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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학자' 창립대회가 열린 프랑스 국회 강당이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국경 없는 학자' 창립대회가 열린 프랑스 국회 강당이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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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자유를 침해당한 전세계의 학자들을 위한 모임이 프랑스에서 결성됐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프랑스 국회 강당에서 열리 '국경 없는 학자' 협회의 창립행사를 직접 지켜봤다. 2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참가한 이 행사에는 10명의 학자들이 나와 자신이 당한 학문 침해 사례를 밝혔다.

쿠르드족 연구했다가 수감에 고문까지 당한 터키 학자

이 행사의 전반부는 터키 사회학자 페나르 셀렉크의 경험담으로 시작되었다. 사회학 논문을 쓰기 위해 셀렉크는 쿠르드족을 만난다. 쿠르드족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터키 정부에 대항하여 비밀을 지킨 셀렉크는 1998년부터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녀는 이후 이스탄불의 버림받은 고아들과 성 전환자들을 위해 아틀리에를 여는데 당연히 정부의 눈엣가시다. 1998년에 시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터키 정부는 셀렉크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한다.

감옥에 수감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그녀는 2년 반 동안의 수감생활을 한다. 그녀는 2000년도에 석방되지만 2005년에 다시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그러나 2008년에 다시 석방, 지난 2월 9일에 정식으로 무죄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수많은 수난을 겪은 셀렉크는 자신의 고행에 많은 국내외 동료들이 정신적,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을 수 없을 거라며 특히 지난 9일 이스탄불까지 날아와 재판에 참석해 후원해준 국경 없는 학자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발언을 하고 있는 터어키 사회학자 페나르 셀렉트, 오른쪽이 바이야르 교수, 왼쪽이 게레비 헝가리 철학자.
 발언을 하고 있는 터어키 사회학자 페나르 셀렉트, 오른쪽이 바이야르 교수, 왼쪽이 게레비 헝가리 철학자.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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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 "이집트 사태에 의견 말하지 말라"

두 번째로 발언권을 넘겨받은 정치학 교수 장-프랑소와 바이야르는 아프리카통인데 현 정부의 대외정책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지 않은 이유로 진급에서 제외되는 등 계속적인 징계를 받고 있다.

그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도 학자들의 학문 연구가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정부는 눈에 들지 않는 학자들의 사법적 처벌을 강화하여 학자들을 설득하거나 침묵케 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의 이민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징계를 받게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또한 학자들의 연구를 관리하는데 새로 도입된 'New Politic Management'가 야기하는 문제점도 무시 못한다. 이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아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젊은 학자들은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빠지는데 불안정한 자들의 저항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기업의 재정지원이 점점 사 기관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학문의 자유와 선택이 점점 침해당하고 있다. 또한 객관성이 결여된 새로운 학자 연구 평가 방법으로 학자들은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의 대외관계 정책 사항은 민감한 주제인데 이 주제로 인한 학자들과 정부와의 마찰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아랍혁명과 관련해서 프랑스 정부는 확실치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4일 이집트 카이로 자유광장에서 이집트인이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을 때 프랑스 외무부는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이집트 사태에 관해 프랑스 언론에 어떠한 의견도 피력치 말라는 함구명령을 내렸다.

이집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지리학자가 2월 7일 프랑스 유선TV 방송에 이집트 상황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기로 했는데 전날 카이로의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함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 학자는 예정대로 다음날 방송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국경 없는 학자' 창립대회가 열린 프랑스 국회 전경.
 '국경 없는 학자' 창립대회가 열린 프랑스 국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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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좌파 철학자들에 공금횡령 누명 씌워

헝가리 철학자 게레비(Gereby)가 세 번째로 마이크를 받았다. 부다페스트 동유럽 대학에서 중세기 철학을 강의하는 게레비 학자는 자신이 중세기 철학으로 언젠가 사법적인 제재를 받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올 1월 8일 헝가리의 국영신문인 <Magyar Nemzet(헝가리국민)>와 2개의 국영 TV는 게레비를 비롯한 5명의 철학자들이 870만 유로의 연구자금을 횡령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2월 18일 이 중 3명이 경찰에 고소되었다.

그러나 연구자금 횡령은 외형에 불과하고 실제적으로는 헝가리 우파 정부가 진보 좌파 철학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다. 언론 탄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이들이 정부의 눈에 거슬렸고 정부는 이들을 '국가를 파괴하는 책임자'로 규정해 터무니없는 공금 횡령 누명을 씌운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서술한 공개편지를 국경 없는 학자들 협회에 보냈고 협회측은 해결점을 찾기 위해 유럽 의회 등 관련 기관에 사실을 알리는 등 제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날 게레비 교수가 이 자리에서 발언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도 프랑스 CNRS(과학연구국립연구소) 학자들을 포함한 대다수 학자들의 대대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학자 포스텔-비네 교수(왼쪽)와 알렝 갸리구 교수
 역사학자 포스텔-비네 교수(왼쪽)와 알렝 갸리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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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극우단체에 소송당한 프랑스 학자

약 10여 분간의 휴식 시간이 지나고 캬롤린 포스텔-비네 교수가 제2부의 문을 열었다. CERI(국제연구센터) 연구소장이며 프랑스에서 저명한 일본 역사학자인 포스텔-비네 교수는 2009년 3월 일본의 극우단체인 사사카와 재단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유는 포스텔-비네 교수가 프랑스와 일본의 150주년 수교 기념 학술회의를 보이코트 했기 때문이다. 이 학술회의는 일본 재벌 극우파인 사사카와 재단이 후원하고 있었는데 이 재단은 난징 대학살이 허구라는 내용의 책을 영어판으로 작성하여 해외에 돌림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 극우파이다.

이런 재단이 후원하는 행사에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포스텔-비네 교수는 다른 60여 명의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서신을 작성하여 프랑스 외무부와 언론기관에 보낸다. 당시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부 장관은 이 서신을 참조하여 마지막 순간에 학술회의에서 탈퇴했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사사카와 재단이 3개월이 지난 뒤 포스텔-비네 교수에게 개인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학자의 자격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벌인 것이다. 2년여에 걸친 소송 기간이 지나고 작년 12월 22일 포스텔-비네 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피나는 노력과 90여 명에 달하는 동료들, 인권리그 등 각종 인권단체, 그리고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스텔-비네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국경 없는 학자와 같은 기구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사르코지의 명예훼손 소송 제기가 창립 계기

세번째 발언권은 알렝 갸리구 파리 10대학 정치학 교수에게 넘겨졌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갸리구 교수는 2009년 11월 6일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조언자이자 여론조사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파트리크 뷔송이 거액의 금액을 받고 엘리제 궁을 위해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뷔송을 '사기꾼'으로 비유했다.

갸리구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챙긴 비합법적인 자금으로 사르코지 차기 대선을 준비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한 뷔송은 갸리구에게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10만 유로의 보상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에 많은 학자들이 들고 나와 더 이상 학문의 자유를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강한 연대활동을 벌인 덕분에 이 사건은 16일 기각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경 없는 학자들 협회가 구성되었고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학문의 자유로 억압받는 학자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비정부기구가 탄생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날 오후 7시가 넘어서 끝난 창립대회는 매우 고무적이고 희망적이었다.

대외담당 프레텔 교수 "한국 학자들도 도움 줄 수 있다"
국경 없는 학자 대외담당자 프레텔 교수
 국경 없는 학자 대외담당자 프레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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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 없는 학자 협회가 생기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1년 전에 알렝 갸리구 교수가 사르코지 측근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소환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기사 본문 참조) 시앙스포 파리정치대학 교수들을 포함한 여러 학자들은 이 사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모임을 가졌는데 갸리구 교수 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비슷한 사례를 당한 걸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학문의 자유를 침범당하는 학자들의 국제연대를 위한 비정부기구(NGO)인 국경 없는 학자 협회 준비가 4개월 전부터 이루어져 오늘 창립 대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 이런 모임이 프랑스에서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 학자의 학문 자유가 다른 나라보다 더 열악해서인가?
"그렇다기 보다 프랑스 학자들이 학문 자유 문제에 더 민감하고 비판적인 정신이 더 강하기 때문으로 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젠가는 각 나라별로 학문자유도 기준표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 터키 학자 페나르 셀레크나 헝가리 철학자들 돕기 운동에도 나서고 있는데 그러면 한국 학자들이 학문 자유로 인해 정부와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당연하다. 우리 비정부 기구는 프랑스나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미국, 아시아 쪽으로도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학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움을 줄 예정이다."

-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후 학자들의 학문자유 침범이 더 심하게 성행하였는지.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대외 관계에 민감한 현 정부가 정부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지 않은 바이야르 교수의 진급을 막는 등 일련의 징계를 가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 현재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비 확보도 위축되고 있는가.
"공기관이 부담하는 연구비 확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럽연합은 국민소득의 3%를 연구비로 책정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연구비는 거기에 미달한다.(대략 2.5%) 사기관에서 받는 연구비는 경제적인 면이 우선시 되므로 진정한 학문자유와는 거리가 있다."

- 비정부기관인 국경 없는 학자들의 창립대회를 국회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로 장소를 선정한 것은 일종의 상징으로 정치인들을 섭외하기 위해서이고 외국인들에게 좀 더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태그:#국경 없는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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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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