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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08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3%에 이르러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해, 이른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80을 넘기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국민 5인당 한 명이 노인인 셈인데, 두 세대의 노인이 한 집안에 동거하는 일이 허다해 질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국가에서 손을 놓고 있다고 가정하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미래는 끔찍할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의 노년 의식은 수면 상태이고, 정부의 노년 정책은 걸음마 단계다. 이제 겨우 교통비를 지원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면 심한 표현일까? 다행인 점은 그래도 예술가들이 근래에 노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녀의 사랑을 엮어가는 세 사람
▲ 포스터사진 노녀의 사랑을 엮어가는 세 사람
ⓒ 드라마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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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광주 연극무대에도 오랜만에 노년극이 무대에 올랐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세 친구의 순정과 우정을 그린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오래전 애>가 바로 그것.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 가을에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에서 선보인 작품을 다시 선보였다. 연극 <오래전 애>는 지난해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광주 궁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됐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운애, 다혜, 자룡이 가끔 만나 회포를 푼다.
▲ 우린 초등학교 동창생 초등학교 동창생인 운애, 다혜, 자룡이 가끔 만나 회포를 푼다.
ⓒ 드라마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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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극작가 이만희를 왜 '탁월한 언어의 조련사'라고 일컫는지 확인시켜 줬다. 노인을 등장시켜 원숙한 삶의 향기를 언어로 발산했는데, 그야말로 '말들의 잔칫상'을 받아든 느낌이었다. 상황에 걸맞은 속담과 유머러스한 대사로 매 순간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덕분에 1시간 30분의 상연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특히, 노년의 삶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그렸기에 중년 이상 관객의 공감을 이끈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은 '엇갈린 운명'이 빚어낸 노년의 사랑을 주제로 삼았다. 완애와 다혜는 초등학교 때 부터 서로 사모해 왔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계속 엇갈리면서 인연을 맺지못한 동창 사이다. 백발이 성성해져서야 기구한 운명을 알고 애타하는 줄거리다. 작품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감어린 캐릭터 덕에 관객을 사로잡지만, 이 커플이 조급하게 화해하면서 막을 내린 탓에 개연성에 흠집을 냈다. 그렇다보니 극장문을 나서고 여운이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주의 연기의 대가 윤희철
▲ 자룡 사실주의 연기의 대가 윤희철
ⓒ 드라마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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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섣부른 결말은 아쉬웠지만 자룡역을 연기한 윤희철 덕에 즐거운 관극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자룡은 성실한 친구 완애를 괴롭히는 도박꾼이지만, 윤희철의 개성적인 연기로 거듭 태어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능청맞은 코믹 연기로 관객을 즐겁게 하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윤희철식 중용(中庸) 연기는 극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완애역의 이현기도 40대 후반 나이임에도 윤희철과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노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다만, 극의 결말에 다혜와 화해하고 나서 완애 캐릭터의 일관성이 흐트러진 점은 아쉬웠다.

늦깍이 배우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강인영
▲ 다혜 늦깍이 배우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강인영
ⓒ 드라마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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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의 사랑을 받는 여인 다혜를 연기한 강인영은 이 연극에서 가장 빛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배우 강인영이 아니라 이웃집 여성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40대에 연극을 시작한 늦깍이지만 장래가 기대되는 배우다.

연극은 신구 배우의 조화로 관객을 몰입시키지만, 가끔 매끄럽지 못한 장면 때문에 감정이입이 차단되기도 했다. 소나기 음향이 갑자기 크게 들려 정적인 작품 분위기를 깨뜨리거나, 암전 중에 무대 뒤로 플래시 불빛이 새어 나와 불필요하게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점은 옥의 티였다.

도박꾼 자룡은 다혜를 짝사랑하지만 정작 다혜의 마음은 완애쪽으로 기운다.
▲ 자룡과 다혜 도박꾼 자룡은 다혜를 짝사랑하지만 정작 다혜의 마음은 완애쪽으로 기운다.
ⓒ 드라마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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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인만 등장하는 연극인데 노년의 실존이 피상적으로 다뤄진 점도 아쉬웠다. 노년이 겪는 소외라든지 외로움을 지금보다 더 부각했더라면 세 인물에 더욱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노인만 등장하지만, 사랑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노년의 삶이 배경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는 마치 노년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우리의 초상을 보는 듯해 극장문을 나서면서 씁쓸했다. 작가 이만희가 풀어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태그:#오래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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