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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영 백혈병 환우가 감염예방을 위해 이용했던 무균차량
 이운영 백혈병 환우가 감염예방을 위해 이용했던 무균차량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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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한창 꿈을 꾸고 그 꿈이 막 영글어갈 나이.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이운영(당시 30세, 건설 현장직)씨도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던 그의 삶에 피할 수 없는 돌이 날아왔다. 2009년 2월 선고된 백혈병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그가 진단받은 '급성골수성백혈병 M3'는 백혈병 중에서도 치료 예후가 좋아서 항암제만으로도 완치가 될 수 있는 유형에 속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몸은 항암제에 반응이 없었다. 결국, 완치를 위해 골수이식 수술을 선택했다.

골수이식 수술은 이식한 골수가 몸에 생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몸의 면역력을 강제로 낮춘다. 그래서 골수이식 후 주의해야 할 첫 번째는 면역력이 떨어진 몸을 외부의 병균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때문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이 고민스러웠다.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세균감염의 위험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투병과 수술로 들인 그간의 고생을 합병증으로 뒤집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개인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막막했다. 다른 방법을 수소문하던 차에 이운영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운영하는 무균차량(CLEAN CAR, 이하 클린카로 표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차량 내부가 항균상태로 유지되는 '클린카'

백혈병 환우들의 감염예방 불안을 해소하고 교통편의를 제공했던 무균차량(CLEAN CAR)
 백혈병 환우들의 감염예방 불안을 해소하고 교통편의를 제공했던 무균차량(CLEAN CAR)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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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에 진단을 받고, 8월까지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퇴원할 때 클린카를 이용했지요. 퇴원 후에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혈액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통원치료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3일에 한 번씩 정기외래를 다니다가 수치 안정화 후에는 1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꼴로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통원치료 초기에 클린카를 이용했지요." - 이운영씨

클린카는 차량내부를 병원 무균실과 같은 항균상태로 유지한 국내에 단 하나뿐인 차량이다. 수술 후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환자들을 세균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고안하여 2009년 3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운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기부문화가 위축되면서 운행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난 1월 10일부터 일시적으로 클린카 운행이 멈춘 상태다.

2009년 3월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차량을 기증받고, 운영비용은 기업이나 단체의 기부로 마련해 왔기에 무료로 운영되어, KTX, 고속버스, 택시 등의 교통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었다. 여기에 백혈병 완치 환자가 클린카에 동승해 병원에 오가는 동안 환자들에게 투병정보 공유와 백혈병 투병경험 관련해 상담을 해준다. 클린카 이용환자들 중에는 이러한 클린카의 상담기능을 고마운 기억으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클린카 이용자 이운영씨는 "제가 클린카를 이용했을 2009년 당시 운전자로 자원봉사하시던 분은 백혈병 완치 환우였습니다"라며 "저를 병원에서 집까지 데려다 주시면서 본인의 투병기, 그리고 수술 후 추가 질병감염 예방에 관련한 여러 정보를 이야기해주시곤 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물론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 분들이 말씀해 주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전에 저와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의 경험담은 당시 투병 중이던 저에게 더 큰 희망이자 위로였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클린카, 재정 어려움으로 2011년 1월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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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예방을 위한 무균차량(CLEAN CAR)의 각종 무균 장비와 편의시설 .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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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영씨뿐만이 아니다. 급성골수병성백혈병으로 2009년 9월 클린카를 이용했던 이아무개(50·강원 원주시)씨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집에서 서울의 병원까지 오가려면 개인 자동차로도 보통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추가감염이라는 삼중고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백혈병환우회와 상담 중에 클린카를 알게 되어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려면 꼭 남편이 운전을 해야 했죠. 하지만 수술 후 남아있는 통원치료를 위해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직장에 월차를 내기엔 남편이 곤란한 상황이었고요. 회사를 계속 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클린카를 많이 이용했어요. 비용과 시간절약, 감염예방이라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지만, 클린카에서 운전자로 봉사하시는 분을 보며, '아… 나도 혼자가 아니구나…'하고 심리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백혈병이 치료중에 50%가 사망하는… 완치되기 힘든 병인데, 실제로 완치된 환우들을 직접 옆에서 보게 되니 정말 많은 힘이 되었거든요. 또 투병 이후 '원래 생활했던 대로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는데, 동승하셨던 완치 봉사자 분이 투병과 관련해서 정보도 많이 주시고, 병원에서 집으로 오고가는 내내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시던 것이 기억이 나요."

충남 태안에 살고 있는 최아무개(39)씨도 같은 경험을 같고 있다. 최씨의 딸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앓고 있다.

"집이 충남 태안이다. 그리고 집에 자가용이 없다. 진료일마다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택시로 이동을 하면 매번 20만 원이 넘게 나왔다. 병원치료를 위해 왕복을 하면 40여만 원 이상이 하루 교통비로 썼던 셈이다. 다행히 백혈병환우회를 통해 무료 무균차량서비스를 알게 되어 이용했다."

운영재정 모금이 어려워져서 클린카가 멈추었다는 사실을 환자가족들에게 밝히자, 입을 모아 안타까워했다.

최씨는 "환자의 입장에선 정말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아이의 치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지속적으로 서울에 있는 병원에 내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같은 병 치료해야 할 수많은 환자들은 어쩌나?"

감염예방을 위한 무균차량(CLEAN CAR) 안내 영상물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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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용자들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리에 거주하는 최영의(42)씨는 "무균차량 운행은 단순히 세균 감염예방을 넘어, 나와 같은 환자들에게 정보서비스, 지식봉사의 일환으로 다가왔다"라며 "한 번의 운행으로 많은 역할을 하던 무균차량 운행의 중단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정적으로 도와야 하는데,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아이디어를 짜내 반드시 후원을 이끌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의견을 밝혔다.

이운영씨는 "상당히 많이 안타깝다, 특히 항암치료 후 면역성이 떨어졌을 때는 정말로 감염위험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부담스럽다"며 "사실 큰 병을 치료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환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중에 클린카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적 부담 없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안하고 좋은, 안심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라면서 "재정적인 문제로 중단이 된다는 것은… 환우의 입장에서는 많이 안타깝다, 나야 이제 완치가 되어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같은 병을 치료해야 할 수많은 환자들은 어쩌나?"라고 걱정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일부 지원해 주고 있지만 지원금액이 적을뿐 아니라, 이 중에 교통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골수이식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들은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다. 따라서 지방에 사는 환자의 경우, 치료목적으로 서울에 올라오려면 그 교통비가 큰 부담이 된다. 거기에 골수이식 수술 후의 면역력 감소라는 특수상황까지 고려한다면, 택시 이용이나 개인소유 자동차 이용은 환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필수요소다. 클린카 운행 중단 소식에 백혈병 환자들이 난색을 표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클린카 후원 및 문의하기

무균차량(CLEAN CAR)이란?
실내에 공기살균정화기, 제균기 등 다양한 무균장비를 갖추고, 항균 및 피톤치드 마이크로 캡슐 처리로 병원 무균실과 같은 상태를 유지해 미세 세균들로부터 환자들을 보호하는 차량이다. 뿐만 아니라, 백혈병 투병을 경험한 완치된 환우가 무균차량에 동승하기 때문에 투병, 사회복지, 혈액 등에 관한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정보의 공유와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를 해왔다.

최근 한국백혈병환우회는 2009년 3월 19일 첫 운행을 시작으로 100여회 동안 지방거주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들의 발이 되어온 무균차량 운행이 중단되었음을 밝혔다. 기부와 모금으로 충당되어오던 운영비용 부족이 그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현재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무균차량, #백혈병, #백혈병환우회, # 후원, #클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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