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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시지'다. 이것은 미디어의 형식이 곧 새로운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메시지를 수용하거나 때론 창조하는 우리는, 전하고자 하는 그 내용 자체를 미디어 형식의 틀에 따라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극단화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소설책'에 들어갈 글과 '신문기사'에 들어갈 글은 그 형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용 원고'와 '연극용 대본'의 글은 본질적으로 다른 리듬과 단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십 수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사회에 매우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한 새로운 미디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강력하면서도 가볍고, 또한 포괄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것, '인터넷'이다.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표지.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표지.
ⓒ 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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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가진, 뉴욕대학교의 클레이 서키가 쓴 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는, 바로 이 인터넷을 통해 발생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의 조직 양상을 다루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 같은 것들이 이 책의 주된 주제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근본에 일종의 '비용'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칭한다.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직접 만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편지나 전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전화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그것은 1:1의 매우 느린 소통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많은 이들에게 한 번에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대중매체를 쓸 수 있었지만, 그 매체는 본질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어질 뿐 그걸 접하는 이들의 피드백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했고, 또한 반영되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비용은 '0', 그러니 '당신도 참여하세요'

그러나 인터넷은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바꾸었다. 연결은 즉각적이 되었다. 서로간의 물리적 관계는 의미가 없어졌다. 직접 갈 필요도 없고, 답을 받기 위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야기할 대상을 한정적인 누군가로 정하지 않아도 좋으며,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규모가 있는 게시판에서 자기 의견을 밝히면 될 뿐이다. 그에 대한 피드백은 댓글이니 링크니, 트랙백이니, 팔로니 해서 얼마든지 활발하게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일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기존의 어떤 소통 방식보다도 획기적으로 값싸다. 로널드 코즈가 말한 조직비용은 이제 '0'으로 치닫는 것이다.

이 비용과 편리의 맞물림은 조직형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즉, 새로운 메시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메시지의 내용은 '당신도 참여하라'라는 것이다. 그 참여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당신은 그 참여로 무언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소통 시스템이 가지던 구조가 붕괴하고, 새로운 방식의 소통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저자가 드는 사례는 위키피디아를 비롯, 유럽 신생국이었던 벨루로시의 루카셴코 대통령 당선에 대한 사람들의 집단행동 같은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무수한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로 기존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를 넘어서는 권위와 사용자를 확보했고, 중심조직을 소탕하고 지휘부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억제되던 정치적 행위에 대한 규제도 불가능하게 됐다.

우리라고 다를까. 우리는 불과 수 년 전 촛불집회를 통해 중심 없는 조직,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낸 거대한 대중의 물결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다. 새로운 매체를 손에 넣은 우리들은 언제나 참여자이기도 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참여의 뒷면

그러나 이 새로운 변화는 우리에게 밝은 가능성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비록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은 똑같은 논리를 통해 어둠의 면모도 가지게 된다. 예컨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인터넷상에서 개인의 사생활 노출이나 루머, 그리고 그로 인한 다수의 인신공격이다.

이는 저자가 거론했던 아메리칸 항공의 비행기 연착 사건처럼 갑자기 유명해진 사건을 접한 이들의 사소한 '정의감'에서 유발될 수도 있고, 혹은 단순히 우연히 눈에 띈 '유명세' 탓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러한 일들은 클레이 서키가 지적했던 것처럼, 낮은 비용으로 자신의 흥미나 욕구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되어 이루어진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들의 결과는 때론 너무나 파국적이다.

이번에 유명한 한 스포츠 아나운서가 자살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사소한 개인적 연애사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 너무 쉬운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위치 때문에 부당할 정도의 많은 모욕을 감수해야 했고, 그녀를 배려치 않은 상대의 행동이 쌓인 스트레스에 불까지 지르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비극은 이미 처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로를 거쳐 자살을 택한 유명인을 많이 알고 있다.

이러한 위험의 근본에는 위키피디아나 비행기 사건의 참여자들이 그러하듯, 상대를 모욕하는데 너무나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활발한 참여의 근본적인 이유로 지적된다. 값싼 메시지. 결국 그것들이 지금 우리 주위엔 너무나도 많이 돌아다니며, 이들은 때론 새로운 살인의 도구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문제는 극복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이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이미 세상에서 인터넷은 가장 중요한 미디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중심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하면, 그 무엇보다 더 진중하고 깊게 생각해야 함은 너무나 분명하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갤리온(2008)


태그:#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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