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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너희들이 최고~!!! ...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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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란 아이가 있다. 이번 라오스 여행학교에서 서희와 영준이와 함께 막내다. 중학교 1학년이고 열네 살. 그런데 이 아이에게 특별한 구석이 있다.

'아이'가 '아이'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점이다. 여행 초기 방콕에서부터 알아봤다. 카오산을 걷다보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서양 여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하는데, 수경이는 그때마다 쪼르르 달려가서는 아기를 한참 쓰다듬고 어르고는 한다.

그러면 그 아기의 엄마는 오히려 동양에서 온 볼이 발그레하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수경이가 귀여워 웃는다. 말하자면 수경이는 아기가 귀여워 웃고, 그 아기의 엄마는 아기를 어르는 동양 아이가 귀여워 웃고, 나는 그 상황이 어이없고 재미있어서 웃는 것이다.

수경이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아이를 좋아하는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역시 아주 특별하다. 열네 살 꼬마가 궂은일과 마주서면 언제나 언니오빠들보다 먼저 나서는 것은 기본이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도가 예사롭지가 않다.

전날 배를 타고 메콩 강을 달릴 때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이 쌀쌀해서 스스로도 추웠을 텐데, 감기 때문에 고생하던 아내를 위해 자신의 담요를 덮어주던 아이다. 이 녀석에게는 특별히 타고난 '공감능력' 같은 것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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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콩강과 함께 흘러가는 슬로우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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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강사람들
▲ 메콩강 풍경 한없이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강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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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아침의 일이다. 그러니까 배를 타고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1박2일의 일정 중에 둘째 날 아침이었다. 우리들은 강마을 팍뱅에서 하룻밤 지친 몸을 쉬었다. 아내와 내가 강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아침으로 쌀국수 '포'를 먹고 도시락으로 볶음밥 '카오 판'을 포장해 선착장으로 나갔을 때였다. 전날과는 달리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슬로우 보트의 좌석을 채운 상태였고, 수경이네 모둠 아이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이모, 삼촌, 큰일 났어요. 자리 다 빼앗겼어요!" 

아차, 싶었다. 전날 3시간도 더 기다렸던 것을 감안해, 세 개 모둠 중 한 모둠만 일찍 나와 좌석을 잡아두기로 한 것인데, 오늘은 30분도 더 이르게 승객들이 들어찬 것이다. 그래서 맡아두었던 자리를 지키느라 수경이를 비롯한 꼬맹이들이 다른 여행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고, 허둥지둥 여기저기 다른 모둠이 묵은 게스트하우스를 쫓아 다니며 빨리 나오라고 뛰어다녔건만, 결국 몇 자리는 지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찔했다. 전날 비오고 바람 부는 날씨에 배를 6시간이나 타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잠자는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주려고 '가위바위보'로 한 모둠만 먼저 나오자고 한 것인데,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때 아이를 좋아하는 아이, 수경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여행자들의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다
▲ 슬로우보트 여행자들의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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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이건… 우리들만 생각한 행동 같아요."
"……"

그랬다.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부끄럽고, 타국의 여행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힘들어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때 수경이의 언니인 희경이가 선착장으로 막 뛰어내려왔다.  

"삼촌, 어떡해요? 성호하고 승현이가 없어졌어요. 윤미하고 나랑 먼저 가 있겠다고 빨리 오라고 했는데, 안 와서 가봤더니, '짜식'들이 게스트하우스에도 없어요. 삼촌, 어떡해요? 이 자식들 어디 간 걸까요, 삼촌?"

이제 아이들은 패닉 상태다. 맡아놓은 자리를 지키느라 마음고생은 죽자고 했는데, 자리는 두 개나 모자라고, 배는 시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떠나겠다고 부르릉거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두 남자 녀석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아내와 나는 다음 배로 옮겨 탔다. 기다렸다가 두 녀석과 함께 타고 갈 요량이었다. 첫 배로 출발하는 아이들에겐 먼저 가서 루앙프라방 선착장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두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태운 배가 막 출발하는 순간. 성호와 승현이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들은 둘만 빼고 떠나고 있는 배를 보고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어…어…" 말문이 막힌 채로 자신들 눈앞에서 점점 땅과 멀어지며 강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배를 보면서 '얼음땡' 놀이를 하는 꼬마들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쿡쿡.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날 두 녀석의 그 막막한 눈빛이라니! 지금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뇌 속의 인지기관이 전혀 분석하지도 종합하지도 못한 채 그만 넋을 잃은 채 돌덩이처럼 서 있었다. 

반면에 배에 먼저 탄 아이들은 당연히도 이 상황이 재밌어 죽을 지경이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얄궂은 장난기를 발동시킨다. 당황해서 망부석이 되어버린 두 녀석을 향해 마구 손을 흔들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성호야, 안녕! 잘 있어~!"
"승현아, 힘~내!"

한 폭의 수채화가 강물따라 흐른다..
▲ 메콩강 풍경 한 폭의 수채화가 강물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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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음 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부부를 발견하지 못한 두 녀석.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다음은 열다섯 살 승현이의 일기다.

"윤미 누나는 밤에 씻으시는 타입이고 희경이 누나는 아침에 씻으시는 타입이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뜬금없는 얘기를 하냐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나와 성호 형은 둘 다 아침에 씻는 타입인데 항상 형이 먼저 씻으시는데 너무 오래 씻으셔서 문제가 된다. 그런데 오늘만도 아니고 항상 늦게 씻으셔서 좀 오늘 일에 지장이 생긴 것이다. (중략) 누나들은 늦다고 약속 장소를 말해 주시고 먼저 가셨는데 그게 참… 하~ 약속 장소를 제대로 못 들어서 다 챙기고 일단 다짜고짜 선착장에 가보았지만, 아! 그렇게까지 밑으로 가보진 않았는데, 사람이 없어 당황한 나랑 성호 형은 우리 숙소 기준으로 위쪽으로 올라 가야하는 쪽의 상훈이 형 숙소로 가보았지만 당연 없었고, 혹시나 해서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 가보니 삼촌과 이모만 빼고-그 당시에는 당연 다 타서 떠나는 줄 알았지만- 다 배에 타서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우린, 아니 나만 그랬나, 당황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첫 낙오자들이 생긴 셈이다. 아내와 나, 그리고 이들 두 명의 낙오자를 태운 배는 1시간 후에 출발했다. 이제 아이들로부터 떨어진 두 아이는 심심해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번에는 열일곱 살 성호의 일기를 들여다보자.

"보트를 타는 내내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승현이와 '카드게임→mp3→잠→카드게임→mp3→잠'을 무한반복을 했다.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애들을 보는데 조금 미안했다. 나 때문에 다들 기다리는 것 같아서…."

말하자면, 두 녀석들에게는 8시간 동안 무한반복의 심심함이 그날 늦게 나온 것에 대한 '벌'이었던 셈이다. 반면 우리부부는 그날 아침 아이들에게 다른 여행자들의 눈총을 받게 한 죄로 또 다른 벌을 받아야했으니, 이는 전날에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엉망진창의 여행문화로 우리들을 힘들게 했던 그 영국 청년들이 우리 배에 또 다시 함께 타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녀석들은 자기네들이 무슨 사극의 주인공이나 되는 듯 예정시간을 넘겨 느지막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숫자가 바퀴벌레마냥 밤사이 두 배나 늘어났다. 열 명도 넘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쩌자고 자기들 몫의 의자들을 전부 빼내어 배의 갑판천정 위로 올리더니, 배 바닥에 줄지어 드러누웠다. 아마도 밤새 술을 퍼마신 모양이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자라, 응. 조용히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자라~잉.'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면 좋을걸..
▲ 여행자들 풍경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면 좋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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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놈들은 겨우 한 시간 정도를 자는 것 같더니 한두 명씩 일어나서는 곧바로 다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펴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늘어난 숫자만큼 담배연기의 양도 '빠꼼빠꼼' 곱절로 생산해대며 아내와 나를 비롯한 선량한 승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세상일이란 것이 참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전통 영국신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화시대의 기본은 가야할 것 아닌가.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그래 놈들 패거리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하는 거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생각하는 순간, 평소에는 별로 무겁지도 않던 내 엉덩이가 그날따라 근엄한 중력의 무게로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대신,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덩치가 크고 얼굴에 구레나룻이 시커먼 미국에서 온 중년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걸어 나가더니 친절하면서도 매우 단호한 목소리로 놈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익스큐즈 미. 거, 당신들만 타고 가는 배도 아닌데, 음악 볼륨 좀 낮추면 좋겠는데요."

그랬더니, 놈들 중에서 체크모양의 영국신사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눈썹이 숯검정을 바른 것처럼 짙고 그 왼쪽 눈썹 끝에 피어싱을 멋지게 한 녀석이 입을 비틀어 비아냥거리듯이 대답했다.  

"네?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 음악? 좋아요!"  

하지만 대답과는 반대로 음악 볼륨을 더 높여버린다. 용감했던 우리의 미국 아저씨 한 말을 잃고 돌아서고, 나는 덩달아 한숨을 쉰다. 자칫 잘못하다간 봉변을 당할 분위기다. 저런 인간들은 아예 여행을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겠지? 오늘 하루 받아야할 벌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강은 흐르고 태양이 멈추지 않듯이 고맙게도 시간도 멈추지 않았고 배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 그렇게 뽀얀 담배연기와 함께 하루의 해가 저물어갈 즈음 우리들 낙오자 그룹은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먼저 출발했던 아이들이 선착장 어귀에 배낭을 부려놓고 패잔병들처럼 앉아 있다가, 늦게 도착한 우리 네 명을 발견하고는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모! 삼촌! 왜 이제 와요!"
"성호 오빠! 승현아!"

아이들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있다. 한국에서 누군가 TV 리모컨을 작동하다 이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면 무슨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으로 착각할 지도 모르겠다. 고작 하루의 뱃길을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조금 다른 시간대에 존재했었다고 이렇게까지 애틋해질 수도 있을까.

그건 아마도 금방 따라올 것 같은 배가 한 시간도 더 늦게 도착했으니, 그동안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혹시 만나기로 한 장소를 잘못 알고 있거나 길이 어긋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스멀스멀 피어났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대학생과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숙소를 물색하러 가고 없었다. 그래서 꼬마들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의 힘, 밥심..
▲ 빅트리카페, 루앙프라방의 한국식당 여행의 힘,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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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여행 떠나와 처음으로 모두 같이 한국음식을 먹으러 갔다. 강가에 크고 오래된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있어 그 이름이 'Big Tree Cafe'인, 한국인 여사장과 네덜란드인 남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사진가인 남편이 찍은, 숨이 막히도록 생생한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들이 식당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그이의 작품들로 만든 엽서들이 1달러라는 글씨판과 함께 탁자에 놓여 있고, 라오스 주변국의 여행정보를 담은 가이드북과 여러 여행 에세이집들이 책장에서 나그네들을 향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아내와 내가 다녀갔을 때와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여사장이 우리부부에게 알은체를 하고, 여행학교 친구들을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번 여행학교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 여러 명의 청소년들과 여행하면 좋은 점이 있다.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우리 팀에게 본능적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워 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봐서 가격을 깎아주기도 하고 실수를 그냥 넘겨주기도 한다.

특히 타국에서 만나게 된 한국 분들의 마음은 더 특별하다. 여기 'Big Tree Cafe'의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밥이며 반찬이며 계속 퍼다 주시면서도 조금 더 뭘 줄 게 없을까, 궁리하시는 눈치가 역력하다. 난, 그 마음들을 알 것도 같은데, 우리 여행학교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알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녁 어스름 풍경
▲ 빅트리카페에서 바라본 메콩강 저녁 어스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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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완전' '대박' 신이 났다.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는 둥, 여행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둥,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둥, 곧 죽을 것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던 녀석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냥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감동의 도가니라고 표현해야 할 듯싶다. 한국음식은 낙오하고 힘들고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이들에게 특효약인 셈이다. 그들의 일기장에서 감동의 흔적들을 낚아보자.

"'빅트리카페'였는데 한국분이 하시는 거였다. 우리 빼고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 이렇게 정겨울 수가. 허허허… 우린 백년(!) 만에 된장찌개와 오리고기와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이런 감동ㅠㅠ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인 듯." - 김도솔(16살)

"한국인 주인아주머니의 후한 인심, 리필되는 밥, 공짜인 물, 휘황찬란한 사이드 디쉬까지… 향수병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 고상훈(20살) 

"된장찌개, 흰 쌀밥, 김치, 제육볶음… 너무 행복하고 너무 오랜만에 맛보는 맛이라서 세 그릇을 뚝딱 비웠다." - 남서희(14살) 

"정말 정말 맛있었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밥을 2번이나…… ㅋㅋㅋㅋ. 아무튼 한국음식을 먹으니까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 양나운(15살)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은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라오스여행학교, #슬로우보트, #1박2일, #루앙프라방, #메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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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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