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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은 살인범이다. 이 말은 '이발사는 이발사다'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발사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지만, 그래서 일의 분야를 바꿀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살인범은 그렇지 못하다.

 

배우는 곧 죽어도 배우인 것과 같다. 배우에게는 은퇴한 이후에도 일상이 곧 연극이고 영화일 것이다. 화가들이 붓을 놓더라도 화가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살인범들의 표면적인 직업이 무엇이건 간에 이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살인의 본성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그 본성은 아무리 억누르더라도 완전히 없애 버리기가 힘들다.

 

오히려 억눌릴 수록 더욱 단단하게 웅크리게 된다. 그러다 기회가 왔을 때 또는 더 이상 본성을 숨길 수 없을 때 다시 '한방'을 터뜨리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은 바로 이런 악순환에 빠져버린 사람들이다.

 

전역 후에 소설을 쓰는 주인공

 

어쩌면 이런 시각은 편견에 사로잡힌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순간적인 분노에 못이겨서 우발적인 살인을 할 수도 있다. 그 이후에 죗값을 치르고 개과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한 번 살인자는 영원한 살인자다'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면 그거야말로 잘못된 태도 아닐까?

 

도로시 휴스의 1947년 작품 <고독한 곳에>(검은숲 펴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위와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중 한 명은 형사다. 살인범이 살인범이라면 형사는 형사다. 살인범에게 살인의 본성이 있다면 형사에게는 사냥개의 본능이 있다. 이 둘이 마주친다면 한 순간에 상황을 간파할지도 모른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라는 서로의 입장을.

 

<고독한 곳에>의 배경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의 미국이다. 주인공 딕스 스틸은 전쟁이 터졌을 때 육군 항공대로 입대했고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서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전쟁이 벌어진 몇 년이야말로 딕스가 난생 처음 행복을 맛본 시기였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전투기 조종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자 상황은 변했다. 딕스는 다시 보잘 것 없는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전쟁 중에는 뛰어난 파일럿이자 겁없는 군인이었지만 현재의 딕스는 삼촌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실업자에 불과하다.

 

딕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설을 쓰는 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다만 딕스는 혼자있을 때면 종종 우울과 행복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군복무를 했던 친구 브루브를 만나고 그가 형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브루브가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살인자가 머무는 곳

 

지루하던 딕스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 셈이다. 딕스도 살인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들은 잔인한 살인범을 보면 '미친 놈'이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살인범으로 변하는 데에는 정신병 이외의 다른 이유도 있는 법이다.

 

그 중 하나는 부적응이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많은 불만을 담아두고 있다. 그 불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향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손에 넣는 것을 왜 나는 가질 수 없을까. 그 불만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변하고 곧 살의로 발전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한 번 사람을 죽인 사람은 자신만의 '고독한 곳'에 갇히게 된다. 살인에 대한 죗값을 치렀건 아니건 간에 사람을 죽인 사람은 어쩌면 평생 자신을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고독한 곳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죽인 진정한 대가일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고독한 곳에> 도로시 휴스 지음 / 이은선 옮김. 검은숲 펴냄.


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스 지음, 이은선 옮김, 검은숲(2012)


태그:#고독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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