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며 "고시식당이 경쟁력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노점에서는 선 채로 땀 흘리며 식사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 고시식당은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 식사환경이 컵밥노점보다 좋았다. 게다가 뷔페식인 고시식당은 반찬 8가지에 매일 국이 바뀌는 등 메뉴도 다양했다. 라면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탄산음료를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다.

천씨는 "고시식당은 철저한 박리다매"라며 "월식 90끼니에 18만원이라 끼니 당 이윤이 몇십원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씨의 고시식당은 매 식사시간 200~300여 명을 수용한다. 어찌됐든 노량진 고시촌에서 고시식당은 확고히 자리를 잡은 셈이다. 

주로 공시생들과 학생들이 컵밥 노점에서 컵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 컵밥 노점에서의 저녁식사 주로 공시생들과 학생들이 컵밥 노점에서 컵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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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시식당처럼 규모로 승부할 수도 없고 컵밥 노점의 저렴함과 신속성으로 승부할 수도 없는 곳이 있다. 컵밥 노점 맞은편에 있는 A식당이 그렇다.

기자가 가게에 들어간 시간은 30일 오후 3시, 점심손님이 다 빠진 시간이었다. 주인 박상현 씨는 "예전엔 컵밥 노점이 있어도 점심에 10만 원은 벌었지만 요즘은 5만 원 벌기도 어렵다"며 3만6000원이 찍힌 컴퓨터 매출표를 보여줬다.

"지난 6월 초에 일하던 아주머니를 해고했다. (한숨을 내쉬며) 월세 내기도 벅차다."

박씨는 지난 3월부터 구청에 꾸준히 민원을 넣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중순부터는 구청에 전화를 거는 것도 그만뒀다. 그는 "3개월 동안 전화 걸었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동작구청 건설관리과의 박진성씨는 "5월 중순에 일괄점검을 해서 조리기구를 압수했지만 그 뒤로도 컵밥 노점들은 장사를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안다"며 "컵밥 노점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 구청이 함부로 나설 수가 없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공시생의 먹거리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컵밥 노점의 수는 늘어났고 고시식당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작은 식당은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이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12년도 국가직 9급 경쟁률은 72.1:1이고 합격자 평균연령은 29.3세다. 공무원의 꿈을 꾸고 노량진에 들어온 공시생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게다가 점점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노량진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이규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노량진, #컵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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