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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는 친구J가 있다. 지난 겨울 김장 200포기를 담았다고 자랑을 하길래 "거 자랑만 말고 잘 익은 김치 한포기만 넘겨봐!" 하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그 친구가 오늘 손수 김치를 한바가지 볶아서 건네주었다. "웬 김치볶음?"
내가 묻자 그녀는 "김치가 너무 시어져서 그냥 참치넣고 좀 볶았어. 맛 좀 보라구" 하며 내 손에 그릇을 쥐어주었다.

비가 내리려는지... 몸이 찌푸둥하고 기압은 아래로 쳐지는 저녁!

밥을 솥에 올리고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를 꺼냈다. 윤기가 반질반질나는 김치볶음에는 솔솔 뿌려놓은 깨들이 내 저녁 입맛을 자극한다. 흰밥에 김을 싸서 김치를 한 입 얹어 먹으니 그맛이 일품이었다. 매콤하기도 하고 개운한 김치맛이 입맛 없던 저녁식사를 너무 맛있게 맞이하게 한다.

내겐 김치볶음에 얽힌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5학년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고 우리나라 전체가 아직 개발이 덜 되어 가난했던 시절, 학교에서 제일 인기 있는 시간은 단연코 점심시간이었다.

도시였지만 그다지 맛난 먹거리가 없던 시절, 우리는 교실에 피워진 난로위에 양은 도시락을 올리고 데워서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과 반찬을 나눠먹곤 했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반찬은 고기나 소시지 볶음 그리고 장조림이었지만 나는 내 짝쿵이 해오는 김치볶음이 그 어느 반찬보다 맛있었다.

엄마가 시장에서 홀로 장사를 해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었던 내 짝쿵 선진이는 새벽에 나가는 엄마 때문에 늘 자기가 직접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오곤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반찬을 해오던 내 짝쿵의 김치볶음은 김치를 잘게 썰어 볶은 것이 아니라 배추 김치를 썬 모양 그대로 기름에 볶아서 초등학생인 우리가 먹기에는 좀 컸지만 기름과 적당한 온도가 어루러져 아주 맛이 좋았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 짝쿵의 고백 때문이었다. 같은 반찬을 먹었던 선진이는 내 반찬인 오뎅이 좋았던지 서로 바꿔먹기도 자주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진이가 내게 말했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도시락 안 싸오는 날인데 너네엄마한테 오뎅볶음 좀 얻어오면 안돼?

친구의 마음을 읽었던 나는 그날 저녁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는 주말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 오뎅볶음을 많이 싸서 가방에 넣어주셨다. 그날 이후 우리가 단짝이 된 것은 두말할 나이도 없다. 6학년이 되어 선진이는 시골로 전학을 갔고 나는 김치볶음을 먹을 때 마다 그 아이 생각이 난다.

요새는 더 맛있는 반찬들이 얼마든지 많지만 내 추억 속의 최고의 반찬은 여전히 김치볶음이다. 김치볶음 한 접시를 놓고 고사리 같은 손을 연상하며 행복한 과거를 떠올려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유치한 감상일까? 가난했지만 마음은 부유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동경일까?

참치를 넣어 기름을 두르고 맛있게 볶아진 김치볶음
▲ 김치볶음 참치를 넣어 기름을 두르고 맛있게 볶아진 김치볶음
ⓒ 송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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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치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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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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