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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긴급시 피난구역이 해제되고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엄청난 사고가 났는데도 어느새 후쿠시마가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제2의 후쿠시마 같은 원전 사고가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날 거란 생각을 하면 공포를 느낍니다. 안전한 원전이란 없다, 멈춰세워야 한다, 후쿠시마 사람이 나서서 외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방사능 오염 사태로 누구보다 피해가 극심한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나섰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 이들이 지난 27일부터 사흘 동안 도쿄 경제산업성(일본의 원자력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앞에서 시위를 하고, 29일 낮 12시부터 전국에서 연대 방문을 한 남녀들과 함께 거리 행진과 집회를 했다.

 

선두에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서고, 전국에서 모여든 여성 참가자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이 뒤를 남성 서포터단과 각지의 지원단으로 편성된 참가자가 함께 하며 거리선전전과 행진을 펼쳤다.

 

"우리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왔습니다"라고 누군가 외치자, 길거리와 택시에서 "화이팅", "힘내세요"라는 응원으로 답했다. 히비야 공원에서 시작해, 도쿄전력 본사, 긴자, 도쿄역, 토키와공원, 경제산업성을 지나 다시 히비야공원98으로 돌아왔다. 집회참가자들은 사흘 동안 직접 짠 털실 밧줄로 경제산업성을 에워쌌다. 이른바, 털실 로프로 경제산업성 포위하기 작전. 그리고 마지막 정리 집회는 히비야 공원에서 노래하고 구호도 외치고, 춤도 추고, 함께 손잡고 울고 웃으며 마무리되었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 原発いらない福島の女たち)'과 100인 시위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최근 일본과 프랑스 그리고 국내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원전과 방사능 관련 소식을 신속하고 간략하게 업데이트하여 요약 서비스하고 있는 '에너지정의행동'의 홈페이지와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곧바로 해당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소박하지만 뜨거운 여인들의 뜻과 마음이 오롯히 전해져 왔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은 특정한 단체나 조직을 배경에 두고 있지 않다. 블로그 게시글에 따르면 "일반 여성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나누고 구체적인 액션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3.11 이후 외신들은, 엄청난 재앙에도 침착하고 질서의식을 잃지 않는 '일본인의 국민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방사능 대재앙 사태를 맞이한 일본의 시민들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명한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나 최근 방한해 환경단체 주최의 강연을 한 바 있는 하세가와 코이치 도호쿠 대학 교수도 말하듯, '3.11 후쿠시마' 이후 일본에서도 조직되지 않은 다양한 개개인들의 네트워크와 모임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고, 시위 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를 두고, 가라타니 고진은 '반원전 운동이 일본을 변하게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9월 19일 도쿄에서 열린 탈원전 집회에 이례적으로 6만 명이 모인 것은 어느날 갑자기 괜히 이루어진 성과는 아닌 것이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의 시작은 이러했다. 9월 19일 '원전과 작별하는 1000만 명 행동' 집회가 성황리에 끝난 9월 말, 후쿠시마시와 고리야마시 여성 몇이 조용히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후쿠시마발 긴급행동에 나서자, 도쿄에서 사흘동안 시위를 하자, 원전으로부터 졸업하고자 하는 우리의 뜻을 더 강력하게 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왔고 두 가지 키워드를 정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절대 헛되게 하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원전을 자기 지역 안에 받아들인 주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먼저 앞장서 원전으로부터의 졸업을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원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과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원전이 멈추는 날까지 끝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가 중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은 함께할 후쿠시마현 여성이 100명만 모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10월 5일 웹사이트에 기획을 발표, 7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참가자를 공식 모집했다.

 

이 소식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자, "후쿠시마 여성 분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도 함께 시위에 참여해도 되나요?", "트위터에 널리 퍼뜨릴게요.", "전 남잔데, 참가해도 상관없을까요?", "도쿄에 살지만 여러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등의 메시지가 후쿠시마의 여성들 앞으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후쿠시마의 여성들만 싸우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전국의 여성들을 비롯하여, 남성들도 연대와 지지, 참여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홋카이도 여성들은 도쿄에서 기자회견이 있던 날 "후쿠시마 여성들로부터 시작해 전국 여성들로 확대하자"고 제안하여, 결국 후쿠시마 여성들의 시위가 끝나는 다음 날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성들이 '원전은 필요없다'를 외치며 가스미가세키 경제산업성 앞으로 집결하기로 하였다. 후쿠시마 현 외에서 모여든 '원전이 필요없는 전국 여성들'은 30일부터 일주일 동안 시위를 이어가 11월 5일 마무리 집회를 할 예정이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이 목표로 했던 100인 시위는 첫날 후쿠시마현 여성 65명을 포함해 총 702명(접수처에 등록한 인원 기준)이 참가했다. 또 같은 날 원폭투하의 역사를 가진 히로시마에서도 주고쿠 경제산업성 앞에 모인 히로시마 여성들이 같은 뜻의 집회를 열었고, 이보다 하루 앞선 26일에는 시마네현의 여성들이 주고쿠전력 시마네지점 앞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29일 집회에는 행진 시작 지점인 히비야공원에서 출발한 인원이 약 1000명 정도라 한다.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의 여자들'은 27일 경제산업성에 모든 원전을 즉시 정지하고 원자로를 폐기할 것, 정지 중인 원전을 재가동하지 말 것, 어린이들을 국가의 책임 아래 즉시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고, 이미 피난을 했거나 앞으로 피난가는 주민에게는 완전한 보상을 실시할 것, 원전 입지 지자체를 보조금으로 꾀어 지역의 자립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전원(電源)3법을 폐지할 것 등의 네 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요청서를 제출하였다. 이어, 베트남 등 해외로의 원전 수출을 저지하자는 긴급서명운동도 '원전이 필요없는 전국의 여자들' 이름으로 전개중이다.

 

전통적으로 노조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강력했던 일본 사회에서도 3.11 이후 비조직된 개개인의 소모임과 네트워크들이 일본의 시위 문화와 저항문화에도 새롭고 다채로운 빛깔을 수놓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후쿠시마가 잊혀져 버렸지만, 3.11 이후의 일본을 주목해야 함을 분명하다. 그리고 후쿠시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위의 기사와 사진은 '원전이 필요없는 후쿠시마 여자들'의 블로그(http://onna100nin.seesaa.net) 및 현지 언론의 보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습니다. 


태그:#후쿠시마, #탈원전, #여성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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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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