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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2006년~2010년 돈만 모으면 되는 줄 알았다

이 시절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달인이 되었던 나의 사연을 풀어놓게 된다. 혹시 '강남 빌딩 전단지 소녀'라고 들어는 보았는가. 이제부터 전단지 소녀가 전수하는 전단지 잘 돌리기 기술 비법을 공개하겠다.

첫째,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강남 빌딩을 회사원 복장으로 위장하여 잠입한다.
둘째, 경비 아저씨의 눈을 피하라! 최대한 신속하게 계단을 뛰어올라가 회사 안 책상마다 '사사삭' 전단지를 돌린다.

그렇게 세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배포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주인공은 바로 전단지 속 밥집 사장님. 내가 빛의 속도로 전단지를 뿌려댄 하루 동안에 평소보다도 두 배 가까이나 매출이 뛰었다는 것이다. 차비 걱정에 삼각 김밥 하나 맘 편히 사먹지 못하던 그 때, 나는 예기치 못하게 전달지 배포 달인이 되었다.

하나 더. 혹시 휩쓸고 간 자리에 광(光)만을 남긴다는 소문의 주인공, '학원 건물 청소녀'에 대해선 알고 있는가. 짐작했겠지만 그 주인공도 바로 '나'다. 수십 개의 강의실, 각 층마다 있는 화장실, 기다란 복도, 가끔씩 등산로인가 착각이 들게 하는 계단까지. 그렇게 1년여의 세월 동안을 쓸고 닦다보니 어느새 나는 청소의 달인으로 등극하였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들을 나 몰라라 하는 방관자가 되어 버린 건, 세 시간에 걸쳐 땀을 쏟아내며 청소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고 나는 끝까지 주장하고 싶다.

텔레비전 모 채널에서 각 분야의 '달인'이 된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는데 그런 '달인'의 모습을 볼 때면 두 가지 감정이 인다. 하나는 경이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씁쓸함이다. 고물을 가지고 엿을 바꾸어 먹었다는 예전 시절 이야기처럼 미친(!) 노동과 바꾸어 얻는 것이 바로 '달인'이라는 이름이 아닌가 싶어서다.

레스토랑 서빙, 김치 포장 상자 만들기 부업, 스크린 골프장 관리, 학원 평가 암행어사, 학교 정문 앞 교복 홍보 등 그 밖에도 나를 달인으로 만들어준 아르바이트들을 읊자면 밤을 새워도 부족할 거 같아 이 정도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스무 살 시절부터 오를 줄 밖에 모르던 '등록금'이라는 녀석은 내게 늘 절박함을 안겨주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했다. 내가 열심히 알바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절박함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2006년 새내기이던 시절을 기점으로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혼자서 끙끙대기에 바빴다. 등록금이 친구들의 어깨를 짓누를 때에도 나는 내 어깨 위 무게 밖에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5년의 시간을 열심히 달리다 멈췄을 때 나는 보고 싶지 않던 어떤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그 모습이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쳇바퀴 속을 끝없이 달리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 장면 둘. 2011년, 알바 대신 젖소 옷을 입다

마음의 갑옷을 입혀준 바로 그 젖소 옷, 나의 전투 복장이다.
▲ 나의 전투 복장. 마음의 갑옷을 입혀준 바로 그 젖소 옷, 나의 전투 복장이다.
ⓒ 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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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순응한 채 나 혼자 열심히 살아간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2011년 봄, 나는 쳇바퀴 속에 다람쥐가 아닌 젖소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웬 젖소냐고? 작은 키에 튀지 않는 외모. 학내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주목받기 위해선 '에라, 모르겠다!'의 자세가 필요했다. 나는 우선 얼룩무늬 젖소 옷을 입었다. 그걸 입고 학내에서 등록금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바삐 움직이며 최대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저 사람, 쪽팔린 줄도 모르나 봐'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등록금 문제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그런 '임팩트'가 필요했다.

2011년. 내 나이 스물다섯. 내가 다니는 학교가 여대라는 걸 감안할 때 나이 '스물다섯'은 후배들에게 있어 다가가기 쉽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빙서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젖소 옷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들의 관심이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염려의 매듭을 끌러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입던 젖소 옷을 벗어던졌을 때, 나에게는 든든한 마음의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학내에서 진행된 등록금 퍼포먼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라는 의미를 담아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입술 모양이 찍힌 종이를 붙여 형상물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등록금 퍼포먼스 학내에서 진행된 등록금 퍼포먼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라는 의미를 담아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입술 모양이 찍힌 종이를 붙여 형상물을 만들어 가고 있다.
ⓒ 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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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에서 진행 중인 등록금 퍼포먼스에 동참하고 있는 학우들의 모습.
▲ 퍼포먼스 동참 학내에서 진행 중인 등록금 퍼포먼스에 동참하고 있는 학우들의 모습.
ⓒ 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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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미친 등록금'과 맞짱 뜰 전투태세를 갖춘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또 다른 '나'들을 만나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학내에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우들의 모임'을 꾸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들부터 등록금 인상에 분노를 금치 못해 제 발로 찾아온 친구들까지.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친구들과 학내에서 함께 나누고 싶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등록금 관련 유인물을 만들고 '미친' 등록금에 굴복하지 말자며 의기투합하였다. 그리고 이미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어버린 '등록금' 문제를 학내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생각으로 '3·11 등록금 인상 대학 공동행동'부터 '4·2 반값 등록금 실현 대회'에 이르기까지 등록금 인상 반대 모임에 참여하였다.

학우들 한 명 한 명의 입술이 담긴 등록금 형상물.
▲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학우들 한 명 한 명의 입술이 담긴 등록금 형상물.
ⓒ 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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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에서 등록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친구들이 설문조사에 동참해주고 있는 모습.
▲ 등록금 설문조사 학내에서 등록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친구들이 설문조사에 동참해주고 있는 모습.
ⓒ 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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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학내에서도 여러 활동을 펼쳤다. 학내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와 등록금 퍼포먼스는 학내에 많은 학우들이 미친 등록금에 분노하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있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보니 내 양 손엔 함께하는 친구들의 손이 잡혀있다.

1 + 1 = ∞ (무한대) 
                    
요즘 나의 하루하루는 하나 더하기 하나 가 '더 큰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하나의 과정과도 같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희망'을, 그리고 희망으로부터 피어날 '가능성'과 '실현'을 노래한다. 비록 음치라 할지라도 반값등록금이 실현되기 전까지 나는 이 희망의 노래를 그치지 않고 부를 작정이다.

[기사공모 바로가기]'등록금분투기' 쓰고 반값등록금 받자




태그:#등록금, #등록금 퍼포먼스, #4.2 반값 등록금 대회, #알바,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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