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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광주평화연극제'가 "5,18 무대에서 길을 물었다"라는 타이틀로 5월7일부터 일주일 간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올해는 국내 극단이 참여하는 주제 공연과 해외초청작 공연으로 꾸며졌는데, 마지막날에 공연한 일본 극단 '천년왕국'의 <위조자>를 감상했다.

 

 

극장에 들어가 무대를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일본 전통 색조의 가림막 위에 역시 일본 전통회화와 도자기를 설치한 '천년왕국'의 <위조자> 무대 세트는 화려하면서 이국적이었기에 단숨에 필자를 매료시킨 것이다. 극단은 무대세트와 조명기구를 일본에서 직접 가져왔는데 두 개의 콘테이너에 실어왔기에 행사 주최측을 당혹케했다고 한다.

 

이 가림막은 극이 진행되면서 쉼없이 회전하며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는데, 네 개로 분할되기도 하고, 한 데 모아 뒷 배경막으로도 쓰였다. 특히, 이 가림막으로 주인공을 감싸놓은 채 강렬한 조명을 집중적으로 투사함으로써 주인공의 고뇌를 부각한 점은 인상 깊었다. 2009년 '삿포로 무대예술상 연극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환타스틱한 미장셴을 보여 줬다.

 

 

연극 <위조자>는 메이지 유신 때 서양문물의 급격한 유입으로 일본 전통의 가치관이 허물어져가는 과정에서 화가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400년 전통의 회화 전통을 끝까지 지키려는 형과 천재적인 감각으로 위작을 그리는 동생이 갈등을 겪다가, 모친과 형의 강권 때문에 마지못해 가문의 회화전통을 이으려던 동생이 형이 죽은 후에 마음을 고쳐먹고 위작 작가로 거듭난다는 얘기다.

 

결말의 반전이 필자의 예상을 깬 것이기에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 이런 주인공의 행동은 오늘날 예술의 위기상황에서 허덕이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돌아보게 하였다.

 

작품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복원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원작과 똑같은 조건 속에서 똑같은 과정을 거쳐 똑같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고 한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많은 명작이 복원가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란 점을 감안하면, 예술혼을 불사른 위작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고 바둥대는 우리네 구차한 삶을 돌아보게하는 작품이었다.

 

한편, 배우들은 인물 성격에 어울리는 의상을 입었는데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레 보여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맨발이나 버선발로 온몸을 던져 연기하기에 작품을 역동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배우 간 신체 접촉을 하거나, 큰 동작으로 심리를 드러냄으로써 정서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낸 점이 이채로웠다.

 

하지만 130년 전 일본을 배경으로 하면서, 예술가를 다룬 이야기인지라 줄거리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자막을 함께 봐야했고, 자막의 한글도 오자가 많아 더욱 작품 이해가 어려웠다. 외국작품을 공연할 경우 자막으로 쓰인 한글은 특히 정서법에 신경 써야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공연이었다.

 

이런 아쉬움도 있지만 <위조자>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매혹적인 무대, 기능적인 공간 창출, 배우들의 열연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은 명품 연극이었다. 극단 '천년왕국'이 소재한 지역의 '북해도문화재단'과 이번 행사를 공동 주관한 '광주문화재단'이 문화교류협정을 맺었다니 앞으로 행보가 기대된다. 초청공연도 좋지만 두 재단이 공동의 관심사로 함께 만든 무대도 의의 있으리라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트가이드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11광주평화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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