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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시혜다? 보수진영이 유포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꼴지 복지'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시혜가 아닌, 보편적 권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8부로 나눠 한국의 복지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기획에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가나다 순) 등 6개 단체가 함께합니다. 자신의 사례를 기사로 올려주시거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편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영리병원 도입 논란이 재점화됐다. 정부·여당은 8월 국회에서 영리병원 법안을 처리할 뜻을 밝혔고 <중앙일보> 등이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들을 포진했다. 매년 잊힐 만하면 다시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의료민영화 세력들의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매번 재탕에 삼탕 수준이다.

 

이들은 언제나 영리병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장 크게 부각시킨다. 특히 <중앙일보>는 지난 7월 11일부터 '메디컬 코리아'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연달아 보내며 "영리병원 도입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열쇠"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거짓말 하나] '저임금' 깔고 시작한 태국의 의료관광, 신성장동력 모델?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성장'이 무엇인지가 애매하다. 만약 전체 의료비 지출을 늘려 온전히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사용되는 성장은 환영할 만 하다.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의료비 지출이 2007년 기준 6.8%로 사실상 꼴지 수준(OECD 국가 평균 의료비 지출은 8.9%)이다. 특히 공공영역의 지출 비율은 바닥 수준이다.

 

결국 복지선진국을 따라가려면 국가가 의료에 돈을 투자하여 공공병원과 건강보험보장성 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영리병원 지지자들에게 '성장'이란 언제나 그랬듯이 의료산업화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 영역도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 총생산에 기여한다는 점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 이런 해묵은 논쟁에 항상 동원되는 논리가 "외국환자 유치로 국부가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7월 11일 "존슨 홉킨스, '한국과 끝났다'"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영리병원 문제에서) 인도·중국·태국·싱가포르는 질주하고 있다. 인도는 750개의 투자병원에 73만 1000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해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추월했다. 인도 최대의 투자병원인 아폴로병원은 지난해 8만 2000명의 외국인 환자를 진료했다. 한국 844개 병원의 외국인 환자(8만 1789명)보다 많다."

 

일단 의료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사고를 비판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주장은 초등학생 수준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이다. 우선 태국·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이 외국인 환자 유치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와 원래 발달돼 있는 관광산업을 결부시켜 '의료관광'이 성공한 경우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의 간호인력 및 병원인력의 인건비는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로 가격경쟁력을 확실히 갖추고 기존의 관광자원과 결부시켜 나름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의료비가 비싼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 병원이 부족한 중동의 부자들이 이들의 주된 고객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의 '바람'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복지선진국과 달리, 저임금의 동남아 국가와 같은 의료구조를 갖춰야 한다.

 

또한 한국의 영리병원은 외국인 환자만 유치하지 않는다. 이는 지난 2005년 인천 송도에 들어오려던 뉴욕 장로교(NYP) 병원의 사업계획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사 ·간호사의 90%를 내국인으로 채우고 환자의 70%를 내국인으로 받는다. 즉, 돈 많은 한국 사람들을 진료해서 돈을 벌 계획이었지, 외국환자 유치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의료진의 인건비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외국환자를 주되게 진료하려는 병원이 한국에 올 이유는 사실상 거의 없다.

 

무엇보다, 전 세계의 어떤 나라도 의료산업화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지 않았다. 의료산업화가 가장 잘 돼 있다는 미국도 GNP의 16%에 달하는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현재 추진 중인 의료보험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즉, 영리병원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외국환자 유치나 의료산업화는 사실상 헛소리다. 그냥 내국인 대상 영리병원 도입이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거짓말 둘] 영리병원이 고용창출? 정리해고 판치고 비정규직만 늘어나

 

그렇다면 영리병원이 일자리 창출에는 얼마나 기여할까.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TV토론에서 "의료 쪽은 제조업체에 비해서 고용율이 높다"며 "제조업체가 10억 원 당 거의 한 명을 고용한다면 의료 쪽은 같은 비용에 여섯 명을 고용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 산업이 선진국 수준이 된다면 약 21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했다.

 

투자를 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의료가 인력집중이 필요한 영역인 점을 감안할 때 고용효과가 크다는 점도 맞다. 그러나 고용효과 면에서 영리병원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다시 살펴봐야 한다.

 

각 국가별 1병상당 간호 인력을 분석한 지난 2009년 OECD 건강보고서를 살펴보자.

 

표에서 보다시피 무상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공공의료가 잘 유지되고 있는 유럽의 복지선진국에서는 더 많은 의료인력이 고용된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3.3명, 그리고 한국은 0.4명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 의료서비스의 고용창출효과가 낮은 것은 의료산업화가 덜 됐기 때문이 아니다. 고용유발효과가 큰 공공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공공병원에서부터 노인수발기관·장기요양병원·간병서비스까지 공공의료기관이 절대 부족하다. 물론 형편없는 건강보험 보장성도 한몫하고 있다. 병원협회가 지난 해 발표한 국내 병원의 설립주체 통계는 아래와 같다.

 

유럽의 경우, 공공병원은 전체의 80%에 도달하고, '영리병원 천국'인 미국마저도 공공병원이 30%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의료관광'의 대표격으로 소개된 태국 역시 공공병원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성적은 너무나도 초라하다. 공공병원이 전체의 7.3%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리병원이 아니라 공공병원을 늘리는, 유럽식의 복지국가 모델로 가야 확실한 고용확충이 가능한 것이다.

 

영리병원을 통한 고용의 질은 어떠한가? 미국의 영리병원을 집중 연구해 온 하버드의대 데이비드 힘멜스타인 박사¹ 등은 "미국의 영리병원 신장 투석의 경우 전문 의료인력을 줄이고 비숙련 의료인력을 쓰고 있다"고 고발한 바 있다. '나쁜 일자리', 즉 비정규직만 늘어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목숨도 위태롭다. 캐나다의 데브로 박사² 등은 "미국의 영리병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의료인력을 줄였다"며 "만약 영리병원 환자가 비영리병원으로 갔다면 연간 1만4천 명의 환자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영리병원이 인력축소를 하면서 환자들의 목숨에도 영향을 줬음을 지적한 대목이다.

 

결국, 영리병원이 도입된다면 인건비 절감을 위한 각종 조치가 범람할 것이다. 또 이는 심각한 의료의 질 저하를 낳게 된다. 게다가 영리병원은 기존 비영리 병원이 하기 어려운 M&A(인수합병)마저 쉽게 할 수 있어 '정리해고'가 판을 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영리병원은 주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가뜩이나 노동 강도가 높은 한국 의료 현실에 영리병원마저 도입된다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대대적으로 시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영리병원으로 고용이 늘어난다는 말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주장이다.

 

[거짓말 셋] 경쟁 통해 진료비 떨어진다더니 맹장 수술에 1000만 원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의 질이 상승하고, 가격경쟁으로 의료비용이 저렴해진다는 논리도 여전히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주식배당과 채권이자 등을 부담해야 할 영리병원이 저렴한 비용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모순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를 한 번 보자. 1995년 비영리병원 지역주민들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평균 4440달러였다. 반면 영리병원 지역주민들은 5172달러를 지출해, 평균 732달러를 더 지출했다.³

 

무엇보다 영리병원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과잉진료를 하거나 진단명의 중증도(severity)를 조작해 상병명(up-coding)을 조작해왔다.⁴쉽게 풀자면 영리병원들의 보험료 부정청구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얘기다. 이는 자연스레 미국 내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영리병원의 높아진 행정비용⁵ 또한 진료비 상승을 이끌었다.

 

반면, 주주들과 경영자들의 수익은 진료비가 높아진 만큼 증가했다. 영리병원 경영진들의 보수를 보면 비영리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미국 최대의 영리병원인 콜롬비아 HCA의 최고경영자(CEO)가 부정행위로 해임될 당시, 퇴직금으로만 현금 1천만 달러(한화 110억 원)와 스톱옥션으로 3억 달러를 받아갔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영리병원인 테넷(Tenet)의 최고경영자는 2003년에만 스톡옵션으로 1억1100만 달러(한화 1300억 원)를 받아갔다.⁶

 

미국에서 비영리병원의 최고경영자들은 청소부보다 20배 정도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병원의 최고경영자들은 청소부보다 180배 높은 임금을 받아간다. 병원의 수익이 영리병원 체제 하에서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주머니로 훨씬 더 많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맹장수술에 1000만 원이 필요하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처럼 상처를 꿰매는데만 100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 나라가 됐다. 이것이 영리병원 도입이 가져올 미래다.

 

결국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의료를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고 의료의 질이 상승한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또 영리병원이 도입되더라도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될 것이란 무책임함도 거짓말이다. 의료에서는 공급자 독점이 유지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보험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도입된 영리병원을 퇴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의료만족도 최고 영국, 해답은 '공공의료'

 

실제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의료만족도 조사를 보면 NHS(국가의료체계)를 구축한 영국이 최고점을 받는다. 그런데 영국은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국가 중에서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보다도 낮다. 미국과 비교할 때도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공공시스템에 기반한 의료와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보장체계 때문이다. 진정 의료의 질을 생각한다면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를 영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번 영리병원 도입 논란에서도 새로울 것이 없는 구태의연한 논리만이 판 치고 있다. 궤변과 합리화, 교묘한 말장난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논란이 의료를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료민영화 세력'의 발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입니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영리병원의 실상과 폐해를 분석한 논문이 다수 나오고 있다. 해당 기사에서 독자들에게 소개한 부분은 다음의 논문에서 밝혀진 연구결과다.

1) Effect of the ownership of dialysis facilities on patients' survival and referral for transplantation NEJM. 1999;341:1653
2) Devereaux PJ, Heels-Ansdell D, Lacchetti C, Haines T, Burns KEA, Cook DJ, et al. Payments for care at private for-profit and private not-for-profit hospital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CMAJ 2004;170(12):1817-24
3) Silverman EM, Skinner JS, Fisher ES. The association between for-profit hospital ownership and increased Medicare spending. N Engl J Med 1999; 341: 4206
4) Silverman EM 위의 글
5) Woolhandler S, Himmelstein DU. Costs of care and administration at for-profit and other hospitals in the United States. N Engl J Med 1997;336:769-7
6) Woolhandler S. Himmelstein DU. The high costs of for-profit care CMAJ 8 June 2004; 170(12) p1814-1815
7) Woolhandler S. 위의글


태그:#무상의료, #영리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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