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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문
▲ 창덕궁 진선문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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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령이 내려졌다. 12세에서 16세까지의 처녀는 혼인을 금지한다는 령(令)이다. 더불어 봉단령(捧單令)이 떨어졌다. 혼기에 있는 처자가 있는 사대부는 자진 신고하라는 것이다. 왕자와 공주 혼례에는 당상관 이상에게만 적용되었지만 이번에는 당하관까지 내려졌다. 나라의 국모를 뽑는 혼례이니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 엄중한 령(令)에서 자유로운 집안이 있다. 전주 이씨다.

금혼령은 팔도에 내려졌지만 주 목표 대상은 한성과 평양이다. 한성은 뽑아 들일 가문이 많았고 평양은 미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성에 방(榜)이 나붙었다. 종루 네거리에도 붙었고 숭례문 밖에도 붙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또 누굴 죽이나?' 싶어 오가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민심이 술렁거렸다. 경축의 눈빛이 아니라 경계의 눈빛이었다.

"누가 혼인하다는 거야?"
"누긴 누구야, 임금님이지."
"그럼 국혼이네"
"그야 국혼 중에서도 제일 으뜸가는 가례지"
"가례하고 길례는 뭐가 다르남?"
"가례는 가례고 길례는 길례지."

벙거지를 쓴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 딴 대답이 어디 있어. 가례는 임금이나 왕세자가 장가가는 것이고 길례는 왕자나 공주가 혼례를 올리는 것이지."

50죽 초립 사나이가 끼어들었다.

"급이 다르군?"

벙거지가 뒷덜미를 긁으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아직 국상중인데?"
"숙부가 가라면 가야지 별 수 있나."
"복을 입은 상태에서 장가드는 것은 쌍것들이나 하는 짓이고 인륜에 벗어나잖아."
"멀쩡한 정승 판서도 목을 따는 시상에 무슨 인륜씩이나?"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그딴 소리 함부로 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나네."

벙거지 목소리에 모두들 움츠러들었다.

"그나저나 먼저 보낸 사람들은 맘 편하겠다."
"뭘?"
"이런 날이 올까봐 서둘러서 먼저 보냈잖아."
"왕실에 딸을 넣으면 가문의 영광인데 왜 피해?"
"이 사람은 저잣거리에 흘러다니는 아이들 노래 소리도 못 들어봤나?"
"그래서 도성에 하루건너 잔치가 벌어졌군."
"연희패들 좋은 시절이었지…"

팔도에 내려진 '금혼령'... 예조에 접수된 7개의 사주단자

단자. 사가에서 사용하던 사성단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단자 단자. 사가에서 사용하던 사성단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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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단령의 대상이 되는 정승 판서를 비롯한 조정 관료들은 전전긍긍했다. 왕실과 혼인의 연을 맺어 가문의 영광을 빛낼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닥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둘러 보낸 집안이 부러웠다. 무릎을 치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거역하면 어떤 불똥이 떨어질지 모른다. 규수가 있는 집안은 단자를 작성하여 예조에 보냈다.

수양이 예조판서를 대군청으로 불렀다. 실무 담당부서의 수장이다. 태종11년, 예문관 검열로 출사한 김조는 조정에서 깐깐한 예통(禮通)으로 정평 있는 대신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 김작을 아버지처럼 모시는 것이 수양의 눈에 들어 예조판서에 발탁된 인물이다.

"나에게도 슬픔이 있는데 뭔지 궁금하지 않소?"

뒷짐을 지고 마루바닥을 거닐던 수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뜻밖이었다. 부족할 것 없는 왕실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데로 하며 살아왔던 수양에게도 슬픔이 있었다는 게 의외였다.

"누구에게도 뻥긋하지 않았던 내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외조부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 나의 슬픔이오."

그랬다. 수양의 외할아버지 심온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길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수양 나이 한 살 때였다. 그러니 얼굴을 알 턱이 없다. 당시 조정에 있었기에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이다. 허나 임금의 장인 심온과 그의 동생 심정이 역모사건에 엮여있어 그 누구도 발설하지 못했던 내용을 제3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수양으로부터 직접 듣게 되니 새삼스러웠다.

"참고하기 바라오."
"명심하겠습니다."

거한 집안은 배제하라는 암묵적인 지침이다. 외척발호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복심이었다. 할아버지에 의해 외갓집이 박살나고 시아버지에 의해 친정아버지가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의 쓰라린 심정이 수양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단자가 예조에 접수되기 시작했다. 사가에서는 혼인이 정해졌을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사주단자를 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왕실에서는 후보자 집안에서 예조에 접수했다. 처자 본인의 생년월시는 물론 부모형제 삼촌과 사촌의 관직과 외조부의 과거까지 기록된 문서다. 일종의 서류심사를 위한 신상명세서다.

하나, 둘, 다섯을 넘어가던 후보자가 일곱에서 멈췄다. 예조는 난감했다. 30명은 넘어야 간택을 시행하는데 일곱 명 밖에 되지 않았으니 덜어내기는 커녕 미달이었다. 보고를 받은 수양은 있는 그대로 진행하라 명했다. 초간택이 창덕궁에서 거행되었다.

금천교
▲ 창덕궁 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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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의 통지에 따라 처자들이 금호문밖에 도착했다. 궁 안은 임금과 왕비를 제외하고는 가마와 승마가 금지다. 여기까지는 가마를 타고 왔지만 이제부터는 걸어야 한다. 처녀들이 봉례랑의 안내에 따라 금천교를 건넜다. 태종이 청계천에 광통교를 짓고 그 다음해에 지은 도성에서 몇 안 되는 돌다리다.

금천교는 북쪽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끌어들여 만든 다리다. 궁궐을 드나드는 임금과 신하는 마음을 깨끗이 씼고(洗心) 백성에 봉사하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반원형 구조물 2개에 돌을 얹어 만든 홍예가 아름다운 다리다.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했다. 그 위에 조각한 나티상은 잡귀는 범접하지 말라는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난생처음 대궐에 들어온 처자들은 긴장했다. 오금이 저리고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우선 자신들이 살던 집보다도 훨씬 큰 전각들이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오가는 궁녀들과 무수리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구중궁궐 대궐은 뭇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이 세상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직접 두 눈에 들어온 대궐은 별천지 같았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문중의 명예가 달려있다는 중압감도 컸다. 발걸음마저도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는 처자들은 사뿐사뿐 조신하게 걷는 처녀가 있는가 하면 난생 처음 보는 궁궐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처자도 있었다.

진선문에 이르렀다. 봉례방이 문턱에 엎어놓은 솥뚜껑 위로 한 사람씩 통과 시켰다. 솥뚜껑 아래 엎어놓은 바가지가 깨지면 실격이다. 처자의 몸무게를 알아보기 위한 장치다. 낙오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드디어 처자들이 희정당에 도착했다. 임금이 편전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간택은 궁중의 축제다. 그 축제를 위하여 오늘만은 간택장소로 변신했다.

상궁의 안내를 받으며 처자들이 자신들의 아버지 이름이 쓰여진 명패 앞에 앉았다. 왕실을 대표하여 효령대군 이보, 의정부에서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대전(大殿)에서 도승지 최항, 주무관서장 예조판서 김조가 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봤다. 보통의 간택은 왕대비와 대왕대비가 참석해야 하는데 왕대비는 공석이고 대왕대비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이에 걸맞는 왕실의 어른이 없으니 생략한 것이다.

규수의 피부가 제일 눈여겨보는 항목... 합격자 없이 끝난 간택

심사관들이 제일 눈여겨보는 것은 규수의 피부다. 너무 희어서도 안 되고 검어서도 안 된다. 귀밑머리에서 목덜미로 흐르는 피부가 적당히 하야면서 온화한 기풍을 풍겨야 고결한 순결미가 있다. 두 번째가 미간(眉間)이다. 일반 사가에서도 부녀자의 질투는 칠거지악 중의 하나이지만 궁중여인에게 투기는 금기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멀어야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은 것으로 여겨왔다.

상궁이 한사람씩 일으켜 세워 절을 시켰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예(禮)를 심사하는 과정이다. 성리학을 숭상하는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인간 본분 가치의 최상위에 두었다. 그 예의 총화를 절로 봤다. 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이 낳고 자란 가풍(家風)을 가늠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궁의 호명에 따라 한 사람씩 퇴장했다. 걸음걸이를 보기위한 수순이다. 더 진솔하게 말하면 뒤태를 보기 위한 장치다. 비록 옷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골반이 넉넉하게 발달해 있어야 다산(多産). 즉, 자손을 많이 낳을 체형으로 봤던 것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했던가, 많이 퍼뜨릴수록 좋다는 왕실로서는 긴요한 대목이다.

간택이 끝났다. 합격한 자는 없었다. 통상 초간택 이후 보름의 여유를 두고 재간택이 시행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불과 7일 만에 재간택이 거행되었다. 합격자는 없었다. 즉시 삼간택 날이 잡혔다. 소나기 같은 일정에 예조 관리들이 퇴청하지 못하고 밤샘하기 일쑤였다. 보통 때 같으면 삼간택에서 한 사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대전을 대표해서 우승지 박팽년이 참석한 삼간택 역시 합격자가 없었다.

마음이 급한 수양이 예조판서를 불러들였다.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오?"
"마땅한 규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조선팔도에 처자가 이다지도 없단 말이오?"
"아무나 들여오려면 하고 많은 게 처자들입니다만 국모를 모셔 들여오는 데서야 아무를 모셔올 수 없잖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금혼령까지 내려주었는데 규수감을 못 찾는다면 공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오?"

수양이 김조를 노려보았다. 뱀눈 같은 수양의 시선이 김조의 얼굴을 핧고 지나갔다. 김조의 등허리가 서늘했다. 관직이 '날아 갈 것이다'는 위협보다도 '엮어서 날릴 수도 있다'는 차가움을 느꼈다.

"왕실과 혼인의 연을 맺으면 패가망조다"

4간택 5간택이 실시되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초조한 수양에게 홍달손이 찾아왔다.

"저잣거리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뭔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인데 심상치가 않습니다."

오얏나무 찾아 들어간 나그네야
갓끈 고치지 않았다고 자만마소
돌쇠도 녹이는 게 오얏그늘이오

오얏나무는 전주 이씨의 상징이다. 즉, 조선왕실을 칭한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부터 불리었는지 모를 노래가 아이들 입과 입을 통하여 퍼져 나갔다. 전주 이씨는 돌(石)도 녹여 버리고 쇠(鐵)도 녹여 버리는 무서운 용광로라는 것이다. 왕실과 사돈 맺은 집안은 패가망조(敗家亡兆)가 든다는 동요였다.

고려 말. 개성의 권문세족 강윤성은 그의 딸을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밀어 넣었다. 무장 세력을 찾던 강윤성과 개경 세족이 필요했던 이성계의 정략결혼이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가 낳은 방석이 세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성계의 아들에 의해 방석이 참살되고 강씨 문중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을 성공시킨 태종의 처가 민씨 3형제는 승승장구했다. 차기 주자 양녕대군은 그들의 손안에 있었다. 돌처럼 단단한 권력의 반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민씨 집안도 여기까지였다. 무질이 사사당하고 뒤이어 무휼, 무회가 죽임을 당하면서 민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심온은 세종의 장인이다. 심온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 중국으로 사신을 떠나게 되었다. 권력의 실세 심온이 떠나는 날. 육조가 텅 비고 반송정이 환송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차기의 국구이니 당상관, 당하관, 문무백관 가릴 것 없이 환송에 나선 것이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격노했다. 심온이 돌아오는 날.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조선왕실과 연을 맺은 집안은 모두가 하나같이 망했다.

임금이 지밀상궁을 불렀다.

"동궐에서 간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누구 혼례인가?"

천리를 간다는 발 없는 말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넘어왔다. 궁녀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구중궁궐 담을 넘어 온 것이다.

"그것이 사실은…"

상궁이 말을 더듬거렸다.

"왜 이리 우물쭈물 하는 거냐?"
"예, 예, 그것이…"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노기 띤 목소리가 빈청을 울렸다.

"예, 사실은 상감마마의…"
"뭣이라고? 과인의 배필 때문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국모를 모셔오는 일로…"
"누가 주동이 되서 일을 꾸미느냐?"
"영의정 대감께서…"
"수양 숙부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도 일렀거늘 이런 고얀 일이 있나?"

이때였다. 좌승지 신숙주가 고했다. 수양대군이 알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간택, #수양대군,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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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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